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서울에서 만나는 거장들

김태현 기자 2025. 12. 2.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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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이고 미술관이 100년간 지켜온 상설 컬렉션 25점이 서울에서 최초로 공개된다. 알폰스 무하의 체코 국보 11점과 지브리 원화 143점까지, 올 겨울 서울의 전시장에는 미술사, 애니메이션 거장들을 볼수 있다.

[우먼센스] 겨울이 깊어질수록 전시장은 뜨거워진다. 12월 서울의 미술관과 갤러리는 600년 서양 미술사부터 아르누보의 화려함, 그리고 애니메이션 거장의 세계까지 펼쳐놓는다. 100년간 단 한 번도 해외로 나가지 않았던 명화가 서울에 왔고, 체코 국보 11점이 더현대 서울에 도착했다. 지브리의 원화는 용산에서 40년 전 그 감동을 재현한다.

올해 마지막 달, 놓치면 후회할 전시 리스트. 르네상스부터 인상주의까지 한 호흡으로 읽는 미술사, 알폰스 무하의 곡선 안에서 발견하는 아르누보의 정수,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그린 콘티 앞에서 느끼는 설렘. 연말을 전시장에서 보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

100년간 단 한 번도 반출되지 않은 명화가 서울에 왔다.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히에로니무스 보스부터 모딜리아니까지, 600년 서양 미술사가 세종미술관에 도착했다. 샌디에이고 미술관 개관 100주년 기념 전시가 11월 5일 막을 올린다. 60인의 거장, 65점. 총 가액 2조 원이다.

수잔 발라동, 창문 앞의 젊은 여인, 캔버스에 유채, 1930년, 92.39 cm x 73.66 cm, 샌디에이고 미술관. 사진출처 = 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

가장 주목할 지점은 단 하나다. 샌디에이고 미술관이 1925년 문을 연 이후 100년간 한 번도 해외로 나가지 않았던 상설 컬렉션 25점. 이 작품들이 서울에서 최초로, 그리고 유일하게 공개된다. 록사나 벨라스케스 총괄 디렉터는 "한국 전시가 사실상 유일무이한 기회"라고 못 박았다.

전시는 르네상스 거장 베르나르디노 루이니의 섬세한 패널화부터 시작된다. 바로크 시대를 풍미한 엘 그레코, 루벤스, 반 다이크. 17세기 스페인 황금기의 수르바란과 무리요. 프란시스코 고야의 1795년작 초상화 앞에서는 붓질 하나하나가 시대의 격랑을 담고 있음을 느낀다.

19세기로 넘어가면 인상주의가 폭발한다. 모네의 빛, 드가의 움직임, 메리 카세트의 시선. 로트렉의 파리 밤거리가 캔버스 위에서 살아 숨 쉰다. 모딜리아니의 1916년작 초상화는 46.36cm 작은 화폭 안에 영혼을 가뒀다. 긴 목, 텅 빈 눈. 그가 죽기 4년 전 그린 이 여인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관람객을 응시한다.

일본 순회전과는 다르다. 도쿄와 교토에서 공개되지 않은 인상주의 이후 거장 작품이 대거 포함됐다. 미공개작 28점이 새롭게 추가돼 서울 전시만의 독창성을 확보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환상, 앵그르의 고전, 쿠르베의 사실주의, 보나르와 뒤피의 색채까지. 교과서에서만 보던 60인의 작품을 실물로 마주할수 있다.

기간 ~2026년 2월 22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
관람료 성인 2만 3000원, 초중고 2만 원

알폰스 무하 : 빛과 꿈 특별전

물결치는 머리카락, 유려한 곡선, 꽃과 식물이 뒤엉킨 화폭. 알폰스 무하(1860-1939)의 세계다. 1894년 파리 최고의 배우 사라 베르나르를 위해 그린 연극 포스터 '지스몽다' 한 장이 그를 스타로 만들었다. 그 포스터는 아르누보의 상징이 됐고, '무하 스타일'은 19세기 말 유럽을 사로잡았다.

알폰스 무하: 빛과 꿈 포스터 사진=액츠매니지먼트

2026년 3월 4일까지 더현대 서울 6층 알트원 갤러리에서 열리는 '알폰스 무하: 빛과 꿈'. 무하재단이 소장한 143점의 작품이 한국을 찾았다. 그중 체코 국보 11점이 포함됐다. 체코 현지에서도 한자리에 모으기 어려운 컬렉션이다.

전시장 입구부터 무하의 시그니처가 쏟아진다. 베르나르를 위한 연극 포스터 연작. 긴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월계관을 쓰고 있다. 배경의 모자이크 패턴, 금빛 테두리, 아치형 구도. 포스터지만 회화처럼 정교하다. 광고와 예술의 경계가 무너진 순간이었다.

