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기고] 소변 색깔은 모두 같다

충청투데이 2025. 12. 1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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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에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되는 장면 중 하나는 백인 전용 화장실과 유색인종 화장실을 가로막고 있던 차별의 벽을 허무는 순간이다. 우주개발 총책임자가 망치를 들고 표지판을 부수며 외친 말, "소변 색깔은 모두 같다." 이 짧은 문장은 인종 차별의 부조리함을 단번에 드러내며, 인간의 존엄은 결코 구분될 수 없다는 선언으로 남는다.

자신이 계산한 공식과 보고서에 서명할 수 없었던 현실은 차별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모욕적인 폭력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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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천 호서대학교 특임교수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에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되는 장면 중 하나는 백인 전용 화장실과 유색인종 화장실을 가로막고 있던 차별의 벽을 허무는 순간이다. 우주개발 총책임자가 망치를 들고 표지판을 부수며 외친 말, "소변 색깔은 모두 같다." 이 짧은 문장은 인종 차별의 부조리함을 단번에 드러내며, 인간의 존엄은 결코 구분될 수 없다는 선언으로 남는다.

이 영화는 냉전 시기 우주 경쟁의 한복판에서 NASA의 성공을 떠받쳤던 세 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수학자들의 실화를 다룬다. 그들은 누구보다 뛰어난 수학적 재능과 책임감으로 우주개발의 핵심 역할을 수행했지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름조차 기록되지 못했다. 자신이 계산한 공식과 보고서에 서명할 수 없었던 현실은 차별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모욕적인 폭력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장면들은 눈물겨운 서사인 동시에, 사회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편견의 민낯이다.

이 장면을 오늘 우리의 현실로 옮겨보면, 자연스럽게 노인장기요양서비스 현장이 떠오른다. 한국 사회는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요양보호사·사회복지사·간호사 등 수십만 명의 돌봄 종사자들의 헌신 위에 노인의 일상이 유지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장기요양보험에 등록된 종사자는 70만 명을 넘어섰다. 이들은 24시간 돌봄의 최전선에서 노인의 존엄과 생명을 지키는 사회의 필수 인력이다. 그러나 그들이 처한 노동 환경은 영화 속 차별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첫째는 임금 문제다. 요양보호사의 급여는 여전히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러 있다. 평균 월급은 200만 원 안팎으로, 고강도의 신체 노동과 감정 노동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2008년부터 17년간 근무한 종사자와 1년 차 종사자의 급여 차이가 고작 18만 원에 불과하다는 현실(2026년 기준)은 전문성과 경력이 얼마나 저평가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다.

둘째는 사회적 인식이다. "힘들면 그만두면 되지 않느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니냐"는 무심한 말들은 돌봄 노동을 값싼 서비스로 취급하며 종사자들의 자존감을 무너뜨린다. 그러나 돌봄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다. 인간의 삶의 마지막을 함께하며 존엄을 지키는 가장 근본적인 사회적 행위다. 전문성과 책임, 윤리의식이 요구되는 고도의 공공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해 왔는지 돌아봐야 한다.

이러한 차별과 저평가 속에서도 종사자들은 묵묵히 어르신 곁을 지킨다. 식사를 돕고, 기저귀를 갈며, 밤새 낙상을 막기 위해 잠을 줄인다. 사회가 외면하는 순간에도 그들은 인간다움의 최전선에 서 있다. 역설적으로 가장 낮은 처우를 받는 이들이 가장 높은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야말로 「히든 피겨스」가 오늘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다.

영화에서 차별의 벽을 무너뜨린 힘은 숫자나 과학 기술 그 자체가 아니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평등하다는 확신, 그리고 존엄에 대한 믿음이었다. 장기요양 현장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효율이나 비용 절감이 아니라, 돌봄 종사자의 권리와 존엄이다. 그들의 존엄이 지켜질 때 노인의 존엄도 함께 지켜진다. 처우 개선과 전문성 인정, 사회적 존중은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이다.

"소변 색깔은 모두 같다." 이 말은 장기요양 종사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들의 땀은 모두 같은 색이고, 그들의 헌신은 모두 같은 무게를 지닌다. 우리는 언제까지 그들의 이름을 보고서에서 지워둘 것인가. 이제는 그들의 노동이 '히든(숨겨진)' 존재가 아니라 '피겨스(드러난 인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그것이 초고령사회로 향하는 대한민국이 반드시 감당해야 할 윤리적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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