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서금석〉 첫눈 소설(小雪)과 함박눈 대설(大雪)
늦가을 소설(小雪) 즈음에 첫눈이 오고, 초겨울 대설(大雪) 전후해 함박눈이 내린다. 대설쯤 돼야 세상이 겨울 눈으로 덮인다. 겨우내 어찌 하루 이틀 날짜로 작은 눈 큰 눈이 내릴까? 소설과 대설을 나눠 정해 놓은 이유는 겨울 속 깊이 들어가기에 앞서 마치 의식 행위를 거치는 것과 같다. 미리 단계적 폭설주의보를 예고한 거다. 소설이라고 해서 눈이 적게 내린 것도 아니고, 대설이라고 많은 눈이 내린 것도 아니다.
두툼한 옷을 입어야 한다. '할아버지 솜바지로 바뀔 때다'라는 속담은 소설 때를 염두에 둔 말이다. 11월의 첫눈, 차디찬 겨울인가 싶더니 이맘때 오히려 막바지 단풍 구경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기후변화 탓일까? 소설은 입동(立冬) 다음 절기이다. 올해는 양력 11월 22일이 소설이다. 대설은 12월 7일이다. 11월 하순이면 가을이다. 또 눈 내리는 시절이니 절기상 겨울이다. 그래서 소설은 가을 반 겨울 반인 셈이다. '고려사' 달력 편에 소설 초후(5일간)와 중후(5일간) 지나, '말후(5일간)에 천지 기운이 막혀서 겨울이 시작된다'고 했다. 옛 달력도 지금의 양력 12월이 들어서야 겨울로 봤다.
여름 절기 입하 찍고, 소만을 지나 망종에 이르러 여름 날씨 오듯, 겨울 절기 입동 후 소설 넘고 대설에 다다라 앙상한 나뭇가지로 겨울을 알린다. 눈을 기다리는 사람들, 눈이 오면 치우느라 애쓰는 사람들, 모두 겨울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애초 24절기를 나눈 것은 단순했다. 1년의 날수에 숫자 24로 나누어 마디마디를 정해 이름을 지어줬다. 그래서 시간의 마디[時節]가 생겼다. 마디마디가 시간이다. 시절이 시간이고, 절(節)이 시간이다. 사리 분별할 줄 안다는 표현의 '철들었다'라는 말은 애초 '절(節)'에서 유래한다. 시간은 사람을 어른스럽게 한다.
봄을 알리는 신호 입춘(立春)부터 20번째 줄에 소설이 있다. 해서 하루 24시간으로 보면, 소설은 저녁 8시고, 대설은 9시다. 가까운 사람들 만나 즐거운 저녁 식사를 마치고 훈훈한 얘기 나눈 뒤, 집으로 돌아갈 시간에 첫눈이 내린다. 누군가는 퇴근 후 가족과 함께 웃고 즐기는 편안한 시간을 보내다가 창문 밖 첫눈을 보고 혹은 벌써 새하얗게 쌓인 눈밭을 보고 소리를 지를 수도 있다. 이 시간이면 젊은이들은 아직 더 할 얘기들이 많을 거다. 잠들지 않은 아이들은 밖으로 나가 발자국을 남기려고 왁자지껄할 것이다. 어두움과 차가움 속에 따뜻한 훈기를 기억하고 하루를 정리할 시간이다. 1년 중 소설과 대설이 그런 때다. 대설은 한 해 농사를 갈무리하는 마지막 지점이다. 대설 다음이 동지다.
달력의 한 해 시작은 동지부터다. 동지죽 한 그릇에 나이 한 살 더 먹었다. 고려와 조선에서 중국에 동지 사절단을 보냈다. 걸어서 중국 수도까지 가야 했으니 동지 한 달 전에 떠났다. 큰 나라와 작은 나라 간의 당시 국제관계 모습이었다. 중국에 간 사신들이 소중히 받아온 것이 달력이다. 이 동지력을 다시 베껴 관료들에게 나눠주고, 다시 지방으로 퍼진다. 일반 백성들이 달력을 얻기란 언감생심이다.
겨울밤 달콤한 간식이었던 대봉은 홍시가 되었다. 할머니는 처마 밑 대나무에 걸어 둔 곶감을 거둬서 대나무 소쿠리에 담아두고, 곧 다가올 동지 제사에 쓰셨다. 19세기 중엽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에 음력 10월 풍속으로, "서울 풍속에 화로에 숯불을 피워놓고 석쇠[燔鐵]를 올려놓은 다음 쇠고기를 기름·간장·달걀·파·마늘·후춧가루 등으로 양념하여 구우면서 화롯가에 둘러앉아 먹는데, 이것을 난로회(煖爐會)라고 한다. 숯불구이는 추위를 막는 시절 음식으로 이달부터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지금 숯불구이야 때를 가리지 않지만, 애초 겨울 음식으로 그 역사가 오래됐다. 한국음식으로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