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을 찾아서] 끊어진 듯 맞닿은 집채… '무신 장중함' 스며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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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 덕봉리마을회관을 지나 고즈넉한 골목길을 따라 들어서면 고성산(高城山)을 배경으로 한 고택 한 채가 시야에 들어온다.
정무공 오정방 고택의 가장 큰 특징은 안채와 사랑채를 연속해 하나의 단일채로 구성한 점이다.
사랑채 기둥의 모를 깎아 팔각으로 처리한 방식은 인근 지역의 동시대 고택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으로, 당시 지역적·시대적 건축 경향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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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의 공간 구성과 구조
정무공 오정방 고택의 가장 큰 특징은 안채와 사랑채를 연속해 하나의 단일채로 구성한 점이다. 'ㄱ'자형 몸채에서 'ㅡ'자 부분을 길게 연장한 뒤 중간에 사잇담을 설치해 안과 밖의 공간을 분리한 방식은 창덕궁 연경당과 비견될 만큼 정교한 공간 구성으로 평가된다.
안채는 대청 2칸을 중심으로 사랑 쪽에 건너방을 두고 꺾이는 부분에는 안방 그리고 날개부에는 부엌과 부엌광을 배치했다. 날개부는 홑집 맞걸이 구조로 지붕을 낮추고 창호와 벽면 위주로 단정하게 구성해 맞은편 담장과 함께 세로로 긴 마당을 형성했다. 이로 인해 공간 전반에 엄정하면서도 긴장감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사랑채에 걸린 '퇴전당(退全堂)' 현판은 우암 송시열의 글씨로 전해진다. 전체적으로 볼 때 재목을 다듬고 손질한 치목 기법이 뛰어나며 건물의 배치와 공간 구성 역시 완성도가 높아 조선 중·후기 양반가 주택의 전형을 잘 보여준다.

◇조선을 지킨 무신, 정무공 오정방의 생애
정무공 오정방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무신이다. 본관은 해주, 자는 영언, 호는 퇴전당이다. 증조부는 전생서 주부를 지낸 오현경이며 할아버지는 사온서 직장을 거쳐 좌승지에 추증된 오경운이다. 아버지 오수천은 생전에 관직에 나아가지는 않았으나 사후 호조판서에 추증됐다.
오정방은 1583년(선조 16) 무과에 장원급제하며 내금위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흥덕 현감, 훈련원 판관, 방원 만호 등을 거쳤고,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탈정 기복해 도총부 도사로 임명돼 영흥 지역에서 전공을 세웠다. 이후 부령 부사와 정평 부사를 역임하며 북방 방어에도 힘썼다.
1604년에는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한 공으로 호성공신 3등에 책록됐다. 이후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겸 진주목사, 전라도 병마절도사, 전라도 우수사 등을 지내며 군사와 행정을 두루 맡았다. 재임 시절 군민들이 그의 공덕을 기려 비석을 세웠다는 기록이 전해질 만큼 신망도 두터웠다.
최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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