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남파랑길 90코스

108계단을 오르면서 번뇌를 여의고 윤장대를 돌리며 부처님의 말씀까지 가슴에 새겼으니 부처님을 만날 준비를 마친 셈이다.
자하루를 지나면 미황사의 중심공간이다. 미황사는 절마당을 가운데 두고 ‘ㅁ’자형으로 건물이 배치돼 있다. 자하루에서 볼 때 정면에 대웅보전(보물 제947호)과 응진전(보물 제1183호) 같은 전각들이 자리했고, 그 뒤로 달마산 암봉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미황사는 대웅보전과 응진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건물이 근래에 증축됐지만 오래된 건축물처럼 달마산과 조화를 이뤘다. 돌계단과 경사지에 쌓은 돌축대까지도 바위봉우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현재는 대웅보전이 보수중이라서 마당에 가건물로 임시법당을 지어놓아 미황사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미황사 부처님께 참배하고 도솔암 방향으로 걷는다. 도솔암 가는 길은 언제가도 포근하다. 아름드리 소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그윽한 분위기를 연출해주는 길은 조용히 사색하며 걷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길은 부도암 입구에서 오솔길로 바뀐다.
오솔길로 들어서기 전에 부도암부터 들른다.
부도암으로 들어가는데 부도밭이 눈길을 끈다. 부도밭에는 24기의 부도와 부도비가 서 있고, 뒤쪽에는 낮은 담장을 둘러놓았다. 이곳 부도와 부도비들은 특별히 빼어난 것도 없이 모두 고만고만하다. 전체적으로 소탈하면서도 정갈한 것이 청렴하게 살아온 선승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부도암에서 도솔암 방향으로 숲속 오솔길을 걷는다. 울창한 숲으로 뒤덮인 오솔길은 완만하고 고요하다. 길 위에는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부스럭부스럭 낙엽 밟는 소리가 내 마음을 가난하게 한다. 푹신한 흙길을 걷다가 중암너덜을 만난다.

중암너덜을 지나니 도솔암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남파랑길은 도솔암을 거치지 않아 오늘은 도솔암까지 가파른 길을 올라갈 필요가 없다.
삼나무 편백나무숲길을 지나 산 아래 마봉리로 통하는 임도를 만난다. 달마산 둘레길인 ‘달마고도’는 여기에서 헤어진다.
몰고리재에 도착했다. 몰고리재부터는 능선을 따라서간다. 수많은 바위봉우리로 이뤄진 달마산과 달리 포근한 육산이 땅끝까지 이어진다. 능선은 땅끝기맥에서도 마지막 구간으로 한반도에서 가장 남쪽에 자리한 산줄기다.
한참을 걷다보니 몰고리재 이후 처음으로 전망이 트인다. 발 아래로 통호마을과 주변들판이 정답게 다가온다. 통호마을 뒤로 펼쳐지는 다도해는 넓고 잔잔하다. 길쭉하게 펼쳐진 백일도 뒤로 횡간도·노화도· 소안도·대모도·청산도를 비롯한 크고 작은 섬들이 푸른 바다에 아름답게 그림을 그려놓았다.
산줄기는 남서쪽을 향하여 길게 뻗어나간다. 능선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고도를 낮춘다. 한반도 남쪽 끝에 있는 산이라 나무의 종류도 난대림과 온대림이 섞여있다. 모처럼 서해바다가 모습을 드러내준다. 서쪽 산자락 바닷가에 송호리가 포근하게 자리하고, 송호리 뒤편 바다에 어란진항 앞에 떠 있는 작은 섬 어불도가 바라보인다. 어불도 뒤편 서해바다 한 가운데에서 진도가 아련하게 다가온다.

얼마나 걸었을까? 한반도 마지막 봉우리 갈두산 사자봉과 땅끝마을이 가까워졌다. 사자봉에는 땅끝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금방 도착할 것 같던 땅끝전망대는 중간에 또 하나의 봉우리를 넘어야한다.
망집봉(165m)인데 이 봉우리에 팔각정자가 서있다. 정자에서 바라보니 북쪽으로 달마산에서 이어져온 산줄기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가오고, 나머지 삼면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땅끝마을 앞바다에 떠 있는 흑일도와 백일도는 손에 잡힐 듯 가깝고, 노화도 보길도 소안도 청산도를 비롯한 수많은 섬들이 드넓게 다도해를 이뤘다.
땅끝전망대에서는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고, 맑은 날에는 제주도 한라산까지 보인다. 사자봉에 세워진 전망대는 9층 높이로 타오르는 횃불의 역동적인 이미지를 형상화해 통일의 염원을 담고 있다. 백두산에서 시작돼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전북 장수 영취산에서 금남호남정맥을 분가하고, 이후 호남정맥으로 뻗어나가다가 전남 화순과 장흥의 경계지점인 곰치 근처 노적봉에서 땅끝기맥으로 분기해 123㎞를 달려 이곳 땅끝에서 바다로 스며든다.

땅끝은 한반도의 끝이면서 바다에서 한반도로 올라서는 시작점이다. 땅끝탑이 있는 이곳은 바다를 향해 뱃머리처럼 튀어나와 한반도의 끝을 이루는데, 여기를 해남각이라 한다. 해남각은 서해와 남해를 가르는 분기점이다. 남파랑길이 끝나고, 서해랑길이 시작된다.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시작해 남해안을 따라 1천470㎞를 달려온 남파랑길 90개 코스가 땅끝탑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기나긴 여정 속에는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조상대대로 이어져온 마을과 그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혼이 서려있다. <장갑수·여행작가>
▲남파랑길 90코스는 1천470㎞에 이르는 남파랑길 마지막 코스다. 달마산 미황사에서부터 시작된 남파랑길 90코스는 한반도의 마지막 산줄기를 따라 한반도 최남단 땅끝까지 이어지는 상징적인 구간이다.
※코스 : 미황사 천왕문→부도암 입구→도솔암 갈림길→몰고리재→땅끝호텔→땅끝전망대→땅끝탑
※거리, 소요시간 : 13.9㎞, 6시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미황사주차장(해남군 송지면 미황사길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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