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예진 작가의 개인전 '머무르는 것들'이 28일부터 갤러리제이원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박 작가는 나무껍질의 갈라짐과 주름을 시간의 단면으로 읽어내는 회화 신작을 선보인다.
박예진의 화면은 '나무껍질'이라는 물질의 표면에서 시작해서 '시간'과 '존재'라는 근원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으로까지 확장된다. 껍질은 나무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찢고 다시 봉합하는 과정에서 생긴 흔적이며, 그 자체로 생장과 견딤의 지질도(地質圖)라는 게 작가의 인식의 출발이다. 작가는 그 조각난 표피를 관찰·채집하고, 스케치·촬영·채색 등의 과정을 거쳐 화면 위에 재배열하고 있다. 그렇게 구축된 형상은 자연의 사실적 재현이라기보다 '감정의 구조물'에 가깝다.
박예진 작, '상흔', 2025. 갤러리제이원 제공
나무껍질에 생긴 상처는 작가에게 비극의 표지가 아니라 시간의 단면이다. 갈라짐, 뒤틀림, 주름의 리듬은 고통을 증명하는 표식이면서도, 동시에 생명의 집요한 복원력과 방향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작가는 흔적을 지워 원상태를 회복하는 대신, 흔적을 품은 채 아름다움이 갱신되는 순간을 기다린다. 그래서 박예진의 화면은 수용과 기다람을 배우는 과정을 위한 조용한 장치이며, 명상에 가까운 감각적 훈련이다. 전시는 12월13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