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복원’ 택한 고운사, 멸종위기 2급 담비 돌아왔다

11월2일 이규송 국립강릉원주대학교 생물학과 교수와 함께 경북 의성 고운사 사찰림을 찾았다. 강도 높은 식생조사를 하기로 유명한 이 교수는 산길을 따라가다 말고 절벽 쪽으로 몸을 틀었다.
“이제 시작입니다.” 그는 머뭇거리지 않고 절벽에 가까운 비탈길을 따라 능선을 향해 올랐다. 우리가 오른 비탈길은 고운사 사찰림 남쪽 능선의 북사면이었다. 능선에 다다르자, 산불 피해로 그을린 가지가 앙상하게 남은 나무들이 보였다. 나무들 아래에는 곳곳에서 아주 어린 활엽수와 침엽수 유목들이 자라고 있었고, 죽은 나무 아래에서는 새로운 줄기가 돋아나는 중이었다.
2025년 3월, 역대 최악의 초대형 산불로 70만 평에 이르는 고운사 사찰림은 숲의 약 3%만 남은 채 거의 모든 나무가 산불 피해를 입었다. 우리나라에서 통상적으로 산불 피해 지역의 숲에서는 위험하다거나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대규모 벌목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고운사는 사찰림을 ‘자연복원’하기로 결정했다.
그린피스와 안동환경운동연합, 불교환경연대, 서울환경연합, 생명다양성재단 등 환경단체와 연구진은 고운사 사찰림의 자연복원 과정을 과학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식생·동물·생물음향·곤충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교수는 여기서 식생조사를 맡고 있다.
멧돼지 목욕, 오소리 길, 계곡의 담비…
산불이 모든 걸 없앤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땅속에 숨어 있던 다양한 종류의 나무 씨앗은 산불 이후에도 살아남아 싹을 틔우고 있었다. 땅에 숨어 생존한 벌레들도 하나둘 나와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특히 활엽수는 줄기가 다 탔어도 ‘움싹(뿌리나 그루터기에서 돋는 새싹)’에서 새로운 줄기가 자라났다. 그 덕에 우리는 죽은 나무가 어떤 수종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북사면에는 습한 곳에서 잘 자라는 신갈나무가, 남사면에는 상대적으로 건조한 환경에 강한 굴참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계곡부에는 갈참나무가 많았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다수의 개옻나무가 확인되었다. 아직 성인 키보다는 작지만 가을을 맞아 제법 붉게 물든 모습이 보였다.
사람의 눈에 산불 피해를 당한 숲은 폐허로 보일 수 있다. 죽은 나무가 쓰러져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시설물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산불 피해를 입은 나무를 ‘위험목’으로 지정해 베어내기도 한다. 심지어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대규모 벌채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자연 속 숲에게는 산불마저도 생태계의 한 과정이었다. 산불로 인해 질소(N)와 황(S) 등 일부 영양소는 공기 중으로 휘발되지만, 칼슘(Ca), 마그네슘(Mg), 칼륨(K) 등 많은 무기영양소는 재에 남아 토양 표면에 공급된다. 산불 후 재가 일시적으로 토양 표층의 양분 공급원이 되어 초기 천이(遷移) 단계의 식생 회복을 돕는다는 연구 결과도 여러 차례 보고된 바 있다. 죽은 나무는 결국 거름이 되어 어린 나무들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우리가 “죽었다”라고 말하는 숲 위에서, 생태계는 이미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산림 문제를 놓고 벌어지는 논쟁에서 나무의 수종이나 식재 방식만을 두고 무엇이 맞고 틀린지 격렬하게 대립하는 광경을 자주 보게 된다. 그러나 “나무가 아니라 숲을 봐야 한다”라는 말처럼, 숲에는 나무만 있는 게 아니다. 무수한 동물과 곤충,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이 함께 산다.

