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부·업계의 이유 있는 ‘안티 쉬인’ 공동 전선…승산도 있을까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매년 이맘때면 '패션의 수도' 프랑스 파리의 상점가는 휘황한 쇼핑 대목을 맞는다.
이에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는 지난달 5일 쉬인의 베아슈베 점포 개장식 1시간30여분 뒤, 쉬인 온라인몰에 대한 '영업 정지'에 착수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는 유통·패션업계가 정부보다 먼저 쉬인에 대항한 '공동 전선'을 짜고 나섰던 배경이다.
프랑스 패션 브랜드 100곳과 업계 12개 협회는 지난달 19일 쉬인의 부당 경쟁 행위로 손실을 봤다며 민사 소송 방침을 밝힌 상태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매년 이맘때면 ‘패션의 수도’ 프랑스 파리의 상점가는 휘황한 쇼핑 대목을 맞는다. 거리마다 잇닿은 크리스마스 장식의 쇼윈도가 손님을 부른다. 프랭탕·갈르리 라파예트 같은 유서 깊은 백화점은 연말 선물을 고르는 파리지앵과 관광객으로 발디딜 틈 없다.
그러나 올해 유독 손님이 끊겨 울상인 곳이 있다. 1856년 파리 시청 맞은편에 문을 연 ‘베아슈베(BHV) 마레’ 백화점이다. 이곳은 지난달 5일(현지시각) 중국계 패스트 패션 브랜드 쉬인(Shein)의 매장을 들였다가, ‘불매’에 가까운 여론 반발을 사고 있다.
인테리어 매장 한 직원은 블랙프라이데이 세일 행사가 한창인 지난달 28일 프랑스 신문 리베라시옹에 “쉬인이 들어온 이후 백화점 방문객이 확연히 줄었다. 너무 조용해서 올림픽 때 같다”고 전했다.
드물게 있는 손님 반응도 신통치만 않다. 쉬인에서 니트 조끼를 구매한 시민은 프랑스 엠(M)6 방송에 “(쉬인 점포에서) 17유로에 샀는데 온라인몰에선 10∼11유로 짜리”라며 미간을 찌푸렸다. 다른 행인은 그의 손에 들린 쉬인 쇼핑백을 보고 야유했다. “창피한 줄 아세요, 마담.”
쉬인은 프랑스에서 왜 이렇게 미움 받을까?

‘안티 쉬인’ 불지핀 파리 진출
베아슈베는 젊은층이 쉬인을 즐겨 쓴다는 점에 주목해 1200㎡ 대형 점포에 쉬인을 들였다. 이 백화점은 프랭탕처럼 ‘오트 쿠튀르’(고급 패션) 전문은 아니지만, 중간 정도 가격의 의류와 가구·생활용품 등으로 파리 중산층 사랑을 받아왔다. 올 연말까지 디종·랭스 등 전국 5개 도시 베아슈베 매장에도 쉬인을 입점시킨다는 계획이었다.
프레데리크 메를랭 베아슈베 사장은 10월1일 도널드 탱 쉬인 회장과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쉬인과의 협업이 “베아슈베를 새로운 세대와 연결하면서 고객층을 다시 젊게 만들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개장 첫날 손님들 반응은 엇갈렸다. 58살 마리아는 리베라시옹에 “(상품들의) 가격 대비 품질이 형편없다. 폴리에스터, 나일론 재질뿐이고 면 제품은 하나도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다른 이들은 “아주 큰 사이즈 옷이나 아동복이 없다”, “인터넷보다 비싸다”, “스웨터가 너무 흐물흐물하다”며 발길을 돌렸다. 반면 “베아슈베의 다른 점포에선 75유로 할 청바지를 쉬인에선 35유로면 산다”며 좋아하는 이도 있었다.

