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다빈치도… 일자리 찾을땐 ‘자기 어필 이력서’ 썼다[북리뷰]

신재우 기자 2025. 11. 28.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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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통의 편지로 읽는 세계사
콜린 솔터 지음| 이상미 옮김|현대지성
폼페이의 최후 전한 플리니우스
국교 바꾼 헨리8세 연애편지 등
100통의 편지로 읽는 인류역사
손글씨에 담긴 다짐·열정·절망
승자의 기록 아닌 개인 얘기로
결정적인 순간 생생하게 전달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그가 그린 거대한 석궁 그림. 그는 밀라노 공작에게 편지를 통해 자신이 ‘전쟁 무기의 장인’이라고 적극적으로 표현했다.현대지성 제공
헨리 8세와 그가 앤 불린에게 보낸 연애편지. 헨리 8세가 보낸 편지 묶음은 바티칸 사도 도서관에서 발견됐다.현대지성 제공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그가 베네치아의 도제 레오나르도 도나토에게 보낸 편지. ‘목성의 위성 그림’이 편지에 포함돼 있다. 현대지성 제공

별 것 아닌 편지 한 통이 때로는 세상을 뒤흔든다. 전쟁을 멈추기도 하고, 위대한 발견을 알리며, 한 시대의 증언이 되기도 한다. 손글씨로 한 자 한 자 눌러 써 내려가던 시절의 편지는 단순한 소통 수단을 넘어, 마음과 시대를 함께 담는 그릇이었다. 찰스 다윈이 비글호에 오르게 된 순간도, 마틴 루서 킹과 넬슨 만델라가 세상을 향해 외쳤던 말도 모두 편지에 기록됐다. ‘100통의 편지로 읽는 세계사’는 이렇게 삶을 말하고, 사랑을 전하고, 때로는 절망을 기록했던 100통의 편지를 통해 거대한 역사의 이면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독특한 역사 안내서다.

불타는 도시 한복판에서 누군가는 도망치지 않고 편지를 쓰고 있었다. 기원후 79년 베수비오산 폭발 당시, 폼페이를 집어삼킨 재앙 앞에서 로마의 변호사 플리니우스는 역사가 타키투스에게 그 광경을 고스란히 전한다. “불에 탄 돌과 재가 폭우처럼 쏟아졌다”는 그의 문장은 공포를 넘어, 후대 화산학자들이 ‘플리니식 분화’라 명명할 정도의 중요한 기록이 됐다. 또 다른 편지에서는 용기와 광기가 동시에 엿보인다. 백년전쟁 당시 잔 다르크가 잉글랜드 왕에게 보낸 편지는 선언에 가까웠다. “프랑스에서 당신의 군대를 몰아내지 않으면, 내가 직접 몰아내겠다”는 문장은 한 소녀의 신념과 시대의 균열을 동시에 드러낸다. 협박처럼 들리지만, 그 말은 결국 현실이 되었고 전황은 뒤바뀌었다. 편지는 이처럼 전쟁의 한복판에서조차 인간의 의지를 증명하는 도구가 됐다.

세기의 천재도 취업 앞에서는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사실도 편지가 아니었으면 모를 뻔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밀라노 공작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을 ‘완벽한 무기 개발자’이자 ‘최고의 화가’로 소개했다. “어떤 공격에도 끄떡없는 전차를 만들 수 있다”며 “평화로운 시기에는 공적·사적 건축으로 각하를 만족시킬 수 있으며, 그림은 누구보다 잘 그릴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오늘날의 이력서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자기 어필’은 결코 허풍이 아니었다. 다빈치는 이후 세기말까지 밀라노에 머물렀고 이때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에 놓일 작품을 완성한다. 그것이 바로 그의 대표작 ‘최후의 만찬’이다.

편지의 세계에서 연애는 빠질 수 없다.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8세가 앤 불린에게 보낸 열정적인 고백이 대표적이다. “당신 마음속에 있거나, 아니면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 맹세하며 구애했던 그는 당대의 로맨티스트였던 듯하다. 문제는 헨리가 이미 유부남이었다는 점이다. 이혼을 용납하지 않는 가톨릭교회에 맞서 그는 로마가톨릭과 결별하고 영국국교회의 수장이 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 사랑의 결말은 비극이었다. 앤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헨리는 변심했고, 앤은 반역과 불륜이라는 날조된 혐의로 참수당한다. 한 나라의 종교 체제까지 뒤흔들었던 사랑은 그렇게 기막힌 결말을 맞았다.

반면 피에르 퀴리가 마리 퀴리에게 보낸 편지에는 사랑과 학문, 삶을 함께하겠다는 조용한 다짐이 담겨 있다. “우리가 꿈에 매료되어 함께 삶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당신의 조국을 향한 꿈, 우리의 인도적 꿈, 과학적 꿈 말이에요.” 피에르의 소망은 결국 현실이 된다. 1895년 결혼한 이들은 1903년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고, 마리는 1911년 화학상까지 거머쥐며 두 개의 노벨상을 받은 유일한 여성이자, 서로 다른 분야에서 두 차례 수상한 유일한 인물이 된다.

인류사의 방향을 바꾼 발견 또한 편지에서 조용히 출발했다. 갈릴레오가 목성의 위성을 발견하고 보낸 보고서, 라이트 형제가 최초 비행 성공을 알린 전보는 이들의 손끝에서 종이를 거쳐 세계로 나아갔다. 특히 라이트 형제는 아버지에게 전보로 성공을 알렸는데, 구두점조차 비용이 되었던 시절이라 문장은 건조하다. “상공 4회 목요일 아침 모두 시속 21마일 바람 속 엔진 동력 평균 속도 31마일 가장 긴 비행 57초 언론 알리고 집 크리스마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사건’이 아니라 ‘사람’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할지라도, 편지는 승자의 언어가 아닌 흔들리고 고뇌하는 개인의 목소리다. 거대한 역사 서술이 놓치기 쉬운 인간의 체온이 이 책 전반에 스며 있다. 일부 편지의 경우 시대적 배경 설명이 다소 간략해, 해당 인물이나 사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그럼에도 편지로 역사를 읽는다는 기획 자체는 신선하고 설득력이 있다.

더 이상 편지로 소통하지 않는 시대, 우리는 얼마나 쉽게 말하고 얼마나 빠르게 잊는가. 연말을 맞아 주변 지인에게 연하장 한 장을 건네거나,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 한 통을 써보는 건 어떨까. 이메일과 메신저가 일상이 된 오늘날에는 좀처럼 체감하기 어려운 기다림과 번거로움이 온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훗날 역사의 기록이 될지, 혹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440쪽, 2만5000원.

신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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