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윤석열 자폭이 불러들인 이재명의 사법부 죽이기
李 정치의 본질이 된 사법 리스크와의 투쟁, 한국 정치에 남길 상처가 두렵다
(시사저널=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12·3 비상계엄 1년'을 맞았다. 지난 1년간 무엇이 달라졌는가? 대통령이었던 윤석열은 대통령직에서 파면돼 부인 김건희와 더불어 감옥에 갔고, 곧 감옥에 들어갈 것처럼 보였던 이재명은 대통령이 되었다.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이 되었고, 여당이었던 국민의힘은 야당이 되었다. 이렇듯 큰 변화가 있었지만, 정치판이 작동하는 기본 구조와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달라진 게 없다.
혈투를 벌이는 양 진영은 상대를 향해 악(惡)이라고 외치지만, 이론적인 선과 정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둘 다 악이다. 최악(最惡)이냐 차악(次惡)이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런 차이를 다투는 건 한국 정치의 오랜 풍경이지만, 그 구도가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부각된 적은 없었다. 12개 혐의로 5개 재판을 받아야 했던 대선후보를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어쩌면 전무후무(前無後無)할 경험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12개 혐의 5개 재판'의 장본인인 이재명과 그의 지지자들은 그게 다 윤석열 검찰이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시간은 윤석열의 편이었다. 윤석열이 계엄이라는 자폭을 저지르지만 않았다면, 이재명이 감옥에 갈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이다.

12·3 없었다면 李가 감옥 갔을 것
윤석열 검찰이 아무리 사악하고 유능하다 해도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낼 수는 없는 일이다. 검찰에 정치적 편파성이 있었다 해도 그건 역대 모든 검찰, 즉 민주당 정권의 검찰도 갖고 있었던 수준의 것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을 말해 주는 것일 뿐이다. 다만 인정해줄 만한 것은 원래부터 운동권 체질로 다져진 민주당의 선전·선동 능력이 워낙 탁월해 '검찰 수사 조작론'이 이재명 진영엔 거의 복음처럼 받아들여졌다는 점이다.
윤석열이 자폭한 후 모든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였다면, 국민의힘까지 정치적 시궁창으로 끌고 들어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최근 민주당 의원들이 윤석열을 향해 즐겨 쓰는 단어인 '비루함'의 끝장을 보여주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였다. '비루하다'는 건 '행동이나 성질이 너절하고 더럽다'는 뜻이다. 윤석열은 국민의힘의 '친윤파' 조종을 통해 '국민의힘의 공범화'를 밀어붙였으니 이보다 더 비루한 일이 또 있을까.
친윤파가 장악한 국민의힘이 윤석열과의 관계를 선명하게 단절하지 못해 얻은 건 제21대 대선의 패배였다. 친윤파는 자당의 반윤 후보보다는 차라리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한 건지는 몰라도 대선 직전까지도 대선을 망치기 위해 작정한 것처럼 보이는 이상한 짓들만 골라서 하는 묘기를 연출했다.
득표율을 보라. 이재명 49.42%, 김문수 41.15%, 이준석 8.34%였다. 김문수와 이준석의 득표율을 합치면 49.49%로 이재명의 득표율보다 0.07% 포인트 높았다. 윤석열과 완전히 절연한 후보를 내세우면서 후보 단일화를 했다면 얼마든지 해볼 만한 선거였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이재명이 선거 결과에 대해 느꼈을 불안감이 중요하다. 자신의 집권 기간 내내 '내란 청산 TF'를 가동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건 아니었을까?
이재명은 6월4일 제21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공존과 통합의 가치 위에 소통과 대화를 복원하고, 양보하고 타협하는 정치를 되살리겠다"고 했다. 이게 의도한 거짓말은 아니었을망정 '통합·소통·대화·양보·타협'은 마음에도 없는 말이었다는 게 드러나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검찰 죽이기' 이어 '사법부 장악' 총력전
6월5일 내란 특검법,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 3대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면서 본격적인 특검 정국이 시작되었고, 8월2일 강성 당원들의 뜨거운 지지를 얻은 정청래는 최종 득표율 61.74%로 이재명의 물밑 지원을 받은 경쟁자인 박찬대(38.26%)를 23.48%포인트 차로 누르고 민주당 대표에 당선됐다. 정청래는 당대표 수락 연설과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지금은 내란과의 전쟁 중이라 여야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국민의힘에 대해 사실상 선전포고를 하고 나섰다. 정국을 노골적인 전시체제로 끌고 가겠다는 것이었다. 나중엔 정청래의 야망과 '무데뽀' 스타일로 인해 이른바 '명청(이재명-정청래) 갈등'이 벌어지지만, 두 사람은 그런 전시체제가 필요하다고 본 점에선 일심동체였다.
