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진학 디자인] 절대평가 취지가 무너진 수능 영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 12월 4일 발표한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채점 결과에 따르면 영어 1등급 비율은 3.11%에 그쳤다. 이는 2018년 절대평가 도입 이후 역대 최저치로, 상당수 수험생이 수시모집에서 요구하는 수능최저학력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대거 탈락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국어·수학 등 상대평가 과목에서 1등급 비율이 4%임을 고려하면, 절대평가인 영어가 이보다 낮은 비율을 기록했다는 사실 자체가 평가 방식의 기본 취지에 어긋난다. 교육 현장에서 "비상식적인 불수능"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절대평가 영어의 도입 취지는 분명했다. 2018학년도 수능부터 영어 평가 방식이 바뀐 이유는 '영어 교육의 정상화'와 '사교육비 절감'이었다. 지나치게 어려운 문제 출제로 인해 영어 학습이 의사소통 능력 향상이라는 본래 취지를 잃고, 문제풀이 중심의 경쟁 과목으로 변질됐다는 판단에서였다. 필자 역시 당시 영어교사이자 진학부장 교사로서 2014년 부산시교육청이 주관한 영어 절대평가 도입 공청회에 영남권 교사 대표 토론자로 참석한 바 있다. 공청회 발표를 위해 대구 지역 영어교사와 진학담당 교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응답자의 다수는 "영어가 절대평가가 되더라도 사교육비가 줄어들 가능성은 낮다"고 예측했다. 상대평가로 남아 있는 국어·수학·탐구의 난이도가 오히려 상승해 다른 과목의 사교육비 부담이 늘어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후 국어와 탐구과목의 난이도는 상당히 높아졌고, 학원가에서도 해당 과목의 사교육 시장이 크게 확대되었다.
이번 영어 불수능이 더욱 심각한 이유는 영어가 절대평가라는 특성 자체를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 절대평가란 사전에 정해진 성취기준을 충족하면 등급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변별력이 낮다는 단점이 있지만 성취기준에 따라 평가하기에 상대평가에서 오는 지나친 경쟁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올해와 같이 성취기준에 부합하는 학생이 극히 적게 나타나는 상황은 절대평가의 목적과 원리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결과다.
특히 영어는 정시모집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지만, 수시모집 수능최저학력기준 충족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많은 학생이 절대평가라는 안정성을 기대하고 수시 전략을 세우는 만큼, 올해와 같은 난도 급상승은 수험생, 특히 재학생 수험생들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예년 모의고사에서 영어 1등급을 받던 학생이 실제 수능에서는 2~3등급으로 밀려나고, 2등급권 학생이 3~4등급으로 떨어지는 일이 속출하며 수시모집에서 예년에 비해 탈락자가 대폭 증가하고 있다.
물론 평가원이 영어를 어렵게 출제한 배경에는 국어·수학·탐구 2과목, 즉 네 과목으로 50만 명의 수험생을 변별해야 한다는 부담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6월과 9월 두 차례의 모의평가 데이터를 통해 올해 수험생의 전반적 학업 수준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출제는 대비가 부족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학생·학부모·교사 모두 상대평가의 1등급 비율이 4%임을 알고 있기에 절대평가인 영어는 통상 6~10% 범위에서 1등급 비율이 형성될 것이라 예상하며 수능을 준비해 왔다. 이러한 교육 현장의 인식과 수험생의 준비 과정을 고려할 때, 올해 영어 1등급 비율 3.11%는 사실상 출제 오류에 가까운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특정 과목의 난이도 문제가 아니라, 대학입시 제도 전반의 설계와 운영에 대한 신뢰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절대평가 영어의 도입 취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성취기준을 합리적으로 운영하고, 수험생의 예측 가능성을 보장하며, 교육과 입시의 안정성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다시 점검 해 봐야 된다. 무엇보다 수능을 준비하는 수험생에게 예측 불가능한 난이도 변화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발생시킨다는 사실을 평가원이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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