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맥 왕국' 흔들리나…MZ 절주·저도주 트렌드가 한국 주류 시장 바꾼다

김나연 기자 2025. 12. 1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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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층 중심 ‘건강한 음주’ 문화 확산…국내 주류 시장 전환점
저도주·논알코올·하이볼 인기…전통 ‘소맥 문화’ 흔들려
코로나19 이후 술자리 변화…주류·숙취해소제 시장 실적 부진
주류업계, 국내 시장 침체 지속…해외 시장 공략 강화
술잔을 부딪히는 모습. ⓒ연합뉴스

[스포츠한국 김나연 기자]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국내 음주 문화가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단체 회식과 폭음 문화는 빠르게 사라졌고, MZ세대 사이 가벼운 술자리·저도주·논알코올 제품을 선호하는 흐름이 뚜렷해지면서 주류 시장은 물론 숙취해소제 시장까지 지형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한때 '소맥(소주+맥주) 왕국'으로 불리던 한국의 전통적 음주 문화는 점차 힘을 잃고 있으며, 주류 시장은 물론 숙취해소제 시장까지 판도 자체가 뒤집히는 구조적 전환이 시작됐다.

11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올해 주류시장 실적은 전반적으로 부진했다. 하이트진로의 3분기 누적 매출은 1조9289억원, 영업이익은 1816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2.2%, 2.8% 감소했다. 회사는 내수 시장 침체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롯데칠성음료도 같은 기간 주류 부문 매출이 193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3% 줄었고, 3분기 누적 매출은 5753억원으로 7.4% 감소했다. 

두 회사 모두 최근 5년간 '켈리', '크러시' 등 신제품 출시와 마케팅에 막대한 비용과 공을 들였지만, 매출은 감소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국내 맥주 시장 점유율 1위 오비맥주도 실적 부진 속 지난해 판매관리비를 전년 대비 15% 늘리며 신제품 출시와 마케팅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주류업계는 최근 2030세대가 각자 취향에 맞는 주종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과음'보다는 '가벼운 음주'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분석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MZ세대 사이 '헬시플레저(healthy pleasure)'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음주량을 줄이거나 술자리에서 논알코올·무알코올 음료로 대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젊은 세대가 음주를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지고 있다. 20대 직장인 A씨는 "폭탄주를 돌리거나 소주병을 여러 개 비우는 회식은 사라지는 추세"라며 "분위기를 즐기는 정도로만 마시고, 다음날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조절한다"고 말했다. 이어 "친구들이랑 만나도 하이볼이나 와인 한두 잔 정도 마시는 게 편하다"고 덧붙였다.

30대 직장인 B씨는 "예전처럼 술로 스트레스를 풀기보다 가볍게 한두 잔 마시고 금방 헤어지는 분위기가 자연스럽다"며 "다음날 컨디션을 생각해 논알코올 맥주로 분위기를 띄울 때도 많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회식 문화가 크게 바뀐 점도 영향을 미쳤다. 단체로 진탕 마시는 회식·폭음 분위기는 사실상 사라지고, 다양한 주종을 소량 즐기는 형태가 자리 잡았다. 워라밸(일·삶의 균형) 중시, 건강 관리 등 복합 요인이 맞물리며 소맥 중심의 유흥 시장 매출은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고물가로 술값 부담이 커지며 소비자들이 술자리 자체를 줄이기 시작했다. 편의점·가정 중심 '혼술·홈술'로 이동하는 현상도 강화됐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물가는 상승하고 소득은 정체되는 탓에 기호식품인 주류 소비가 크게 줄었다"며 "같은 소주라도 식당·술집은 5000~6000원, 편의점은 1600~1900원 정도로 가격 차가 커 가정용 주류 소비 비중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국내 주류 총 출고량은 2015년 380만㎘에서 2024년 315만㎘로 9년 사이 약 17.3% 감소했다. 1인당 주류 소비량 역시 2008년 9.5ℓ로 정점을 찍은 뒤 줄곧 하락세다. 코로나19 시기인 2020~2021년에는 7.7ℓ에 머물렀고, 2022년 8ℓ로 소폭 늘었지만, 코로나19 이후인 2023년에도 7.8ℓ에 그치며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했다.