베아슈베 밖에선 ‘반 패스트패션’ 활동가들이 “쉬인은 사양(non merci)” 구호를 외쳤다. 쉽게 쓰고 버리는 쉬인의 값싼 옷들이 쓰레기를 양산하고, 제조 과정에서의 이산화탄소 배출로 유럽연합(EU) 환경기준에 맞지 않으며, 위구르 등 중국 소수민족 노동력을 착취해 만들어진다는 문구가 손팻말에 적혔다. 매장 안에 잠입한 일부 활동가는 매대 사이에 ‘냄새 폭탄’을 터트리거나, 고함을 치다가 경비원들에 붙들려 나갔다.
정치인들의 어조는 한층 더 격했다. 집회에 동참한 공산당 상원의원 이안 브로사는 “베아슈베는 파리의 상징이다. 우리 도시에 쉬인이 들어오는 걸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파리 부시장인 파트리크 블로슈(사회당)와 니콜라 보네 울랄즈(공산당)는 현장을 방문해 “안느 이달고 파리 시장의 이름으로 쉬인과 베아슈베 소유주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다고 했다.

성인용 인형, 살인무기 팔다 덜미
정부는 이런 인형이 프랑스에서 수십개 팔린 것을 확인하고 50대 남성 등 구매자를 체포했다. 실제로 쉬인에서 유통된 무기로 지난 1월 파리에서 살인까지 났다는 게 정부 주장이다.
쉬인은 이전에도 법을 여러번 어겨 악덕 기업 이미지를 쌓은 상태였다. 르피가로에 따르면 쉬인은 2022년 말부터 온라인몰의 할인율을 과장하거나, 가격을 올리고도 ‘할인 행사’로 속였다가 당국으로부터 4000만유로 벌금을 물었다. 올 9월엔 월 1200만명 컴퓨터에서 충분한 고지 없이 데이터를 무단 수집하다 1억5000만유로 과징금을 맞았다.

이에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는 지난달 5일 쉬인의 베아슈베 점포 개장식 1시간30여분 뒤, 쉬인 온라인몰에 대한 ‘영업 정지’에 착수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쉬인이 오픈마켓에 올라온 살상무기를 48시간 안에 삭제하지 않으면, 공정경쟁국이 소비자보호법에 따라 누리집 접속을 차단하겠다는 엄포였다. 쉬인은 자사 브랜드 쇼핑몰을 뺀 오픈마켓 누리집 운영을 중지하며 당국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로랑 뉘녜즈 프랑스 내무장관은 이 조처와 별도로 법원에 쉬인 누리집 3개월 접속 차단을 청구했다. 5일 파리 법원에서 열린 심리에서 정부는 쉬인의 성인용 인형 판매가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 대놓고 소아성애 성향을 띤 대량의 상품 공급”이라고 비난했다.
반면 쉬인은 지금까지 2만7000개 성인용품을 자체 검수 시스템으로 사전에 걸렀다고 항변했다. 너클이 팔린 건 ‘판매자가 보석류인 것처럼 상품 설명을 써서’라고 했다. 쉬인 쪽 변호사는 “(지금은) 두개 이상 손가락에 끼운 반지처럼 보이는 사진은 모두 사람이 직접 검수한다”고 주장했다. 판결은 19일 날 예정이다.
이외에도 정부는 유럽연합 바깥에서 프랑스로 들어오는 150유로 미만 소형 소포에 2유로 세금을 신설하는 견제책도 내년도 예산안에 넣었다. 쉬인이 저가 소포 무관세 규정을 이용해 값싼 물건을 프랑스에 범람시킨다는 이유에서다. 르몽드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연합에 46억개의 저가 소포가 배송됐고, 그 91%가 중국발이었다. 지금 추세면 이 숫자는 2년마다 갑절로 분다.
롤랑 레스퀴르 프랑스 경제장관은 지난달 프랑스앵포 인터뷰에서 쉬인을 향해 “(제재의) 무기고는 계속 차고 있으며 조금의 자비도 없을 것이다. ‘서부극’(무법시대)은 이제 끝”이라고 경고했다.

