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고소한 기름 냄새 맡으며 시장 구경하기...성남 모란민속오일장 기름 골목


모란시장은 크게 13개의 구획으로 나뉜다. 화훼, 잡곡, 약초, 생선, 채소, 의류, 신발, 잡화 등 다양한 품목을 팔기 때문에 가까이는 경기도와 충청도, 강원도에서도 찾아온다.

길을 걷다 보면 구수하다 못해 달큰한 향이 코를 간지럽히고, 쇳빛 착유기의 낮은 진동음이 전해진다. 참기름과 들기름, 생들기름, 콩기름, 더 나아가 들깨가루, 볶음참깨, 미숫가루까지, 밥상 위 고소함의 주연과 조연들이 한데 모여 있다. 상인들은 지나가는 손님들을 향해 “오늘 볶음 막 돌렸어요!” 하고 먼저 말을 건다. 이곳에서는 기름이 ‘상품’이기 전에 ‘방금 만든 음식’에 가깝다.
기름골목에서 만드는 기름은 주문이 들어오면 만든다. 참깨와 들깨를 고운 체로 다시 한번 거르고, 드럼형 로스터에서 볶아 향을 깨운다. 볶음 시간이 너무 길면 쓴내가 배고, 짧으면 풍미가 얕다. 볶아 나온 깨는 식힘 통에서 김을 한 차례 뺀 뒤 착유기로 들어가고, 곧이어 투명 호스를 타고 선연한 갈색 기름이 되어 흘러나온다. 막 짜낸 기름은 점성이 살아 있다. 병에 담기기 전에 한 숟갈 맛을 보자고 하면, 상인은 소금 한 꼬집을 찍어 작은 종지에 내준다. 혀끝에서 먼저 고소함이 번지고, 뒤늦게 볶음 향이 길게 남는다. 이 ‘뒤끝’이 좋은 집이 오래 사랑받는다.

좋은 기름을 고르는 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첫째, ‘오늘’ 혹은 ‘어제’ 날짜가 적힌 라벨을 찾으면 된다. 둘째, 향을 맡았을 때 텁텁하거나 눅눅한 냄새가 없어야 한다. 셋째, 한 모금 맛보았을 때 혀에 번지는 고소함 뒤에 쓴맛이 남지 않아야 한다. 색이 진하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들기름은 올리브빛을 띠는 연한 황금색부터 갈색까지 폭이 넓다. 집에 가져가면 갈색 유리병에 옮겨 담아 냉장 보관하고, 한두 달 안에 비우는 게 가장 좋다. 기름도 신선식품이다. 오래 두면 향이 죽고, 공기와 빛에 닿으면 산패가 빨라진다.
가게마다 직화로 고소하게 볶은 참깨와 들깨, 곱게 빻은 들깨가루가 산처럼 쌓여 있다. 겨울엔 들깨가루 사 가는 손이 늘어난다. 들깨칼국수, 버섯전골, 시래기국이 제철을 맞기 때문이다. 들깨가루는 냄비에 마지막에 넣어야 텁텁해지지 않고 향이 산다. 미숫가루도 인기 품목. 집에서 얼음 동동 띄워 꿀이나 우유와 타 마시면 든든한 한 끼가 된다. 기름과 가루, 볶음깨를 함께 묶은 선물세트도 많아 명절이면 이 골목이 작은 포장 공장으로 변한다. 얇은 종이에 병을 말아 박스에 차근차근 눕히는 손놀림이 바쁘면서도 정겹다.

뭐니뭐니해도 오일장의 가장 큰 즐거움은 먹거리다. 모란시장에 갈 때는 배를 비우고 갈 것! 장터 지천이 먹을거리다. 찬 바람 불고 한기가 옷 속을 파고드니, 뜨거운 것이 당긴다. 꽈배기, 호떡, 뻥튀기, 팥죽, 칼국수, 수구레국밥까지 입맛 돋우고 속을 채워줄 먹거리가 천지다. 저렴한 값은 덤이다.
모란시장의 대표적인 먹거리 중 하나는 칼국수이다. 시장 내 포차 거리에서는 직접 밀어 만든 면발과 진한 국물이 어우러진 칼국수를 맛볼 수 있다. 특히, 다양한 해산물과 채소를 곁들인 칼국수는 시장을 찾는 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소허파볶음과 돼지껍데기 등 특색 있는 음식들도 눈길을 끈다. 소허파볶음은 쫄깃한 식감과 매콤한 양념이 조화를 이루며, 돼지껍데기는 쫀득한 식감으로 많은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성남 분당에는 ‘신해철 거리’가 있다.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발이봉로3번길 초입에서 수내어린이공원까지 약 160m를 잇는 골목이다. 2014년 신해철의 갑작스런 별세 이후, 한 시민의 SNS 제안이 계기가 되어 유족과 팬, 음악계, 성남시가 함께 조성했고 2018년에 공개됐다. 국내에서 특정 뮤지션 한 사람을 중심으로 조성된 대표적 거리로는 대구의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과 이곳이 자주 언급된다. 골목이 긴 편은 아니지만, 표지와 설치물, 가사 목판 등 ‘마왕’의 흔적을 조밀하게 배치해 걷는 리듬에 맞춰 기억이 환기되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신해철, 그리운 이여. 무대 위에서 포효하는 당신의 모습을 기억하며 그리운 마음 가슴에 담아두겠네. 음악으로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 있을 친구여…”(가수 인순이)
“내 어릴 적 독특하고 특별했던 문화 아이콘 신해철, 그의 ‘민물장어의 꿈’을 부르며 영면을 기린다.”(배우 유지태)
“힘들었던 시절 형님의 노래 ‘날아라 병아리’를 들으며 위로받던 때가 있었습니다. 언젠가 날아오를 그날을 꿈꾸던 내게 친구가 되어준 그 노래… 내 마음속 영원한 마왕”(방송인 유재석)

그가 노랫말을 쓰고 곡을 만든 ‘신해철스튜디오’에는 아직 그의 자취가 생생하다. 서가 한쪽에는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로 수상한 MBC 인기가수상 등 그가 생전에 받은 트로피가 전시되어 있다. 서재 옆은 음악 감상실이다. 1997년 EMI에서 발매된 넥스트의 라이브 앨범을 감상할 수 있다.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 속 라디오 방송 원고도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음악 감상실을 이리저리 돌아보노라면 “자, 이제 녹음해야지”라며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설 것 같다.

책 테마파크는 아이들과 조용한 겨울을 만끽하기 좋은 곳이다. 진입로에 자리한 조형물이 세계 각국의 문자로 꾸며져 이채롭다. 2006년 개관 당시 ‘문자와 이야기, 신화, 종교, 철학, 과학, 예술, 역사 등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을 담은 책’이라는 주제로 설계했다고 한다. 책 카페와 야외 공연장도 있어 미리 행사 일정을 알아보고 가면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글과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06호(25.11.2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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