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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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의 뮤직 SCENE ‘최후의 고지’ 남은 K팝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이런 날이…? 한반도에 사는 음악 팬이라면, 최근 15년 사이 저 말을 몇 번은 되뇌었으리라. ‘푸른 눈의’ 유럽인들이 ‘소녀시대 공연을 보여달라’며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플래시몹 시위를 벌이고(2011년 ‘SM타운 프랑스 파리 콘서트’), 싸이의 말춤과 ‘갱넘!(강남)’을 지구촌이 따라 하며(2012년 ‘강남스타일’ 빌보드 싱글차트 2위), 한국 그룹 노래가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르는(2020년 방탄소년단 ‘Dynamite’), 감히 꿈꿔본 적 없는 일들이 현실로 잇따라 펼쳐졌다. 이제, 그래미다.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APT.’가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를 포함한 3개 부문 후보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Golden’이 ‘올해의 노래’ 등 5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한·미 합작 걸그룹 캣츠아이는 심지어 ‘최우수 신인상’ 후보, 토니상 수상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최우수 뮤지컬 시어터 앨범’ 후보다. 운명의 시간은 두 달 뒤다. 내년 2월 1일(현지시간) 미국 LA에서 열릴 시상식에서 ‘#korea’ 해시태그를 단 누군가 트로피를 들어 올릴, 어쩌면 해피엔딩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선거 캠페인 살벌, 서로 찍어주자 거래도”
그래미의 성격을 이해하려면 태생부터 알아야 한다. 지금과 비슷한 음반 중심의 대중음악 시장은 20세기 들어 개화했다. 1920년대 미국에서 라디오가 대중화되고 1940년대 레코드가 상용화되며 음반 시장이 대두됐다. 미국 문화계 큰 손으로 떠오른 음반사 임원들은 1950년대 캘리포니아주 할리우드 대로에 모였다. ‘스타의 거리’에 별과 이름을 새길 음악계 스타를 선정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은막과 브라운관의 별들과 ‘스타’를 나누다 보니 음악인 몫이 현저히 적어질 판이었다. ‘영화계엔 오스카, TV 쪽엔 에미가 있잖아? 그럼 우리도 우리만의 상을 만들어 우리끼리 수여하자!’ 서로를 북돋우고 치하 하자는 아이디어가 그래미 어워즈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래미를 받을 수 있고, 왜 한국 가수는 그래미와 인연이 멀었을까. 최근 필자는 복수의 그래미 투표 위원을 만나 내부자만 아는 투표 뒷이야기를 취재했다. 그들은 “ 주요 부문으로 갈수록 자본과 인맥의 힘이 상당 부분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캠페인’이 살벌하게 이뤄져요. ‘내가 너희 음반 찍어줄게, 너도 우리 음반 찍어줘’ 하는 거래 제안도 오가죠. 한국에 있는 저한테까지 미국의 음반 관계자가 달콤한 제안의 인스타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낼 정도이니, 미국 현지에선 오죽 많은 일이 벌어지겠습니까.”(그래미 투표 위원 A씨)
여기서 말하는 캠페인(campaign)은 일종의 홍보를 말한다. 그래미나 오스카, 토니상 같은 대중문화 시상식 매커니즘의 중심에 캠페인이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2020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을 때도 막후에서 CJ그룹의 막대한 자본력과 홍보가 힘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캠페인에도 일종의 ‘가격표’가 있다. 캠페인 관련 대행사들도 난입해, 투표 위원들에게 이메일 발송, 네트워킹 파티 주관, 선셋 스트립이나 LA 지하철 내 광고판 광고 게재, 빌보드지에 전면 광고 게재 등을 횟수로 묶어 패키지 상품처럼 판매하기도 한다. 한 투표 위원은 “5만 달러(약 7300만원) 패키지 구매 제안을 받은 적 있다”면서 “그런데 이는 기본이자 싼 축에 속하며 대형 음반사들의 자체적 캠페인까지 합치면 특히 주요 부문의 경우 천문학적 로비 예산이 쓰이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몇 년 전만 해도 그래미 투표 위원이 누구인지 암암리에 조사해 명단과 연락처를 (음반사들에) 돈 받고 파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SNS 시대에 이 정보는 사실상 공개됐다. 그래미 투표 위원을 식별할 수 있는 SNS 해시태그도 존재한다. 일부 음반사들은 이 해시태그를 추적해 투표 위원 명단을 만들고, 이들을 연중 지속적으로 ‘관리’한다. 새 앨범 감상회나 콘서트에 초대하며 ‘내 사람’으로 포섭하려 노력한다. 특히 투표 기간이 다가오면 각 음반사들의 ‘FYC(for your consideration·후보로 고려해주십사)’ 메일이 투표 위원들의 편지함에 쇄도한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그래미 투표 위원들에게 콘서트 VIP석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의 공식 음악 팟캐스트 ‘팝캐스트’에서 2026 그래미 후보 특집을 진행한 현지 음악평론가 존 캐러매니커는 “그래미를 여러 번 받았던 로드(Lorde·뉴질랜드 팝스타)가 올해 훌륭한 앨범을 냈음에도 후보에 전혀 지명되지 못한 것은 그가 근년에 인디 아티스트로서 정체성을 강화함에 따라 이번에 캠페인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해설했다.
그럼 투표 위원은 누가 될까. 리코딩 아카데미에서 정한다. ‘미국의’ 아카데미가 여는 ‘미국의’ 시상식이니까 당연히 ‘미국의’ 음반 관계자들이 중심이다. 당초 1만 명 선이었는데 최근 대폭 늘려 올해는 1만5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올해 아카데미가 전략적으로 풀을 넓힌 이유는 ‘그래미가 너무 하얗다/늙었다(grammy so white/old)’는 비판 여론, 한때 30~40%대를 오가던 중계방송의 TV 시청 점유율이 20%대(시청률은 2%대)까지 내려간 현실, SNS 시대 트렌드 반영 필요성 등이다. 투표 위원을 확대하며 인종·국가·젠더 다양성에 신경 썼다. 리코딩 아카데미는 올해만 각국 음악 관계자 3800명을 신규 회원으로 받았는데 추가 인원 중 40세 미만이 절반을 차지했고 58%는 유색인종, 35%는 여성에 할당했다.
![그래미 후보에 수차례 올랐던 BTS. [중앙포토]](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29/joongangsunday/20251129020449448kpcu.jpg)
![하이브의 다국적 걸그룹 캣츠아이. [중앙포토]](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29/joongangsunday/20251129000446687itsr.jpg)
![내년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 로제. [중앙포토]](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29/joongangsunday/20251129000442777tfkn.jpg)
![로제와 ‘APT.’를 함께 부른 브루노 마스(왼쪽). [중앙포토]](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29/joongangsunday/20251129000444105pvyl.jpg)
![수상 가능성이 가장 유력한 케데헌. [중앙포토]](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29/joongangsunday/20251129000449317zjpl.jpg)
다음달 12일, 그래미 투표 위원들의 최종 투표가 시작된다. 주사위는 곧 던져진다. 후보 지명 단계에서 예열된 막후 캠페인전(戰)의 열기 역시 끓는점을 향해갈 것이다. 운명의 시간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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