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주점’과 팟캐스트…검열과 통제 속 중국 인민의 새 공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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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저녁 베이징 우다오커우의 한 바, 일요일 저녁이지만 40여명의 사람이 자리에 빼곡했다.
중국에서 팟캐스트가 청년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배경에는 검열의 '회색 지대'라는 점이 작용한다. 중국의 디지털 감시·통제를 추적하는 '차이나 디지털타임스'는 팟캐스트가 중국에서 당국의 제약이 덜한 대안적 매체로 자리 잡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의 팟캐스트 생태계는 감시와 검열이 결합한 구조 안에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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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저녁 베이징 우다오커우의 한 바, 일요일 저녁이지만 40여명의 사람이 자리에 빼곡했다. 술잔을 각자 앞에 두었지만, 눈길은 바의 한쪽 벽면을 향했다. 2개의 스크린에 1790년대 영국의 화가가 청나라를 찾았을 당시 그린 그림들이 펼쳐졌다. “이건 청나라 백성들의 이미지입니다. 이 그림들은 매우 소중합니다. 청나라의 궁정 회화 속에는 백성들의 이미지가 거의 보존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죠. 여기 보이는 건 당시 평범한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어요. 당시에는 사진기가 없었기 때문에 그림을 그려 당시 인물의 형상과 사회 풍속을 묘사했습니다.” 마이크를 든 강사는 열정적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우주객청(거실)’이라는 이름의 이 공간은 낮이면 카페였다가 저녁이면 칵테일 등을 파는 술집으로 변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세차례, 강의실로 다시 탈바꿈한다. 중국 베이징, 상하이, 항저우 등에서 성행하는 학술주점(学术酒吧)의 풍경이다. ‘학술’과 ‘술집’이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요소의 결합은 느슨하고, 개방적이며 포용적인 교류의 공간을 창출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중국에서 발간된 학술지 ‘청년발전포럼’에 학술주점 확산 현상을 다룬 논문 한편이 게재됐다. 저자인 친신위안 중국 국방대학 정치학원 강사는 논문에서 “학술주점엔 지적 호기심과 정신적 욕구가 왕성한 청년들이 주로 참여하고, 느슨한 학습 공간에서 사회적 관계를 구축하며 정서적 가치를 얻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우주객청 강연은 청나라를 찾은 영국의 첫 공식 사절단에 속해 있던 화가 윌리엄 알렉산더가 그린 기록화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강의의 주제는 ‘1793년 매카트니 청나라 사절단의 시각문화’였다. 예술사학 전공자인 강연자는 자신이 “이미지가 역사적인 사건을 해석하는 데 어떤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탐구한다”고 설명했다.
학술주점의 끝은 강의가 아니다. 강연자와 청중 사이에 오가는 질문과 대답들이 이 시간을 완성한다. 이날도 강연이 끝나자 강연자가 제시한 그림의 의미, 예술과 과학 그리고 외교를 연결 짓는 과정 등에 관한 질문이 이어졌다. 이런 공간에서 느슨하고 자유로운 대화가 오간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애초에 민감한 주제를 피하기 때문이다. 과학, 역사부터 첨단기술과 소수민족 문화 등 주제는 다양하지만, 정치적으로 읽힐 수 있는 강연은 드물다. 학술주점을 완성하는 질의응답에도 선이 있다. 우주객청 운영자는 방문객에게 질의응답 시간엔 “민감한 화제를 피해달라”고 안내문에 명시했다.
중국에서 공론장 토론은 위험 부담을 안고 있다. 당국에 대한 불만, 비판 등이 유통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사이버보안법과 인터넷정보서비스관리규정을 통해 국가정권 전복, 사회질서 교란, 허위정보 유포로 판단되는 온라인·오프라인 발언을 금지하고, 플랫폼과 이용자 모두에게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대학과 공공기관은 외부 강연·포럼 개최 때 사전심사를 거쳐야 하고, 정치·이념 관련 내용은 별도 보고 대상이다.
민감한 주제를 다룬 강연이 개최 직전 취소되거나, 서점·문화공간의 행사가 돌연 중단된 사례는 반복되고 있다. 2021년 상하이의 한 독립서점이 열려고 했던 홍콩 관련 강연이 “적절성 문제”를 이유로 당일 취소됐고, 베이징의 일부 대학에서는 근현대사 강연이 당국의 사전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기도 했다. 이런 규제는 정치적 발언을 자제하고 비교적 안전한 주제로만 의견을 나누게 하는 ‘자기검열’을 강화한다.
