열등감이 낳은 트럼프의 과장, 능력주의에 기댄 신우파의 언어 [.txt]
트럼프에서 넷 우익까지, 혐오 정치의 언어 분석
비판적 언어감수성·사회구조 개혁 필요성 절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부터 한국의 ‘신우파(뉴라이트)’와 일본의 ‘넷 우익’까지, 진보적 가치에 대한 노골적 반감과 타자 혐오를 그들의 ‘언어’로 분석한 연구가 나왔다. 한겨레말글연구소는 18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신우파의 언어와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연구발표회를 열었다. 이번 발표회에는 로버트 파우저(미국 언어학자), 김선영 동의대 교수(동아시아연구소), 신동일 중앙대 교수(영어영문학), 김창인 작가(청년활동가) 등 4명이 발표자로 참여했다.
또 각 발표 뒤에는 박창식 뉴스토마토 객원논설위원, 나익주 전남대 영미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정혁준 한겨레 선임기자가 지정토론자로 나섰다. 이들은 신우파(뉴라이트)의 언어’가 민주주의의 본질적 가치와 존립에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며, 이를 단지 위협으로 여기고 비난해서는 올바른 해법을 찾을 수 없다는 데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바람직한 대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한글과 한국 근대문화에 정통한 로버트 파우저는 ‘도널드 트럼프의 언어: 나르시시즘과 타자화의 정치적 전략’을 분석했다. 트럼프의 나르시시즘(자기애) 성향과 타자화(다른 사람의 인격을 대상화·물화) 전략을 잘 알면 얼핏 막말로만 보이는 그의 말 속의 정치적 의도뿐 아니라 미국과 세계의 민주주의에 드리운 위험성까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 변두리 태생인 트럼프는 부동산 임대업으로 부를 쌓은 아버지의 지원으로 1971년 중심부 맨해튼에 터를 잡고 부동산 개발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맨해튼의 상류사회는 그를 동급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잖아도 트럼프는 평소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기를 갈망했던 참이었다. 뉴욕 주류의 박대는 트럼프의 열등감과 원망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런 심리는 다른 사람, 특히 자신보다 약해 보이거나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타자화로 표출됐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세상을 승자와 패자로 나누고, 자신이 승자에 속한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내세우기 위해 자신을 공격한 사람은 물론, 충분히 감탄하지 않은 사람, 코드가 다른 사람, 뭐든지 맞지 않은 사람을 모두 다 패자로 타자화”한다. 이는 과장된 언어 구사로 나타나는데, 뻔한 거짓말뿐 아니라 자신을 피해자로 내세우는 피해자 서사, 자신에게 감탄하는 사람에 대한 과장된 칭찬도 포함됐다.
“똑똑한 사람들은 나를 싫어한다”는 유머, “나는 여러분의 전사, 나는 여러분의 정의, 그리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배신당한 사람들을 위해, 나는 여러분의 응징입니다” 같은 선언은 열등감의 표출이자 피해자 서사라는 게 파우저의 분석이다. 파우저는 트럼프가 열등감을 감추려는 ‘과장된 수사법’을 세가지 형태로 나눠 봤다. 끝없는 자기 자랑, 이용가치가 있는 사람에 대한 과잉 칭찬,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사실과 사물의 과장이다.
“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억력을 가진 천재”, “때로는 자화자찬을 해야 한다. 왜냐면 다른 누구도 그렇게 해주지 않을 테니까”, “내가 취임한 이후 계란값이 93, 94%나 떨어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자기 나라를 위한 위대하고 아름다운 비전을 가지고 있으며(…) 올바른 일을 할 거다. 그렇게 하지 않기에는 그가 너무 똑똑하(…)기 때문”이라는 발언들은 극히 일부의 사례일 뿐이다.

