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정치’ 가능성 보여준… 체코 ‘문인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
2011년 12월 18일 75세

1977년 1월 14일 체코슬로바키아 극작가 바츨라프 하벨(1936~2011)을 당국이 체포했다. 헌법의 인권 조항 준수를 촉구하는 ‘77헌장’ 발기인에 참여했다는 이유였다. 이 반체제 작가는 12년 후인 1989년 12월 29일 체코 연방의회에서 만장일치로 대통령에 선출된다.
41년 일당 독재는 비단처럼 부드러운 ‘벨벳 혁명’에 무너졌다. 하벨은 1989년 11월 23일 프라하 웬체슬라스 광장에 운집한 30만 군중 앞에서 “우리는 낡은 전체주의 통치체제로 결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외쳤다. 체코 공산당은 연일 이어진 시위 참가 군중에 놀라 5일 후인 11월 28일 권력을 포기하고 일당제를 종식하겠다고 발표했다.

하벨은 20여 년간 체코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 1968년 프라하의 봄부터 77헌장을 거쳐 1989년 벨벳 혁명에 이르는 기간 공산 정권 치하에서 민주화의 씨앗을 뿌렸다. 1978년 책 ‘힘없는 자들의 힘’에서 진실을 은폐하고 인간에게 굴종을 강요하는 공산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1979년 이후 4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90년 조선일보 특파원은 프라하 현장을 찾아 하벨 대통령이 얼마나 인기 있는지 전했다. 젊은이들은 하벨 얼굴을 그려 넣은 티셔츠를 입고 다니며 자랑스러운 표정이었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흐라드차니 성(城)에는 ‘민주화 순례객’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우리 대통령이 일하고 있는 곳이 어떻게 생겼나 보고 싶어서 왔을 뿐”이라고 했다.

“프라하에 도착해 제일 먼저 느낀 것은 체코 국민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들의 대통령’에 목말라 했는가와, 이제 그런 대통령을 바로 문인 출신인 하벨에게서 찾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1990년 3월 22일 자 4면)
하벨은 ‘인권 투사’로도 큰 역할을 했지만 ‘현실 정치인’으로도 수완을 발휘했다. 동유럽 국가 지도자로는 폴란드 바웬사에 이어 두 번째로 미국을 방문해 의회에서 연설해 큰 박수를 받았다. “유럽은 이제 미·소 초강대국에 의해 지배되던 구태의연한 시대에서 벗어나고 있다. 미국인이 유럽에서 다시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게 될 것이다.”(1990년 2월 23일 자 5면)
유럽 통합의 변수였던 동·서독을 방문하고 소련·폴란드·헝가리·프랑스를 잇달아 찾았다. 모스크바 방문에선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담판을 통해 1968년 프라하를 짓밟으며 들어왔던 소련군을 체코 땅에서 떠나게 했다.

대통령 재임 중 한국도 찾았다. 하벨은 1992년 4월 26일 방한에 앞서 김대중 조선일보 주필과 프라하에서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공산주의의 종말은 인류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라고 했다.
“공산주의는 역사 발전에 있어 막다른 골목이었으며 인공적이고 강요된 것이며 자연스러운 다원주의, 다양한 생활과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공산주의는 군사력에 의해 패배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정신, 생활, 양심, 인간 도덕에 대한 저항성 때문에 패배한 것입니다.”(1992년 4월 23일 자 4면)
하벨은 슬로바키아가 분리 독립한 후 1993년 초대 체코 대통령에 선출되고, 재선을 통해 2003년까지 재임했다. 정치 경험 없는 문인 출신 대통령은 재임 기간 높은 지지를 받으며 체코 국민의 구심점이 됐다. 임기 중인 1999년 체코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했고, 2004년 유럽연합 회원국이 되는 초석을 놓았다.

1996년 1월 ‘세계를 이끈다’ 조선일보 시리즈 기사에서 하벨은 “선진국으로 이끈 민주화 대통령”으로 평가됐다.
“정치가 이전에 세계적인 희곡 작가인 하벨은 리더십을 발휘하는데 있어서도 그가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말’을 유용한 ‘무기’로 활용, 정치인들이나 국민들을 설득하고 있다. (중략) 박식한 지식과 균형잡힌 이념을 가지고 있는데다 인간성에 대한 이해가 깊은 하벨은 경험 미숙을 훌륭한 통찰력으로 잘 극복하고 있다.”(1996년 1월 21일 6면)
하벨은 세계에 ‘도덕적인 정치인’이 가능하다는 전범을 보여주었다. 대통령 당선 후에도 원래 살던 낡은 집에서 출근했다. 집무실에서 퇴근하면 단골 술집에 들러 맥주잔을 놓고 다른 손님과 담소를 즐겼다. 1996년 아내와 사별한 후엔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프라하 일대 땅이었다. 당초 국가에 몰수됐다가 공산 정권 붕괴 후 다시 소유권을 인정받은 것으로 수백만 달러로 평가됐다.

“나는 기업가처럼 큰돈을 벌 욕심도 없고, 그렇다고 백만장자처럼 흥청망청 돈을 쓰는 데도 관심이 없다.”(1996년 3월 22일 자 15면)
대통령 퇴임 후엔 다시 문인으로 돌아갔다. 2008년 5월 프라하 아르차 극장에서 20년 만에 새 연극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권좌에 올랐다가 정치판을 떠나며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한 국가의 지도자의 삶을 그린 ‘이별’이었다. 하벨은 “이 작품은 개인적 경험에 살을 덧붙여 썼지만 자전적인 것은 아니다”(2008년 5월 22일자 A30면)라고 했다.
2004년 체코 민주화와 세계 인권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서울평화상을 받았다. 별세 후인 2012년 프라하 루지네 국제공항은 바츨라프 하벨 국제공항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가평 골프장서 10만명 개인정보 유출…경찰 수사 착수
- 총성 울리자 연단 위로 후다닥… 트럼프 앞 막아선 경호원 화제
- 인간, 마라톤 2시간 벽 깨다... 케냐 사웨 ‘1:59:30’ 세계新
- [만물상] 강철 체력 6070의 등장
- 요한 바오로2세·김대건 신부 등 2027 세계청년대회 수호성인 선정
- 대장동 수사 지휘 송경호 “항소 포기, 국조·특검해야”
- “‘노란봉투법’은 황색 포퓰리즘, 양극화 심화시켜, 당장 폐기해야”
- 이란전으로 10년 우정 깨졌다… 터커 칼슨 “트럼프는 네오콘의 노예” 결별 선언
- ‘괴물 신인’ 박준현 데뷔전 5이닝 무실점 완벽투… 키움 3연승
- 한명회, 계략가? 간신? 어쨌든 끝은 부관참시 [유석재의 악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