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만원이면 됩니다" 무명감독의 당찬 답변...결국 칸 레드카펫 밟았다

당신이 잘 몰랐던 연상호 감독<1>
2016년 4월14일 늦은 오후. 조영각 프로듀서와 곽용수 인디스토리 대표는 서울 한 고깃집에서 연상호 감독을 만났다. 연 감독이 한턱내겠다고 두 사람을 불러 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술을 따르며 수다를 떨고 고기를 굽다 오후 6시가 넘어갔다.
연 감독이 갑자기 “아, 이제 시간이 됐네”라고 말하며 뿌듯한 표정을 지은 후 휴대폰을 들고 뭔가를 검색했다. 그는 휴대폰 액정을 두 사람쪽으로 내밀어 기사를 보여줬다. 연 감독의 영화 ‘부산행’이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인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에 초청됐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연 감독은 칸영화제 초청을 이미 통보 받았으나 주변에 함구하다 보도제한시간이 넘어가자 이를 밝힌 것이다.
연 감독은 평소 자신과 친하게 지내던 독립영화계 선배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어 두 사람을 저녁자리에 부른 거였다. 조 프로듀서는 연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2011)의 프로듀서로 일했다. 곽 대표는 ‘돼지의 왕’ 제작을 맡았고, 인디스토리는 해외 판매를 담당했다.
‘부산행’은 연 감독의 첫 실사영화였다. 그는 20세 때 단편으로 실사를 찍은 적은 있으나 영화라고 하기 에는 자신도 말하기 꺼려할 내용과 형식이었다. ‘돼지의 왕’ 이후 ‘사이비’(2013)와 ‘서울역’(2016, ‘부산행’보다 먼저 만들었으나 개봉은 더 늦게 했다) 등 장편 애니메이션만 잇달아 연출했다.
게다가 ‘부산행’은 제작비가 115억 원 가량 들어간 블록버스터였다. 115억 원은 이전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비(3억 원 이하)의 40배 가량 되는 거액이었다. 투자배급사 NEW가 제작을 결정하자 연 감독은 고민에 빠졌다. 인생 갈림길에서 비상할 수도 있고, 추락할 수도 있었다. 연 감독은 조 프로듀서를 만나 상의했다. 조 프로듀서는 말렸다. “이제 애니메이션쪽에서 자리를 겨우 잡았는데 자칫 잘못하면 이도저도 아닌 감독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연 감독은 안주 대신 모험을 택했다.

‘부산행’의 칸영화제 초청은 흥행을 향한 1차 관문이었다. 칸영화제라는 후광을 등에 업으면 개봉 때 관객몰이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연 감독이 선배들과 고깃집에서 자축한 이유 중 하나였으리라. 칸영화제 효과는 기대보다 더 컸다. ‘부산행’은 2016년 5월13일 심야에 칸 뤼미에르대극장에서 세계 첫 상영됐다. 관객 반응은 뜨거웠다. 국내외 언론의 호평이 쏟아졌다. 열기는 개봉(7월 20일)으로 이어졌다. 흥행 열풍은 한여름 폭염 못지 않았다. ‘부산행’은 극장에서만 1,157만 명이 봤다. 연 감독의 인생 승부수가 보기좋게 성공한 거다.
‘부산행’ 뿐 아니다. 연 감독은 도전의식을 오래전부터 드러냈다. 그는 ‘돼지의 왕’을 준비할 때 당시 독립영화인들은 입밖에 내기 힘들었던 포부를 밝혀 주변을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혈기 넘쳤던 25세 애니메이션 키드

“에너지가 넘쳐났죠. 가까이하기 무서울 정도로요.”
연 감독에 대한 조영각 프로듀서의 첫인상이다. 두 사람은 2003년 12월 처음 만났다. 서울독립영화제에서였다. 연 감독은 단편 애니메이션 ‘지옥’으로 본선경쟁 후보에 올랐다. 조 프로듀서는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이었다. 연 감독이 조 프로듀서에게 먼저 다가왔다. “제 영화가 상 받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으며 말을 걸었다. 난처한 질문이었다. 연 감독은 절박해 보였다. ‘지옥’의 수상을 당연하게 여겼다. 조 프로듀서 역시 “상을 받을 만한 영화”로 생각했다. 결과는 달랐다. 원신연 감독(2005년 ‘가발’로 장편영화 연출 데뷔. ‘세븐 데이즈’와 ‘봉오동 전투’ 등 연출)의 중편 ‘빵과 우유’가 최우수작품상을 차지했다. 연 감독은 실망이 컸다.
연 감독은 수상에 실패한 후 서울독립영화제 사무실을 수시로 찾았다. 조 프로듀서를 만나 ‘지옥’을 더 상영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연 감독은 막 활성화되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상영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다. 단편 영화는 영화제 아니면 관객과 만나기 더 어려운 시절이었다. 연 감독은 1년 정도 공들여 만든 ‘지옥’이 몇 군데 영화제에 상영된 후 묻혀버리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연 감독은 차기작 준비를 하면서도 일주일이 멀다하고 조 프로듀서에게 전화를 했다.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있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조 프로듀서에게 연 감독은 조금은 성가신 존재였다. “한 번 보자”고 말로만 하다가 결국 둘은 마주했다. 조 프로듀서는 “감독님 작품 좋고 열심히 하시는데 왜 그리 조바심을 내냐”고 나무라듯 말했다. 연 감독의 반응이 조 프로듀서를 당황하게 했다. “열심히 하는데 아무도 안 봐줘요.”

연 감독은 ‘지옥 파트2’(2004)에 이어 ‘사랑은 단백질’(2008년 다른 단편들과 ‘셀마의 단백질 커피’로 묶여 개봉)을 잇달아 만들던 시기였다. 애니메이션계에서 연 감독의 평판은 올라가고 있었으나 애니메이션 분야 밖으로 나가면 그는 여전히 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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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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