김선영 동의대 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는 ‘한국 신우파 청년과 일본 넷 우익의 언어를 비교 분석’했다. 그는 특히 한국 ‘이대남(20대 남성)’의 주요 담론장인 온라인 커뮤니티 ‘펨코’의 언어와 효과에 주목했다. 첫째, 자기들만의 어법으로 내부 결속을 다지고 외부의 진입 장벽과 배타성을 강화한다. 예컨대, ‘포도(거짓)’, ‘삼겹(진실)’, ‘외노자(외국인 노동자)’와 같은 은어를 쓰고, 복잡한 사회문제를 단순화·희화화하는 밈(Meme,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풍자와 모방의 기호 또는 이미지)을 만들고 소비한다. 둘째, 자료와 ‘팩트’의 선택적 활용을 통한 내부 주장의 합리화이다. 셋째, ‘능력주의에 기반한 공정’ 개념과 ‘반페미니즘’ 프레임의 전면적 활용이다. 펨코 이용자들은 자신들이 남성이란 이유로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강한 피해 의식을 공유하는데, 이는 ‘퐁퐁남’(주방세제+남성의 합성어)처럼 특정 집단을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표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일본에선 1990년대 후반부터 나타난 반한·반중 감정이 2000년대에 들어 더욱 심화하면서 ‘넷 우익’이 등장했다. 대표적 플랫폼 중 하나가 1999년 개설된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2ch(2채널)’로, 2017년부터는 ‘5ch(5채널)로 개칭했다. 극우단체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재특회)’도 이 채널을 적극 활용했다. 재일조선인과 한국인을 향한 혐오 담론의 바탕에는 자신들의 불만을 대변하지 않는 진보적 가치나 진보 세력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이 깔렸다는 게 김 교수의 분석이다. 잠재적 책임과 복잡한 논쟁을 피하기 위해, 공격 대상으로 삼기 쉬운 사회적 약자 집단을 혐오 투사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한국의 신우파와 일본의 넷 우익이 각각 ‘페미니즘’과 ‘한국인’을 혐오 대상으로 삼는 배경에는 ‘공정성’과 ‘능력주의’라는 공통의 동기가 있다. 현실에선 다양한 사회·경제적 배경과 구조적 불평등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그런 문제를 개선하기보다 자신들의 피해의식과 특정 집단의 타자화 논리에 기댄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신우파의 혐오 발화에 대한 대응으로 △극심한 경쟁, 불안, 박탈감 등 사회 시스템 전반의 문제 개선 △공공 차원의 정책적 개입(혐오 플랫폼 규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강화)을 강조했다.

신동일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이준석의 담론 전략과 정치적 효과’를 분석했다. 그는 ‘이준석 담론’을 “‘능력은 있는데 기회가 차단된 청년 남성’, 혹은 ‘합리적 보수주의자’ 등을 피해자로 호명하고 그들을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 형성하는 기술”이라고 봤다. “단순하고 짧은 수사 스타일을 사용하면서, 상식에 호소하고, 엘리트와 기득권력을 비판”하고, “유사한 문장(구조)을 반복”하며, “즉각적으로 화제를 도입하고, 반박하고, 전환하고, 종결할 수 있는 구술 토론이나 온라인 게시판에 자주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준석은 포퓰리스트 면모를 지녔다.
이준석은 그만의 또 다른 특징이 있는데, “기성세대의 언어를 지향하고 ‘청년다움’과 ‘탈 엘리트’ 스타일”을 과시하면서, 동시에 “엘리트적 스타일도 포기하지 않고 합리주의자로 자처”하는 일종의 ‘장르 혼합 스타일 전략’을 구사한다. 이준석 역시 전형적인 포퓰리즘 전략을 사용하지만 기존 포퓰리스트가 연상시키는 고정관념과는 다른 한국적, 제도적, 합리적 포퓰리스트로 대중의 마음을 파고든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사회적 다수가 비판적 언어감수성과 정치언어의 해석 능력이 취약하면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대중정서를 쉽게 조직하고 재생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대 청년단체 활동가이자 작가 김창인은 ‘정치의 실패,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 그리고 왜곡된 청년 담론’을 발표했다.
그는 200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에 참여한 10대가 광장 민주주의의 상징인 ‘촛불 세대’로 불렸다가 2030세대가 된 지금은 ‘청년 극우화’라는 우려의 대상으로 지목된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어느 순간 한국의 진보파는 ‘청년’이라는 정치적 기표를 보수파에 빼앗겼”는데, 그에 대한 “반성적 평가 없이 ‘청년 극우화’라는 언어로 현 상황을 쉽게 규정하는 것이야말로 청년 담론을 신우파에게 내주는 꼴이 될 것”이란 이야기다.
김 작가는 ‘정치에서 청년을 소환 또는 호명하는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들었다. 첫째, 각 정치세력이 대중들에게 ‘새로움’을 포장하려는 신호이자 청년세대의 표를 구애하는 행동. 둘째, ‘청년 문제’라는 표현으로 진짜 구조적인 문제를 은폐하려는 의도. 예컨대 반지하방·옥탑방·고시원 등 ‘청년 주거 문제’는 청년들만 겪는 게 아니라 한국사회의 고질적 부동산 문제의 일면일 뿐이다.
김 작가는 “왜곡된 청년 담론은 진보파 기성세대와 보수파 청년세대가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의 부재”, 즉 정치의 실패에서 비롯한다고 진단했다. 민주주의는 사상이나 이념이 아니라 제도와 시스템이며, “청년 담론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는 특정 세대나 진영의 소유물이 아니라, 우리 정치 전체가 함께 짊어져야 할 공적 과제”라고도 했다. 그는 “청년 담론을 다시 세우는 첫걸음은 청년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이 말을 걸 수 있는 정치, 타 진영이 서로를 적대하지 않고 시민으로 바라보는 정치, 정의를 독점하지 않고 공존을 설계하는 정치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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