사실 정청래의 당대표 당선은 놀라운 '인간 승리'였다. 그는 4년4개월 전인 2021년 4월 관례에 따르면 법사위원장 1순위였음에도 잦은 막말 전력 탓에 탈락하지 않았던가. 그랬던 정청래가 당대표 자리에까지 오른 건 사실 '이재명 효과' 덕분이다. 기초단체장이었던 이재명을 단숨에 대선후보 반열에 오르게 해준 건 2016년 촛불집회 정국에서 구사한, 증오를 선동하는 과격 발언이 아니었던가. 과격한 막말과 욕설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른 이재명이 정청래에 대한 반감 수위를 크게 낮춰주었다고 볼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정청래는 이재명과 겨뤄도 손색없을 정도로 팬덤정치를 앞장서 주장하고 실천해온 정치인이었다. 팬덤에 아부하는 것도 불사하는 노골적인 팬덤정치는 지도자급 정치인의 품격엔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 장벽을 무너뜨려준 것도 바로 이재명이었다. 즉, 이재명은 강성 팬덤이 정당을 좌지우지하는 풍토를 정착시킨 '선구자'였다.
정청래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그가 주도한 전시체제는 국민의힘을 '윤 어게인'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했다. 친윤파는 대선을 망치고 나서도 국민의힘의 기득권은 놓지 않겠다는 탐욕을 부렸고, 그래서 8월26일 '윤 어게인'을 외친 장동혁을 대표로 뽑았다. '윤 어게인'이 살길도 전시체제였던바, 과거에도 있었던 '적대적 공생'이 정청래-장동혁 콤비를 통해 최악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이재명 정권은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 자체를 아예 지워버리려는 총력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 일을 위해 사실상의 '검찰 죽이기'를 완수한 후 다음엔 '사법부 장악'으로 나아갔다. 9월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이재명이 제시한 황당한 '권력서열론'은 그런 '사법부 장악'의 이론적 토대였다. 당대표임에도 행동대장처럼 나선 정청래는 10월22일 당 최고위원회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은 사법부를 이끌 수장 자격이 없다. 거취를 결단하라"고 거칠게 압박했고,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투어 조희대에게 폭격을 가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들이 그런 폭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 명분은 5월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재명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내린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이 최소한의 양심을 갖고 있는 정당이라면, 4월22일 대법원이 이재명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본격적인 심리에 착수했을 때 발언했어야 했다. 그 결과가 무죄로 나오건 유죄로 나오건 그건 대선을 한 달여 앞둔 시점에서 대선의 향방을 결정할 수 있으니 미루는 게 좋겠다고 요청했어야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무죄를 확신하면서 느긋한 모습을 보였다. 5월1일 선고가 예고된 4월29일에도 "이례적으로 빠르다는 평가가 있다"는 질문에 대해 "법대로 하겠지요"(이재명), "빨리 결정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겠죠"(김민석) 등과 같이 민주당은 여유만만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니까 문제는 판결의 내용이었지 시점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민주당의 총공세에 사법부가 굴복해 재판 기일을 대선 후로 연기하자, 이제 마음이 놓인 이재명은 선거 전날 김어준의 유튜브에 출연해 "(대법원의 원래 입장이) 빨리 기각해 주자는 것이었는데 어느 날 바뀌었다"며 공개해선 안 될 비밀을 털어놓았다. 이거야말로 특검을 받아야 할 사법농단 아닌가?

내란 청산 TF? 마녀사냥식 공포 정치
이재명 정권의 사법부 장악은 현재진행형이다. 대법관 증원, 4심제, 내란재판부, 법왜곡죄, 법관평가제, 사법행정위원회 등 논란의 소지가 매우 큰 이슈가 하나둘이 아니다. 하지만 11월7일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사건이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듯이, 이재명 정권은 자신만만하다. 윤석열이 계속 비루한 추태를 보여주고, 국민의힘이 스스로 '윤 어게인'의 족쇄를 고수하겠다고 버티면서 특급 도우미 역할을 해주고 있으니, 그야말로 탄탄대로가 열린 게 아니고 무엇이랴.
이재명은 '국민주권정부'를 자임하는 오만에 이어 '내란 청산 TF'를 동원해 공무원 75만 명을 조사하는 '마녀사냥 공포극'마저 연출하고 있다. 그는 무엇이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담당했던 변호사 12명을 국회·정부 요직에 중용하고, "측근 인사 없다"고 큰소리치더니 자신의 사법연수원 동기를 7명이나 요직에 기용하는 담대함을 보여주었다. 개혁신당은 "나라 전체가 '이재명 로펌'의 분점처럼 보인다. 국민 세금이 사실상 대통령의 변호사비로 쓰이고 있다"고 개탄했지만, 일반 국민은 이 모든 걸 모른 척하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현재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사회심리학적 현상은 '의도적 눈감기(willful blindness)'다. 우리 인간은 '마주하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럽고 두려운 진실'을 회피하는 성향이 있다는 개념이다. 지난 수년간 이재명을 지지해온 사람들에게 이재명의 유죄 가능성을 직시하는 건 '두려운 진실'이었다. 그들이 대신 믿기로 한 것이 검찰의 완벽한 수사 조작이다.
이재명의 전 정치생애는 사법 리스크와의 투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투쟁은 이젠 '이재명 정치'의 본질이 되고 말았다. 팬덤정치, 정당 사유화, 정치의 전쟁화 등을 통해 완성된 '이재명 정치'는 지지자들을 열광케 한 건 물론이고 내로라하는 일부 보수 논객들마저 감탄하고 예찬하게 만든 힘을 발휘해 왔다. 그럼에도 이재명의 탁월한 싸움 실력과 놀라운 승운(勝運)에 무작정 박수를 보내기엔 그의 정치가 한국 정치와 국민 의식에 남길 상처가 두렵게 여겨지는 건 어쩔 수 없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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