프랑스 패션계는 생존 위기
프랑스 패션·의류산업연합회의 피에르 프랑수아 르 루에 공동회장은 한겨레에 “프랑스에서 패스트패션 브랜드 제품의 평균 가격은 9유로 정도다. 이는 가격의 하향 나선(연쇄 하락)을 초래해 전통적 패션 산업계를 완전히 뒤흔들었다”며 “그 결과 1만5000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20여개 패션 브랜드가 문을 닫았다”고 전했다.
임대료를 내며 장사하는 오프라인 유통업계 역시 오픈마켓보다 싸게 팔기 힘들다. 슈퍼마켓 체인 위(U)의 도미니크 셀셰르 대표는 정부에 낸 보고서에서 “우리는 (쉬인과 달리) 아무 가격으로나 장사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프랑스 상업연합회는 이런 영향으로 10년 새 프랑스 패션·유통업계에서 1만3500개의 오프라인 매장이 사라졌다고 본다.
쉬인의 너클·마체테 판매를 맨 먼저 신고한 앙투안 베르모렐 마르크 프랑스 공화당 의원은 르피가로에 “쉬인 택배는 (프랑스 내) 물류센터조차 거치지 않고 중국에서 개인 주소로 직배송된다”며 “프랑스식 도심 상권이 붕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쉬인이 현지 경제에 아무 기여 없이 해만 된다는 얘기다. 슈퍼마켓 체인 위(U)의 도미니크 셀셰르 대표는 정부에 낸 보고서에서 “우리는 (쉬인 등과 달리) 아무 가격으로나 장사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는 유통·패션업계가 정부보다 먼저 쉬인에 대항한 ‘공동 전선’을 짜고 나섰던 배경이다. 샤넬과 지방시, 디올, 겔랑, 프란시스 커정 등은 쉬인의 베아슈베 입점이 발표되자 이 백화점서 향수 매장을 빼버렸다. 클라랑스는 연말까지 점포를 비운다. 아페쎄, 산드로, 마쥬 등 젊은층이 좋아하는 패션 브랜드도 나갔다. 앞서 9월 프랑스 캐주얼 브랜드 핌키가 쉬인 입점을 발표하자 프랑스 의류상표 연합은 즉시 핌키를 회원사에서 제명시킨 바 있다.
회사들은 쉬인과 같은 파리 하늘을 이고 지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베아슈베 철수를 공언한 패션 브랜드 아르모르 뤽스의 장 기 르플로크는 르몽드에 “우리 회사가 사회와 환경에 대해 지켜온 책임 원칙을 짓밟는 브랜드와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랑스 패션 브랜드 100곳과 업계 12개 협회는 지난달 19일 쉬인의 부당 경쟁 행위로 손실을 봤다며 민사 소송 방침을 밝힌 상태다.

‘쉬인 타도’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
정부가 법원에 낸 영업 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발효된 유럽연합의 디지털서비스법(DSA)은 개별 국가가 아닌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초대형 플랫폼의 위법 행위를 조사하고, 유럽연합 사법 당국이 위법 여부를 판결하게 한다. 각국 정부가 제재를 남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취지다.
디지털법률 전문 변호사 알렉상드르 아르샹보는 르몽드에 “정부가 유럽 법을 우회하는 꼴이 될 위험이 있다”고 짚었다.
쉬인을 위축시키더라도 다른 중국계 회사들이 프랑스 시장을 노리고 있다. 예컨대 중국 이커머스 공룡 기업 징둥(JD.com)이 유럽 진출을 위해 독일 전자제품 유통사 세코노미 인수를 추진 중이다. 세코노미는 프랑스 서점이자 전자제품 유통 체인인 프낙 다르티의 2대 주주여서, 징둥이 프랑스 시장에도 접근하게 된다. 징둥은 이미 프랑스 수도권에 대형 물류기지를 임대한 채 78개 직군 대상 채용 공고를 내는 등 “유럽을 향한 공세를 시작했다”고 르몽드는 전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김범석 증인 빼달라는 말만 한다”…‘몸빵’ 중인 쿠팡 전관들
- [단독] “의령 벌초” 전재수, 통일교 행사날 부산 식당 결제 드러나
- “쉬인의 싼 가격은 ‘불행’의 대가…3유로 티셔츠 유럽 기준 못 지켜”
- ‘아빠 옆 이 누나는 누구지?’…전두환 손자 전우원, 가족사 웹툰 공개
- 개나리 피는 겨울, 낮 최고 10도 훌쩍…중부엔 비·눈 가끔
- [단독] “김건희 방문 손님, 이름 안 적어”…금품수수 경로된 아크로비스타
- ‘권력 독점’ 노린 윤석열, 취임 초부터 이미 계엄 계획했다
- “날 증오하던 미친 사람, 자업자득”…트럼프, 살해 당한 영화감독 조롱
- 석화 불황에 하청부터 ‘해고 칼바람’…연말 더 캄캄한 ‘여수 밤바다’
- ‘아기 예수 덮치는 이민단속국’…“크리스마스에 벌어지는 불편한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