유화 18점이 전시의 백미다. 석판화로만 무하를 알던 사람이라면 이 유화 앞에서 다시 그를 발견하게 된다. '슬라브 서사시' 연작은 무하 예술의 정수다. 20년에 걸쳐 완성한 기념비적 프로젝트. 고국 체코와 슬라브 민족의 역사를 20점의 대형 캔버스에 담았다. 

'사계절' 연작은 여전히 아름답다. 봄은 연두색, 여름은 장미빛, 가을은 황금색, 겨울은 은빛. 각 계절을 의인화한 여인들이 꽃과 나뭇가지에 둘러싸여 있다. 무하의 곡선 안에는 자연에 대한 경외와 여성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다.

이번 전시는 무하의 손자 존 무하가 직접 기획에 참여했다. 무하 트러스트 수석 큐레이터 도모코 사토와 함께 작품을 선별하고 구성했다. 단순한 회고전이 아니라 무하 예술 여정의 입체적 조망이다. 상업 포스터 작가로 시작해 민족 화가로 생을 마감한 한 예술가의 궤적을 따라간다.

기간 ~ 2026년 3월 4일
장소 더현대 서울 6층 알트원 갤러리(ALT1)
관람시간 월-목 10:30-20:00 / 금-일 10:30-20:30 
관람료 성인 22,000원 / 어린이 15,000원 (36개월 미만 무료)

미묘하게 열린 어둠 안에서 : 이타미 준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 국적을 평생 유지한 남자. 건축가였지만 화가를 꿈꿨고, 글을 썼지만 건물을 지었다. 유동룡(1937-2011). 그는 스스로를 '경계인'이라 불렀고, '이타미 준'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출발과 도착이 공존하는 국제공항 이타미. 그 이름 안에 자신의 정체성을 담았다.

사진=유동룡미술관 인스타그램 캡처

유동룡미술관에서 열리는 '미묘하게 열린 어둠 안에서: 이타미 준'. 전시 제목은 그가 1975년 자신의 아뜰리에 <먹의 집>을 설계하며 남긴 표현에서 왔다. "닫힌 어둠이 아니라 미묘하게 열린 검은 상자." 완전한 어둠도, 완전한 밝음도 아닌 그 사이. 이타미 준은 평생 그 경계에 머물렀다.

전시장은 이타미 준이 설계한 미술관 공간 자체다. 각 공간은 그의 언어와 철학으로 이루어졌다. 회화, 건축 드로잉, 글. 그가 남긴 작업들이 그가 만든 공간 안에서 숨 쉰다. <먹의 집> 드로잉 앞에 서면 검은 먹으로 그려진 건물이 보인다. 단순한 선, 여백, 그림자. 건축 도면이지만 수묵화처럼 보인다.

"내 마음은 언제나 밝음과 어둠 사이에 있고, 긍정과 부정 사이를 오가면서 늘 어렴풋한 빛을 추구한다." 이타미 준이 남긴 글이다. 그는 획일된 가치를 거부했다. 건축가로만, 화가로만, 한국인으로만, 일본인으로만 규정되길 원치 않았다. 경계 위에서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지켰다.

전시는 개인의 오리지널리티 회복을 이야기한다. 다원화된 사회는 모두를 경계에 세워두지만, 동시에 획일된 방향을 요구한다. 그 모순 속에서 각자의 가치를 잃어간다. 이타미 준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경계를 지켰다. 그 이야기가 지금, 우리에게 건네진다.

기간 ~2026년 3월 29일
장소 유동룡미술관
휴관일 매주 월요일 

아니메쥬와 지브리展

1978년 일본. '아니메쥬'라는 애니메이션 잡지가 창간됐다. 그 잡지 편집부에 미야자키 하야오와 타카하타 이사오가 드나들기 시작했다. 1984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연재됐고, 1985년 스튜디오 지브리가 설립됐다. 한 권의 잡지가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탄생시킨 순간이었다.

사진=Studio Ghibli

2026년 2월 22일까지 용산 아이파크몰 대원뮤지엄에서 열리는 '아니메쥬와 지브리展'. 일본 13개 도시와 대만을 순회하며 팬들을 열광시킨 전시가 한국을 찾았다. 

전시장 입구부터 설렌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예고편 영상존. 1984년 극장에서 처음 상영됐던 그 예고편이 40년이 지난 지금 서울에서 재생된다. 나우시카가 메베를 타고 부패한 숲 위를 날아간다. 붉은 눈의 왕충이 포효한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그린 콘티가 벽에 걸려 있다. 컷마다 메모가 빼곡하다. "여기서 바람 소리 크게", "나우시카 표정 더 단단하게".

원화 앞에 서면 숨이 멎는다. '천공의 성 라퓨타' 배경 원화. 하늘 위에 떠 있는 거대한 섬. 푸른 하늘과 흰 구름 사이로 고대 문명의 유적이 보인다. 손으로 한 점 한 점 그린 수채화. 디지털이 아닌 물감과 붓으로 완성한 세계다.