이날 식생조사 중 우리는 멧돼지가 목욕을 한 흔적을 발견했다. 산불이 지나가고 비가 오면서 습해진 구간에는 이끼가 자랄 정도로 물기가 모여 있었다. 멧돼지는 이런 장소를 찾아내 흙 목욕탕처럼 뒹굴고 지나간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멧돼지는 피부에 붙은 기생충을 제거하고 체온을 식힌다. 흙탕물로 뒤범벅이 된 몸을 이곳저곳에 비비고 다니며, 또 다른 생명의 씨앗과 미생물을 숲 곳곳에 옮기기도 한다. 멧돼지가 남긴 흔적은, 이 숲이 여전히 누군가의 삶터라는 증거였다.
다수의 오소리 굴도 발견할 수 있었다. 오소리는 천적으로부터 몸을 숨길 굴을 만들고, 굴 근처에 전용 화장실을 만들어 배설물을 모은다. 이를 통해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고 먹이 활동에 나선다. 짧은 다리로 굴을 파고, 화장실에 갔다가 먹이를 찾아 산을 오르내리며,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산자락에 흐릿한 길을 남긴다. 이런 습성 때문에 ‘오솔길’의 어원이 ‘오소리 길’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다.

최근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와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에서 고운사 사찰림에 설치한 카메라에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에 해당하는 담비의 모습이 찍혔다. 담비는 작은 과일과 꿀, 곤충부터 쥐와 뱀, 심지어 멧돼지 새끼까지도 사냥할 수 있는 잡식성 최상위 포식자 중 하나다. 그런 동물이 산불 피해지에서 다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아래 단계의 동식물이 이미 촘촘하게 자리 잡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담비 한 마리 뒤에,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생명이 함께 서 있는 셈이다. 사람 눈에 “전부 타버린 숲” 고운사 사찰림은 이미, 조용히 스스로를 복원하고 있었다.
‘자연’이라는 말은 한자로 ‘스스로 자(自)’와 ‘그러할 연(然)’을 쓴다. 스스로 그러한 것, 스스로 있는 그대로의 상태. 그 ‘자연(自然)’의 뜻을 고운사 사찰림 자연복원 현장에서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다. 산불이 지나간 뒤 인위적으로 나무를 심고 잔디를 까는 식의 ‘보기 좋은 숲’ 만들기를 하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서 멈춤이 아니라 경쟁과 공존, 성장과 쇠락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한국 숲의 축복을 손실로 바꿀 텐가
고운사 사찰림에서 확인할 수 있듯, 대한민국의 온대성 활엽수림은 산불 뒤에도 자연 천이를 통해 스스로 회복할 기본 역량을 가지고 있다. 녹색연합도 경북 산불 피해지 면적의 약 80%에서 활엽수 맹아가 확인됐고, 인공조림이 필요 없는 수준으로 자연복원이 가능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모든 숲이 자연복원이 가능한 건 아니다. 유럽과 북미 등지에서는 고강도 산불 이후 자연재생이 지연되거나 실패해, 적극적인 인공조림과 관개, 토양 복원 없이는 숲이 돌아오지 못하는 사례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침엽수 단일 수종 조림지이거나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 때문이다. 또 북유럽·영국의 이탄습지(peatland)와 같은 곳에서는 한번 큰 산불이 나면 토양 자체가 손상돼 원래의 습지가 회복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리거나, 아예 다른 식생으로 바뀌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고운사 사찰림과 같은 자연복원이 가능한 숲은 우리에게 축복이다. 이런 자연을 우리는 지금 “돈이 되는 자연으로 만들자”는 구호로 다시 깎아내리려 하고 있다. 산불의 상처를 치유할 기회가 새로운 개발의 명분이 되는 순간, 이 축복은 되돌릴 수 없는 손실로 바뀐다.
올해 제정·공포된 이른바 ‘산불특별법’은 경북·경남·울산 초대형 산불 피해 지역의 구제와 재건을 명분으로 내걸고 있다. 그러나 법조문을 들여다보면, 피해지 일대를 ‘산림투자선도지구’ 등으로 지정해 대규모 개발사업을 추진할 길을 넓혀주는 조항들이 눈에 띈다. 재난을 계기로 피해 주민의 삶을 복구하기보다, 오히려 보호지역 해제와 산지 난개발을 손쉽게 허용하는 “재난 자본주의”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산불 피해지의 안전을 이유로, 경관을 이유로, 그리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숲을 베어내는 선택은 쉽고 빠르다. 눈앞의 깔끔함과 단기 이익을 안겨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잃어버릴 자연복원의 기회,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될 수 있는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서비스는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
고운사 사찰림의 자연복원은 한 사찰의 고집스러운 선택이 아니다. 산불의 상처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우리는 숲에게 시간을 줄 의지가 있는가? 한국 사회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다.
최태영 (그린피스 생물다양성 캠페이너)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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