검열과 제한 속에 쓰촨성 청두의 한 독립서점은 폐쇄될 위기를 맞았다가, 파문이 일자 운영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됐다. 국내외 유명인사들이 찾아 다양한 주제의 강연을 해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청두 유싱서점의 주인 장펑은 지난달 29일 소셜미디어 웨이신 계정에 ‘고별인사’를 남겼었다. 그는 “서점이 끝을 맞이할 수 있는 많은 방식을 상상했고,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불가항력’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되고 있다”고 적었다. 이 글이 올라오고 일주일 뒤 장펑은 서점이 문을 닫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게시글을 올렸다. 폐쇄를 알린 게시글에서 ‘불가항력’ 등의 표현은 삭제되어 있었다.
청두는 중국 내에서 가장 자유로운 분위기를 가진 도시로 꼽힌다.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과 이해도가 높은 공간으로 알려지면서, ‘해방구’를 찾는 중국의 젊은이들이 청두로 향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국의 압력엔 예외가 없다. 유싱서점 사례는 독립서점 등의 공간이 당국의 통제와 공론장의 확대 사이에서 줄타기해야 하는 현실을 드러낸다. 줄타기에 실패한 중국의 많은 독립서점은 문을 닫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지난 몇달 동안 청두에서만 최소 다섯곳의 서점이 문을 닫았다고 전했다. 같은 기간 책 관련 전시회 2개도 취소됐다.

중국 청년들이 찾을 공론장은 더욱 축소되고 있지만, 자기 생각을 전하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 찾기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정부의 감시와 통제라는 벽 앞에서 다시 옆으로 길을 낸다. 중국인들은 영상 기반의 플랫폼이 대세인 시대에 음성 기반의 팟캐스트를 찾는다. 중국의 팟캐스트 콘텐츠는 기존 미디어에서 다루지 않는 이야기를 청년들이 공유하는 통로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에서 팟캐스트 이용자는 2021년 8600만명에서 74% 증가해 올해 1억5천만명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에서 팟캐스트가 청년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배경에는 검열의 ‘회색 지대’라는 점이 작용한다. 전통적인 매체나 영향력이 부쩍 커진 소셜미디어 등보다 감시가 상대적으로 적다. 중국의 디지털 감시·통제를 추적하는 ‘차이나 디지털타임스’는 팟캐스트가 중국에서 당국의 제약이 덜한 대안적 매체로 자리 잡고 있다고 전했다. 언론인 팡커청 등은 뉴스룸에서 시도하기 어려웠던 사회적 의제를 팟캐스트에서는 더 자유롭게 다룰 수 있었다고 말한다. 성평등, 성소수자, 대학 내 권력 문제처럼 기존 매체에서 금기시되던 주제들도 청취자들이 모이는 작은 커뮤니티 안에서 논의가 가능해지면서 팟캐스트가 청년들이 ‘말하기’를 이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는 조건이 오히려 솔직한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웃기거나, 보기 좋거나, 끔찍한 게 아니라면 영상 기반 플랫폼에서 눈길을 잡아두기 어렵다. 이걸 포기한 만큼 더 솔직해지고, 과시보다는 경험의 ‘공유’에 초점을 맞춘다. 팟캐스트 제작자들은 부당한 경험, 스트레스와 좌절 등을 이야기하고, 청년들은 여기에서 공감과 위로를 받는다. 댓글을 통해 소통도 이뤄진다. 심리학 팟캐스트를 자주 듣는다는 둥(가명·35)은 “아마 (관영매체 등의) 기사만 보면 중국엔 별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며 “우울과 좌절 등을 그나마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팟캐스트”라고 말했다. 더우인, 샤오훙수 등 영상 기반 플랫폼은 기업들의 거대한 마케팅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는 게 둥의 지적이다.
그러나 팟캐스트가 곧 자유로운 공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팟캐스트 생태계는 감시와 검열이 결합한 구조 안에서 움직인다. 중국 내 여러 사회 이슈를 다루는 한 팟캐스트는 홍콩 민주화 인사인 지미 라이 소식을 다루자 중국 최대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인 시마라야에서 삭제됐다. 민감하다고 판단되는 주제는 언제든 차단될 수 있다. 시마라야는 2021년 인공지능(AI) 기반 자동 검열 시스템을 운용한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 내 미디어를 모니터링하는 차이나 미디어 프로젝트의 책임자 데이비드 반두르스키는 “중국에서 시민적이거나 자유로운 공간이라는 개념은 항상 유동적”이라며 “언제나 열렸다 닫혔다 한다”고 파이낸셜타임스에 말했다.
베이징/이정연 특파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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