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아파트 화재 ‘불쏘시개’인데… 대나무 비계에 4000명이 생계 의존

최소 128명의 목숨을 앗아간 홍콩 왕푹 코트 아파트 화재는 건물 외벽에 설치된 대나무 비계(작업용 발판)인 ‘죽팡(竹棚·광둥어 발음)’을 타고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며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죽팡은 홍콩과 마카오에서 모두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정도로 도시의 상징으로 현지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사랑받았다. 그러나 최악의 인명 피해를 낸 화재 참사의 불쏘시개로 지목되면서 앞으로 건축 공사장에서 빠르게 자취를 감출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나무 비계는 중국 전통 건축사에서 1000년 넘게 이어져온 기술이다. 중국 본토는 금속 비계가 대나무를 대체했지만, 홍콩에서는 여전히 죽팡이 공사 현장의 표준처럼 쓰인다. 20세기 초 영국령이던 홍콩이 항만 도시로 급성장할 때 자연스럽게 건설 현장에 뿌리내렸다. 숙련된 장인이 안전벨트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대나무를 엮어 올리는 ‘답팡(搭棚)’ 기술은 홍콩 건축의 트레이드마크로 인식됐다.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죽팡 관련 홍콩의 건축 인력은 적어도 2500명, 많게는 4000명에 달한다. 이들을 전담 고용하는 업체도 수백 곳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죽팡은 금속 비계보다 비용이 적게 들고, 좁고 빽빽한 도심 환경에서 설치·해체가 훨씬 간편하다. 고온다습하고 해풍이 잦은 홍콩 특성상 금속 비계는 쉽게 녹슬지만, 대나무는 습기에 강하다. 강철이 강풍에 한번 꺾이면 복구가 어렵지만, 유연한 대나무는 바람의 충격을 흡수하는 이점도 있다. 죽팡으로 감싸인 마천루는 가장 홍콩다운 풍경으로 자리 잡았으며 영화에도 등장했다. 2001년 영화 ‘러시아워 2’에서 성룡이 악당을 피해 대나무 비계 사이를 다람쥐처럼 오가던 장면이 대표적이다. 앤젤리나 졸리의 ‘툼 레이더 2′(2003), 드웨인 존슨의 ‘스카이스크래퍼’(2018)에서도 죽팡이 감싼 마천루를 아름답게 담았다.
하지만 그 전통은 때때로 비극을 불러왔다. 1996년 41명이 숨진 갈레이 빌딩 참사에서는 용접 불꽃이 대나무 비계와 그물망에 옮겨붙으며 ‘굴뚝 효과’를 일으켜 불길과 유독가스가 초고속으로 상층부까지 치솟았다. 2019∼2024년 대나무 비계를 이용한 건설 작업 중 사망 사고가 22건이나 발생하자, 홍콩 정부는 올해 3월 공공 건설 공사의 50%에 금속 비계 사용을 의무화했다. 그러나 민간 현장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게다가 홍콩의 건물 상당수는 차량 진입조차 어려운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에 접한 탓에, 부피 크고 무거운 금속 비계를 들여놓을 공간조차 확보하기 어려운 현실도 문제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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