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종속’ 심화 우려…한국형 AI칩 개발·생산 나서야

박종오 기자 2025. 12. 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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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의 대형 회의장인 그랜드볼룸에 국내 이공계 개발자와 연구자가 1천명 이상 모여들었다.

엔비디아가 단순히 칩만 판매하는 것을 넘어 인공지능 모델 개발, 가상공간 시뮬레이션 등을 위한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한 묶음'으로 내놓으며 인공지능 산업 전반의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토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 역시 당장 필요한 엔비디아 칩 확보를 넘어, '케이(K)인공지능 칩' 개발을 위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투 트랙 전략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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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U26만장 AI한국의 과제
③ 국내 인공지능이 가야 할 길은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의 대형 회의장인 그랜드볼룸에 국내 이공계 개발자와 연구자가 1천명 이상 모여들었다. 인공지능(AI) 칩 선두주자인 미국 엔비디아가 개최한 ‘엔비디아 인공지능 데이 서울’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엔비디아의 기술력을 소개하는 회의장 대형 화면 3개 앞으로 놓인 좌석엔 빈자리가 없었다. 참석자들은 단상에 오른 엔비디아 임원들의 말을 놓칠세라 노트북과 메모장에 받아 적었다. 글로벌 인공지능 생태계를 지배하는 독점 기업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실파 콜햇카 엔비디아 글로벌총괄은 이날 “인공지능은 전기·인터넷·수도와 같은 기본 인프라이자 국가 차원의 공공재가 됐다”며 “한국이 세계적인 인공지능 제조국이 되도록 파트너십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엔비디아가 2030년까지 한국에 공급하기로 한 자사 인공지능 칩 26만장을 발판 삼아 한국 인공지능 산업에서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국내에 인공지능 칩을 대거 풀어 인공지능 생태계를 장악하려는 의도가 읽힌다”고 했다.

엔비디아의 무기는 물리적인 인공지능 칩이 전부가 아니다. 시장에서는 이 기업이 만든 소프트웨어인 ‘쿠다’(CUDA)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엔비디아가 독점적 지위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쿠다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에 최적화된 프로그래밍 도구다. 게임용 그래픽카드가 가진 ‘동시에 여러 작업을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을 인공지능 학습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2006년 말 무료로 출시된 쿠다는 지난 20년 가까이 라이브러리(고성능 계산 도구 모음)를 축적한 까닭에 엔비디아의 ‘이용자 가두리 전략’(록인 전략)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해자(높은 진입장벽)로 여겨진다. 엔비디아가 단순히 칩만 판매하는 것을 넘어 인공지능 모델 개발, 가상공간 시뮬레이션 등을 위한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한 묶음’으로 내놓으며 인공지능 산업 전반의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토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는 엔비디아가 미국 빅테크(거대 기술기업) 등에 인공지능 칩을 장당 수천만원에서 최대 1억원 남짓에 팔며 매출의 절반 이상을 마진으로 남기는 배짱 장사의 비결이기도 하다.

문제는 2030년까지 엔비디아 지피유 26만장을 공급받을 한국이 제 발로 이 기업 생태계로 들어가게 되면서, 엔비디아 의존도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최병호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소 교수는 “원래 게임용으로 개발된 엔비디아 칩은 가격이 비싼데다, 전력 소비 등의 측면에서 인공지능에 특화된 반도체가 아니다. 엔비디아 의존도를 분산하기 위한 자체 인공지능 반도체 개발 등 우리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외국 기업들은 일찌감치 인공지능용 맞춤형 칩(ASIC) 개발과 활용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구글이 최근 출시한 차세대 인공지능 모델인 ‘제미나이 3.0’ 개발에 활용한 텐서처리장치(TPU)가 대표적이다. 구글이 2015년 처음 출시해 10년간 개발해온 칩으로, 특정 인공지능 연산(행렬 곱셈)에 특화돼 전력 소모가 적고 가격도 엔비디아 칩에 견줘 훨씬 저렴한 게 특징이다. 미국이 첨단 반도체 및 생산장비 수출 규제를 하는 중국도 화웨이와 스타트업 캠브리콘 등을 중심으로 ‘탈엔비디아’ 전략에 성과를 내고 있다.

한국 역시 당장 필요한 엔비디아 칩 확보를 넘어, ‘케이(K)인공지능 칩’ 개발을 위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투 트랙 전략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산업의 무게 중심이 인공지능 모델을 가르치는 ‘학습’에서 이제는 학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결과물을 도출하는 ‘추론’으로 옮겨가며 이러한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인공지능용 메모리(HBM) 생산뿐만 아니라 토종 인공지능 반도체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를 육성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화학공학)는 “국내에도 자체 인공지능 칩 설계 역량이 있는 회사가 적지 않지만, 칩 생산 비용이 수백억원에 이르는데다 이를 만들어줄 반도체 공장(팹)도 거의 없다 보니 ‘그림의 떡’인 상황”이라며 “좋은 칩을 만들고도 타이밍을 놓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정부가 5년 정도의 장기 계획을 수립해 공용 팹을 마련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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