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지 않은 돌봄: 캐나다 아우구스티누스 수녀들의 세계기록유산

정소혜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선임전문관 2025. 12. 10.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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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누군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은 조금 덜 흔들린다고. 그러나 어떤 시대에는 그 '곁'이라는 것이 단순한 동행을 넘어, 낯선 땅에서 서로의 생을 감당하기 위한 유일한 자리가 되기도 했다. 오늘 소개할 세계기록유산, "신세계에서의 돌봄: 캐나다 아우구스티누스 수녀들"은 바로 그 자리를 지켜낸 여성들의 기록이다. 긴 세월 동안 돌봄이라는 말의 무게를 온몸으로 감당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다.

1639년, 프랑스 디에프에서 세 명의 젊은 수녀가 바다를 건넜다. 그들의 짐이라고는 서류 몇 장뿐이었다. 신세계에서 세울 병원을 공식적으로 허가한 왕의 문서, 수도회의 규범,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질 병원의 기틀을 담은 기본 문서가 작은 상자 속에 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 소박한 출발이 훗날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 병원 기록이자, 380년에 걸친 돌봄의 역사를 품게 될 줄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수녀들이 도착한 퀘벡은 혹독한 겨울과 익숙지 않은 환경, 그리고 이미 그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던 다양한 질병이 공존하던 땅이었다. 의료 인력은 턱없이 부족했고, 약품이나 장비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수녀들은 병상 곁을 지키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원주민의 약초 지식을 배워 조제에 활용하고, 새로 이주한 사람들의 이름과 증상을 면밀히 기록하며, 전쟁이 닥쳤을 때는 어느 편의 병사든 가리지 않고 돌보았다. 당시 기록에는 그들이 환자들을 "우리의 주인이신 병자들(Nos seigneurs les malades)"이라 부르며 존엄을 지키려 했던 태도가 그대로 남아 있다.

19세기 이후, 이 돌봄은 국경을 넘어 이어진다. 수녀들은 남아프리카, 아이티, 레바논, 파라과이 등 의료 접근이 어려운 지역으로 향했고, 그 여정 또한 빠짐없이 기록으로 남겼다. 오늘날 이 자료들은 세계 보건사 연구자들이 반드시 찾는 중요한 사료가 되었다.

이 기록유산이 특별한 이유는 단지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랫동안 역사에서 주변부에 머물러야 했던 이들의 목소리가 종이 위에 생생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병으로 쓰러진 이의 이름, 전쟁터에서 실려 온 병사들의 출신지, 버려진 아이들의 짧은 생애, 그리고 수녀들이 매일 밤 써 내려간 연대기까지. 이 모든 기록은 누군가의 고통을 기억 속에서 지우지 않겠다는 다짐과도 같다. 죽음을 막지 못했던 순간들조차, 잊지 않음으로써 다른 결을 가진 의미가 되었다.

이 기록유산은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우리는 누군가를 어떻게 돌보고, 그 이야기를 어떻게 남길 것인가. 보이지 않는 돌봄의 노동은 언제나 역사의 주변에 있었지만, 누군가는 밤마다 등을 굽혀 기록을 남겼다. "이 삶은 기억될 가치가 있다"고 말하듯이.

오늘도 수많은 병실에서 누군가의 손길이 또 다른 하루를 버티게 하고 있을 것이다. 그 조용한 손길 하나가 세상을 지탱한다는 사실은, 17세기의 신세계나 지금의 우리 사회나 다르지 않다. 아주 오래전 눈보라 사이에서 수녀들이 써 내려간 기록이 있다. 그 기록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누군가를 돌보며, 삶을 조용히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손길의 기억도 또 다른 기록이 되어,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만들어 왔는지 조용히 증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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