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가다 산국꽃의 개수 헤아리는 일, 쓸데없어 보이나요?” [.txt]

최재봉 기자 2025. 11. 2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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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집 ‘쓸데없이 눈부신…’ 낸 안도현
40년 만의 귀향과 전원생활의 유유자적
낯설고 연민 자아내는 ‘북’ 노래한 시들도
경북 예천 고향 마을로 귀향한 안도현 시인이 내성천으로 이어지는 집 앞 산책로에서 가을볕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수크령과 눈인사를 나누고 있다. 안도현 제공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는 안도현의 열두번째 시집이다. 코로나가 한창일 무렵 나왔던 직전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이후 5년 만이다. 지난 시집 출간 반년여 전인 2020년 2월 말, 그는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꼬박 40년 동안 거주했던 전라북도 지역을 떠나 고향인 경북 예천군 호명면 황지리로 귀향했던 터였다. 귀향을 마음먹은 계기 가운데 하나는 연로한 홀어머니를 가까이에서 모시겠다는 것이었지만, 야속하게도 그 어머니는 아들의 귀향을 기다리던 중 뇌경색으로 쓰러졌고 코로나19로 두꺼운 유리문 안에 갇혀 있다가 2021년 여름에 돌아가셨다.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 l 안도현 지음, 문학동네, 1만2000원

“당신을 병상에 버리고 당신은 유리창 너머로 저를 버리고// 저는 밤마다 아무도 읽지 않을 이야기를 썼죠”(‘연못 위에 쓰다’ 부분)

“유리 상자 안에 그녀가 담겨 있었다/ 밤의 요양병원을 홑이불로 뒤집어 덮고// (…)// 우리가 그녀를 위해 상자 바깥에 있는지/ 우리를 위해 그녀가 상자 안에 있는지”(‘유리 상자’ 부분)

시집 맨 앞에 놓인 이 두 작품을 비롯해 어머니의 와병과 작고를 다룬 사모곡들은 지난 시집에 실린 ‘임홍교 여사 약전’에 잇대어 읽으면 좋을 듯싶다. 1939년 일본 구로사키에서 태어난 시인의 어머니 임홍교 여사는 2021년 여름 세상을 뜨면서 자신의 연보를 마무리했지만, 아들의 시 속에서 영원한 삶을 얻었다.

새 시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귀향 이후의 일상을 다룬 작품들이다. 마당의 풀을 뽑다가 벌에 쏘이거나 가출한 장닭을 찾아 산속을 뒤지거나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물총새를 땅에 묻어 주는 등의 특별할 것 없이 분주한 일과가 시집을 채우고 있다. 조선 중기 문신 권문해가 예천 용문면에 초간정을 지은 일을 쓴 ‘초간일기’의 구절들에 빗대어 시인 자신의 귀향을 보고한 ‘물소리를 필사하다’, 그리고 이른 봄에서 늦봄까지의 두달 남짓을 봄나물이 나오는 차례에 맞추어 기록한 ‘3월에서 5월까지’ 등에서는 전원생활의 여유와 풍류가 유유자적하다.

몸과 마음에서 힘을 빼고 주변 환경과 상황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태도가 유유자적의 요체라 할 터인데, 그러다 보면 어떤 깨달음도 오고 괜찮은 시도 따라서 오는 성싶다. ‘꽃밭을 한 뼘쯤 돋우는 일을’이라는 작품은 마당의 꽃밭을 높이느라 트럭으로 주문한 마사토를 삽으로 떠 넣고 돌을 고르는 작업을 지켜보던 동무와의 수작을 그렸다.

“꽃밭을 높여보려고 한다니까/ 시인은 원래 이렇게 쓸데없는 일 하는 사람인가, 하고 물었다/ 꽃들의 키를 높이는 일, 그거/ 쓸데없는 일이지, 혼자 중얼거렸다/ 서리 오기 전에 배추나 서둘러 뽑으라 하였다”

동무는 쓸데없는 일을 하는 시인을 짐짓 꾸짖는 듯하지만, 시의 말미에는 사뭇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다음에 올 때는 닭똥 치우고 나서 깔 톱밥 한 포대를 사다 달라는 시인의 말에 동무는 “이제는 병아리 키 높이는 일을 하려고 하는구먼”이라고 받는 것 아니겠는가. 쓸데없는 일의 매혹적인 전염력을 알게 된다.

