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와인 산업 위기이자 기회···생산 줄었지만 품질 최상”

프랑스 보르도는 수백 년 동안 세계 와인사의 중심을 지켜온 곳이다. 독보적인 기후와 토양,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축적된 양조 기술 덕에 ‘명품 와인’ 생산지로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영원한 왕좌는 없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노 알코올’ 문화 확산, 기후변화 리스크 심화, 글로벌 관세 갈등 등은 와인 산업 전반에 균열을 내고 있다.
그럼에도 보르도 지역 와인 생산 132개 주요 샤토가 모인 보르도 그랑 크뤼 연합(UGCB)은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보르도 와인이 지닌 가치와 잠재력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UGCB 아시아 투어를 맞아 한국을 찾은 프랑수아-자비에 마로또 UGCB 회장을 만나 보르도 와인의 이유 있는 자신감에 대해 들어보았다.
지난 2월 신임회장에 취임한 그는 1988년 가족이 인수한 샤또 브라네르-뒤크뤼를 운영하고 있다. 마로또 회장의 아버지 패트릭 마로또 또한 2000년부터 8년간 UGCB 회장직을 맡아 협회를 이끌었다. 요즘말로 표현하자면 ‘와인수저’인 마로또 회장은 1983년생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자)로, 와인을 어렵게 느끼는 요즘 세대의 트렌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신임회장에 오르면서 가장 먼저 보르도 와인의 ‘혁신’을 과제로 떠올렸다.
마로또 회장은 “세계적인 보르도 와인의 입지를 유지하면서, 이를 젊은 세대에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에 대한 혁신”이라면서 “그랑 크뤼 와인이 고급 와인이라는 인식 때문에 격식 있는 자리나 파인다이닝에서만 마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젊은 세대가 좀 더 편하게 보르도 그랑 크뤼 와인을 알아갈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홍보와 마케팅 전략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예를 들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와인바에서 직접 UGCB 와인을 소개하는 등 좀 더 ‘재미있는’ 방식의 홍보 전략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고품질 와인을 만드는 복잡한 과정은 유지하되, 이를 소비자들에게 소개할 때는 더 쉽고 편하게 느끼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와인 상품 다변화도 앞으로의 과제다. 마로또 회장은 “보르도 와인이라고 하면 보통 15년, 20년 이렇게 오래 기다렸다 마시는 와인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요즘엔 젊은 세대가 즐길 수 있도록 스타일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2022년산 빈티지 와인은 비교적 짧은 숙성 기간에도 품질이 우수하면서도 부담이 적은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전통과 품질은 유지하되, 접근성을 높인 와인으로 UGCB 와인 소비층을 넓히겠다는 전략이다.
기후변화도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와인에 쓰이는 포도는 기후에 매우 민감하다. 포도가 숙성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따뜻하되 너무 뜨거워선 안 된다. 프랑스 농업식량환경연구소(INRAE) 연구진은 2023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 리뷰 지구·환경’에 게재한 논문에서 보르도를 비롯한 세계 와인 산지 열 곳 중 아홉 곳이 금세기 내로 소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UGCB 와인 생산량을 5년 단위로 비교했을 때 2021~2025년 평균 생산량은 2016~2020년에 비해 16% 줄었다. 하지만 생산량이 줄었을 뿐 품질은 오히려 좋아졌다. 마로또 회장은 “기후변화로 포도의 탄닌이 더 성숙해졌고, 신선도도 좋아졌다”면서 “그래서 2022년산 빈티지의 품질이 우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엔 훌륭한 빈티지 와인이 30~40년에 2~3개에 불과했지만, 최근 10년 동안 5개가 나올 정도로 와인의 품질은 놀라울 정도로 좋아졌다”면서 기후변화가 가져온 변화를 설명했다.
미국의 관세전쟁 역시 프랑스 와인 산업에 적지 않은 부담이다. 그럼에도 UGCB 와인을 찾는 프리미엄 소비층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마로또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고 관세 정책에도 미국은 UGCB 해외 판매의 가장 큰 시장”이라면서 “이어 홍콩, 중국이 뒤를 잇고 있어 미국과 아시아는 UGCB 해외 시장의 중요한 2개 축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22.5유로(약 3만8000원) 이상 UGCB 와인 소비 12위 나라로, 프리미엄 와인을 많이 찾는 지역”이라고 특징을 설명했다. 와인과 어울리는 한식을 추천해달라는 질문에 그는 “한국 음식을 잘 알지 못해 어떤 음식이 와인과 어울린다고 특정할 수는 없지만, 음식 종류에 너무 제약을 두지 말고 다양한 와인을 시도해보면 좋겠다”고 답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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