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건축기행- 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 (48) 대구간송미술관
일제강점기 우리 것 지키려 한 수집가
간송 전형필 선생 문화보국 흔적 담겨
팔공산 절경 배경으로 자연 지형 순응
산세 조망하는 누마루 같은 공간 선사
구석구석 자연미·전통공법 서려 눈길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재를 지켜온 간송 전형필 선생의 수집품을 전시하는 대구간송미술관 전경.
한국 현대건축에서 전통의 재해석은 직간접으로 꾸준히 표현해왔다. 처마 곡선, 한옥 마당, 채 나눔, 형태에서부터 공간의 표현들은 잃어버린 근대기 이후, 특히 공공건축에서의 강박관념은 거쳐 가야 하는 과정적 시간이었다. ‘간송(澗松)’이라는 무거운 명제를 담는 미술관, 어려움을 극복한 소나무처럼 대구에 심겨진 문화, 이 시대의 조용한 은유를 설계(최문규+가아건축)한 건축은 올해 ‘대구건축상’ 대상을 수상했다.

북측 언덕에서의 미술관 전경.
◇전통의 은유- 비움의 마당= 진입도로 위 산 언덕 북향으로 ‘대구미술관’이, 도로 아래쪽 45도 비켜난 경사지에 ‘간송미술관’이 자리한다.

11개 기둥과 지붕 처마 아래 비워진 공간에서의 시선은 멀리 팔공산까지 확장한다.

11개 기둥과 지붕 처마 아래 비워진 공간에서의 시선은 멀리 팔공산까지 확장한다.
전통적인 처마 곡선이나 형태가 없는 공간인데도 익숙함이 있다. 병산서원 만대루일까? 부석사 안양루에서일까? 누마루에 올라서 또는 마당에서 멀리 산세를 조망하듯, 도시의 미술관 마당에서 무한대 차경으로 확장하는 마당공간이다.
미술관의 서편 주차장에서 차를 내리면 건물 측면을 반듯이 바라보게 된다. 낮고도 넓은 기단(基壇) 위에 한편으로 기둥 위 떠있는 처마지붕 또한 익숙한 풍경이다. 기단-기둥-지붕의 현대적 구성은 누마루 아래서 올려다보듯 앙시(仰視) 효과의 처마지붕은 확대되고 강조되어 보인다.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위 문루(門樓) 지붕 처마가 더욱 아름다운 것은 낮은 마당에서 바라보기 때문이고, 정자 처마선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 언덕아래 계곡 바위 아래에서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성벽 또는 누하(樓下)를 지나듯, 지붕 처마를 올려다보며 미술관 옆 계단을 오른다.

11개 기둥과 지붕 처마 아래 비워진 공간에서의 시선은 멀리 팔공산까지 확장한다.

기둥과 처마 공간 비움의 마당 스케치. /최상대 제공/
우후죽순처럼의 11개 기둥에서 그 하나는 박석마당을 가출하여 언덕 아래로 질서를 벗어나 서있다. 어긋남 흐트러짐의 미학이다. 미술관의 전인권 관장은 방송 인터뷰에서 12개 기둥 단위에서 모자라는 하나의 마지막 기둥은 ‘시민의 마음으로 시민들이 세우는 기둥’이라고 말했다.

경사지 기단 위에 지붕이 떠있는 미술관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흐름이다. /매일신문DB/

2층 높이의 밝고 넓은 아트리움 공간.

실감 스크린 영상전시실. /매일신문DB/

내부 특별전시장. /매일신문DB/
◇어긋남, 사이(間)의 건축= 전체적으로 전시기능과 부속기능 두 개로 분리된 건물은 유리 아트리움 공간을 사이(間)에 두고 나란히 배치된다. 사이(間)와 나란함은 약간의 각도로 어긋난 평행이며 기하학의 경직성에서 탈피하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은근과 여유이다.

대구간송미술관 내 물의 정원 소나무 언덕.
지하 1층의 마지막 전시실을 나오면 뒷면 큰 창으로 비밀의 화원처럼 물의 정원 소나무 언덕이 펼쳐진다. 홀로 앉아 자연을 조용히 감상하고픈 공간은, 전시실의 침묵에서 해방되어 인증사진 촬영으로 북적이는 청춘들에게 밀려나 버린다. 다시 되돌아가는 길은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버리고 좁은 골목길 복도를 천천히 돌아서 올라 가야 한다. 영화관의 마지막 크리딧 시간처럼 감상의 여운을 지속하는 시간과 공간이다. 다시 넓고도 높은 아트리움 공간 옆에는 간송의 생애 흔적이 전시된 ‘간송의 방’을 빠트리지 말아야 한다.

물과 소나무 간송(澗松)의 정원 스케치. /최상대 제공/
◇공유와 확장, 건축과 공간= 간송 전형필 선생이 일제강점기의 문화재 수집을 통해 보여준 문화보국(文化保國)의 정신은, 근대기 교육, 문학, 미술이 활발했고 국채보상운동의 도시 대구의 전통과 맞닿아 있다. 보화각으로 출발한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수장과 연구의 공간’이었다면, 대구간송미술관은 ‘공유와 확장의 공간’일 것이다.
다시 출입구로 나와 미술관 북쪽 아래로 내려와야 하는 후원(後園)은 인적이 뜸한 비밀의 화원이다. ‘산골 물(澗), 소나무(松)’가 있는 바로 ‘간송(澗松)의 정원’이다.
간송 전형필은 일본으로 유출되는 문화재를 수집하여 민족의 얼이 담긴 보화각을 만들며 오늘의 간송미술관이 됐다. 사유원 유재성 회장은 일본으로 밀반출되던 모과나무를 되찾고 사라져가는 우리 땅 모과나무를 ‘풍설기천년’에 옮겨 심으며 사유원의 모태가 됐다. 미술관 후원에서 사유원 모과나무 한 그루를 발견한다. 또한 한국의 위인을 기리는 사유원 ‘신신전(神神田)’에는 간송 전형필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대구간송미술관’ 과 ‘사유원’은 ‘공유와 확장’의 건축과 공간이다.
최상대 전 대구경북건축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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