음주 감소는 자연스레 숙취해소제 시장에도 타격을 줬다. 약 3500억원 규모로 추정되는 시장에서 40%의 점유율로 1위를 유지하는 HK이노엔 '컨디션' 매출은 2018년 854억원에서 코로나19를 거친 후 지난해 593억원으로 30% 가까이 줄었다. 2위 삼양 '상쾌환' 역시 성장세가 둔화했고, 3위 동아제약 '모닝케어'도 정체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저도주'와 '가성비 주류'의 부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편의점업계에 따르면 현재 저도주 트렌드를 이끄는 핵심 제품은 하이볼이다. CU는 업계 최초 RTD(Ready to Drink) 하이볼을 출시한 이후 2023년 매출이 전년 대비 553.7% 증가했고, 2024년 315.2%, 2025년(1~10월) 190.1% 성장했다.

이마트24도 하이볼 열풍의 수혜를 누렸다. 2023년4월 판매를 시작한 이후 2024년 매출이 전년 대비 260% 증가했고, 올해 상반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35% 늘었다. GS25의 3분기 하이볼 매출은 전년 대비 68.2%, 세븐일레븐 '와인볼' 매출은 20% 올랐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연말을 앞두고 회식·송년회 등 술자리가 많아지는 시기에 소비자들의 음주 문화가 폭음이 아니라 가볍게 분위기를 즐기는 술자리로 바뀌고 있다"며 "하이볼과 저도주 성장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도주 선호 현상은 식품업계의 논알콜 제품군 확장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웅진식품은 금일 '샤토(Château) 와인 논알콜 와인맛 스파클링'을 출시하며 처음으로 논알콜 와인 시장에 진입했다.

이번 신제품은 레드와인맛·화이트와인맛 스파클링 2종으로 구성됐다. 회사 측은 코로나19 이후 확산된 '건강한 주류 문화'와 '가볍게 마시는 트렌드'를 반영한 제품으로, 와인 소비가 줄어드는 가운데 논알콜 와인이 대안으로 부상하는 흐름에 맞춘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웅진식품 관계자는 "와인의 분위기는 즐기고 싶지만 알코올은 부담스러운 소비자를 위해 준비한 제품"이라고 말했다.

정체된 내수 시장 속에서 주류업계는 해외 시장 공략도 강화하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베트남 하노이에 첫 해외 생산기지를 구축해, 이를 동남아 인근 국가로 연간 최대 500만 상자의 소주를 공급하는 물류 거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롯데칠성음료는 미국을 중심으로 과일소주 수출을 확대하고 있는 가운데, 올 상반기 미국 내 '순하리' 판매 채널은 2만3000여개를 넘어섰다. 오비맥주도 지난 2016년부터 미국·몽골·동남아 등 카스 수요가 높은 시장을 중심으로 수출을 확대하며, 최근 수출용 소주 브랜드 '건배짠'을 선보였다. 내년 1월부터 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에서 본격 판매에 들어갈 예정이다.

다만 업계 구조상 내수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상황이다. 올해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의 내수 매출 비중은 각각 90%, 89%에 이르러, 해외 매출이 전체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내수 시장이 계속 침체기에 빠진 상황에서 어느 한 곳에 집중하기보다 기회가 보이면 다양한 지역으로 확장하고자 한다"면서도 "하이볼 등 저도주 시장이 성장세에 있지만 전체 규모는 아직 소주·맥주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시장 변화로 인해 주류업계는 더욱 고민이 깊어졌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8일 14년 만에 CEO를 교체하며 침체된 내수 시장 대응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저도주·무알코올·하이볼 등 젊은 세대의 새로운 소비 패턴에 맞춘 제품 전략과 해외 사업 확대를 병행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시장에서는 국내 음주 문화 변화가 일시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 전환점에 들어선 것이라고 분석한다. 세대 교체와 인구 감소·고물가·건강 트렌드 등이 맞물리며 전통적인 주류 소비 방식이 성장세를 이어가기 어렵다고 평가한다.

주류 업황에 밝은 한 관계자는 "2030세대의 음주 방식이 기성세대와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며 "소맥이나 고도주만으로는 성장 한계가 있기에 앞으로는 저도주·논알코올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존 제품만으로는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주류시장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젊은 소비자들을 겨냥한 신제품 개발과 브랜드 전략 변화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스포츠한국 김나연 기자 yeonpil@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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