'이웃집 토토로' 역시 설정 자료를 볼수 있다. 토토로의 크기 비교표, 사츠키와 메이의 표정 변화, '고양이 버스'의 구조도. 캐릭터 스케치마다 미야자키 감독의 손글씨가 적혀 있다. "토토로는 부드럽지만 묵직하게", "메이의 웃음은 천진난만하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섹션은 압도적이다. 유바바의 방, 가오나시, 하쿠의 변신 장면. 각 신의 콘티와 배경 설정화가 나란히 전시됐다. 2001년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2003년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 그 영광의 시작점이 여기 있다.

한국 전시만의 특전도 풍성하다. 다국어 음성 가이드로 작품 하나하나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다. 한국 한정 콜라보 굿즈, SNS 인증 포토존도 곳곳에 마련됐다. 

잡지 한 권에서 시작된 기적. 펜과 종이로 그린 세계가 40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람들을 울리고 웃긴다. 

기간 ~ 2026년 2월 22일
장소 용산 아이파크몰 6층 
관람시간 10:00-20:00 (입장마감 19:00)

울트라백화점 서울: 소비의 끝에서 만나는 가치

백화점에서 무엇을 사는가. 옷, 가방, 화장품? 이제 그 답이 바뀐다. 브랜드의 철학, 크리에이터의 라이프스타일, 캐릭터의 세계관. 10월 30일 DDP 뮤지엄에 문을 연 '울트라백화점 서울: 소비의 끝에서 만나는 가치'는 무형의 가치를 쇼핑하는 미래형 백화점이다.

울트라백화점 시즌1 공식 포스터. 사진=어반플레이

전시장 입구부터 다르다. 계산대도, 진열대도 없다. 대신 '울트라 인사이트관'이 펼쳐진다. 캐릿, 롱블랙, 여행에미치다, 온큐레이션, 시티호퍼스. 온라인에서 정보를 큐레이션하는 플랫폼들이 오프라인으로 왔다. 관람객은 이 플랫폼들이 제안하는 텍스트를 직접 스크랩하고, 자신만의 인사이트 북을 만든다. 정보를 '구매'하는 경험이다.

'울트라 크리에이터관'으로 들어가면 엄정화의 '엄메이징 슈퍼마켓'이 보인다. 단순한 제품 진열이 아니다. 그가 왜 이 제품을 선택했는지, 어떤 순간에 이것을 사용하는지, 비하인드 스토리가 공간을 채운다. 

김재중의 전통주 브랜드 '원'과 '류', 이효리의 요가 브랜드 '아난다 요가'. 100명의 창작자가 자신의 취향과 세계관을 담은 오브제를 전시했다. 제품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쇼룸이다.

'울트라 매니아관'에서는 세대를 아우르는 캐릭터 IP를 만난다. 아따맘마, 긍정왕 김땅콩, 꿈돌이, 누누씨. 온라인에서 밈으로 소비되던 캐릭터들이 오프라인 굿즈로 구현됐다. '키링키링 아케이드'에서는 직접 키링을 제작하며 '최애 세계관'을 완성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팬덤 문화가 소비 문화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전시 중앙 '울트라 플라자'는 늘 움직인다. 빈티지 마켓, 팬 사인회, 공연, 러닝 프로그램. 매주 프로그램이 바뀐다. 한 번 방문으로 끝나지 않는다. N차 관람의 재미다. 카페 진정성이 운영하는 F&B 공간에서 숨을 고르고, 다시 전시장으로 돌아간다.

전시는 3개 시즌으로 나뉜다. 시즌 1 '하이퍼 알고리즘'(~1.11)은 알고리즘이 예측하지 못하는 취향과 소비를 조망한다. 시즌 2 '포스트 서브컬처'(1.16~3.15), 시즌 3 '로컬 헤리티지'(3.20-5.17)까지 예정돼 있다. 시즌마다 브랜드 라인업과 공간 구성이 완전히 바뀐다. 같은 전시장에서 다른 백화점을 만나는 경험이다.

서울을 시작으로 파리, 도쿄, LA로 확장을 계획 중이다. 브랜드와 소비자, 도시가 연결되는 새로운 리테일 패러다임. 울트라백화점은 쇼핑의 미래를 먼저 보여준다. 물건이 아니라 가치를 사는 시대. 그 시작이 지금, DDP에서 열렸다.

기간 ~2026년 5월 17일
시즌 1: 하이퍼 알고리즘 (~1.11)
시즌 2: 포스트 서브컬처 (1.16-3.15)
시즌 3: 로컬 헤리티지 (3.20-5.17)
장소 서울시 DDP 뮤지엄 전시 2관 관람시간 화-목 10:00-18:00 / 금-일 10:00-20:00 (월 휴무, 입장마감 관람종료 1시간 전)
관람료 성인 20,000원 / 청소년 및 어린이 16,000원 / 48개월 미만 무료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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