2020년 2월 말에 귀향한 경북 예천 집 둘레에 쌓은 돌담에 기대어 자세를 잡은 안도현 시인. “집을 짓고 마당에 연못을 팠는데, 연못이 쓸모있는 그 무엇을 내게 주지는 않았지만, 연못에서 몇편의 시를 얻었다. 이 연못이 한동안 더 시를 쓰라고 말할 것 같다”고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안도현 제공

‘쓸데없음’의 가치는 시집의 제목을 낳은 작품(‘손톱’)에서도 강조되거니와, 이번 시집 전체의 주제로 새겨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을 쓰고 나니/ 나는 더 편안해졌다”(‘연민’)거나 “나는 쓸모없는 걱정을 하다가 가장 쓸모없는 일이 가장 귀한 일이라는 생각도 한다”(‘흰목물떼새’), “쓸데없는 것을 몇 줄 더 쓰고”(‘산책’) 등에서 시인은 쓸모없는 일과 쓸모없는 시를 한껏 높이고 떠받든다. 시인은 25일 한겨레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쓸데 있음’을 경제적인 가치와 동일시하면서 사람들은 정작 아름다운 게 뭔지를 잊어버렸다”며 “들길을 가다가 흐드러진 산국꽃의 개수를 헤아리거나 마른 들깨를 털 때 나는 냄새처럼, 쓸데없다고 여기는 것들 중에 아름답고 눈여겨볼 만한 게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런 것들에서 나는 시를 얻는다”고 말했다.

시인은 일찍이 ‘북항’(2012)이라는 시집을 낸 바도 있는데, 이번 시집에도 제목에 ‘북’이 들어가거나 본문에서 ‘북’을 언급한 작품들이 10여편에 이른다. 쓸모없음과 더불어 ‘북’이 시집의 중요한 주제를 이룬다는 뜻일 테다.

“북천을 가지고 갈 수도 없고 쌓아둘 수도 없지만 북천은 부서지지 않고 흘러내리지 않고 물렁거리지 않고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아요”(‘북천’ 부분)

“북촌은 가난해서 아름답고 모든 게 부족해서 아름답고 언행이 덜떨어져서 아름답다”(‘북촌’ 부분)

인용한 시들에서 북은 쓸모없음과 거의 구분할 수 없도록 통하는 의미망을 지닌다. 북을 노래한 모든 작품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 작품에서 북은 북한을 가리키는 상징으로 쓰인다. 시인은 왜 이토록 북에 집착하는 것일까. 한겨레 인터뷰에서 그는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특히 한국인들에게 ‘북’이라는 글자는 입에 올리기만 해도 이데올로기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 힘든 말이 되었습니다. 아예 잊어버리고 사는 게 속 편할지도 모르고요. 저는 북한의 평양을 대여섯 차례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 낯설고, 그 가련하고, 그 희한하고, 그 연민을 유발시키는 공기와 사람과 자연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일반인들이 멀리하는 것을 가까이 잡아당겨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시인이 아닐까요? 저의 의식 속에 들어앉아 있는 ‘북’을 꺼내 보여주고 싶었어요.”

안도현 시인이 지난 6월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해 발언하고 있다. 시인의 앞에 놓인 책은 2020년 9월에 나온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다. 안도현 제공

정년이 몇해 남았음에도 지난 2월 말로 교수직을 그만둔 시인은 “올 한해 동안 집에 머물면서 텃밭을 가꾸었더니 배추 소출이 좀 괜찮다”고 작황을 보고하고 이어 근황도 전했다.

“저희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내성천으로 2024년 채수근 상병이 떠내려갔어요. 매일 강에 가면서 매일 그 생각 때문에 일찍 간 젊은 친구에게 미안해집니다. 이 사건이 잘 풀려서 내년에는 죄책감 없이 강을 바라봤으면 좋겠어요. 내년 봄에 동시집을 한권 내려고 준비 중입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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