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울산여지도] 울산의 흥망성쇠를 지킨 도로망

김진영 편집국장 2025. 11. 24.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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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확장과 함께 한 도로망
국제무역항의 교역로로 출발
산업수도로 사통팔달 이어져
울산매일신문UTV 김진영 편집국장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들었던 이 문장은 로마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갖게 한다. 로마의 길은 왜 유명해졌을까. 로마로 통하는 길은 단순히 사람이나 물건을 옮기는 용도만이 아니라 제국의 군대를 이동시키고 점령지의 안정화를 돕는 군사 전략의 핵심이었다. 로마 최초의 도로인 아피아 가도는 기원전 312년에 건설됐다. 로마와 이탈리아 남부를 연결하는 남북직로였다. 아피아 가도를 중심으로 로마의 도로는 제국 전역으로 뻗어나가는 거대한 네트워크의 시발점이 됐다. 도로를 따라 제국은 팽창했고 그 성장과 영화를 발판으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문장이 완성됐다. 지금까지 발굴과 조사를 토대로 살피면 로마의 도로는 총 길이 40만㎞로 지구를 10바퀴 돌 수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뜬금없이 로마의 도로를 이야기 하는 것은 울산여지도가 1,000년전 국제무역항이 번창했던 울산의 도로망을 살피기 위함이다. 최근 국내 최초의 고속도로인 경인고속도로가 변신을 꾀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인천 구간 일부를 지하화하고 시민에게 돌려주는 작업에 한창이라고 한다. 경인고속도로는 지난 1968년 12월 서울 양평동에서 인천 가좌 나들목까지 개통한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다. 그로부터 한 해 뒤인 1969년 12월 울산과 언양을 잇는 고속도로가 개통했다. 경인고속도로보다 1년 늦은 개통이지만 민자 고속도로로는 국내 최초였다.

한반도의 동남단 국토의 변방이던 울산에 왜 고속도로가 빠르게 도입됐을까. 고속도로 개통 몇해 전 울산은 특정공업지역으로 선포됐다. 1962년 2월3일이다. 그보다 20여년전 일제는 울산을 대동아전쟁의 병참기지로 낙점하고 공업센터를 설계했다. 이런 역사를 미뤄 볼 때 울산은 단순히 산업 도시라는 타이틀을 넘어 오래전부터 동해안과 영남 내륙, 그리고 해상 교역을 잇는 중요한 지정학적 요충지였다.

고대국가에서 도로는 물류의 동맥이자 정복의 핵심루트였다. 그런 점에서 울산의 도로는 교역은 물론 군사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다. 사료를 뒤지면 길의 역사가 보인다. 철광석 생산의 핵심이었던 울산은 신라 왕경의 배후 항만으로 신라 국력의 보물창고였다. 달천의 철장의 기반으로 주변 소국을 정복해 나가던 신라는 영토확장과 함께 도로망도 촘촘해졌다. 초기 신라가 주변의 소국을 정복해 나아간 방향에 따라 당시의 도로망도 갖춰지게 된다. 경주를 출발점으로 음즙벌국(안강)·실직국(삼척)으로 통하는 길, 우시산국(울산)·거칠산국(동래)으로 통하는 길, 이서국(청도)·비지국(창녕)·초팔국(합천군 초계)에 이르는 길, 압독국(경산)·다벌국(대구)에 이르는 길 등이 핵심 도로망이다.바로 그 도로망이 놀랍게도 지금의 국도와 고속도의 연결망과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은 도로의 역사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1969년 12월 울산언양고속도로 개통식 장면

신라의 영토확장과 함께 시작된 울산의 도로망은 언제부터 체계화 됐을까. 울산 지역에서는 그동안 개발의 과정에서 다수의 도로 발굴 자료가 확보됐다. 이를 통해 과거 울산과 주변지역을 연결했던 교통망의 윤곽을 살필 수 있게 됐고 그 결과로 고대도시 울산의 위상을 제대로 읽을 수 있었다.

삼국~통일신라시대 울산의 주요 간선도로 노선은 경주-언양, 밀양-언양, 울산-언양, 경주-울산을 연결하는 경로로 확인됐다. 이 간선도로는 물자나 군사의 이동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통행량을 고려하여 중·대형 규모로 축조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당시 도로는 구릉 말단부의 평탄면이나 저지대에서 발견된 것으로 하천을 이용한 수상교통로와 연결되기 쉽게 조성했음을 알 수 있다.

울산과 다른 도시를 연결하는 간선도로가 큰 물줄기라면, 그 가지를 이루는 도로망도 정교하게 계획됐다. 지방도는 통행량이 많지 않아 소형 도로로 축조됐고 이는 구릉 말단부의 완만한 경사면에서 확인되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의 발굴 조사를 토대로 살피면 고대 울산의 지방도 들은 수레 1대 정도 통행할 수 있도록 규격이 기획된 흔적을 보이고 있다.

조선 시대 이전에 울산은 교통의 요충지로서 울산 고을길(울산도)이라는 옛길이 존재했다. 이는 경주에서 언양을 거쳐 울산 장생포로 이어지는 대표적인 노선이었다. 또 하나의 길은 언양에서 밀양 고갯길 운문령을 넘어 영남 내륙으로 통하는 길이었다. 이 길은 대형 물류보다는 사람의 왕래가 중심이었는데 대부분 말이나 걸어서 다니는 산길 또는 역로(驛路)의 형태였다.

울산의 도로 역사에 있어 근대적 전환점은 1910년대 일제강점기에 찾아왔다. 일제는 군수 물자 수송과 자원 채취를 목적으로 도로를 정비하기 시작했고, 울산항과 경주, 언양을 잇는 도로들이 확충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에는 울산에서 부산, 경주를 연결하는 노선이 등장했고 바로 이 도로망이 오늘날 국도 체계의 기초가 됐다.

울산의 도로망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시기는 1962년 울산이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되면서부터다. 울산에 석유화학공단이 들어서고 울산조선소(현대중공업)와 현대자동차 등 대규모 산업시설이 들어서면서 이를 지원하기 위한 도로망이 급속하게 확충되기 시작했다. 국도 가운데 울산에서 시작되는 시점(始點)인 국도는 하나도 없지만 울산이 종점(終點)인 노선이 있다. 바로 국도 24호선이다. 전라남도 신안군 지도읍에서 시작하는 이 도로는 경남 밀양과 울주군 언양을 지나 중구 성남동에서 끝나는 무려 500km에 달하는 동서 관통 도로망이다. 본래 울산의 종점을 알리는 도로원표가 성남동 옛 상업은행 앞에 있었지만 지금은 울산시청 청사 구내에 새로운 원표가 세워져 울산 도로 역사의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마지막 팁 하나. 도로는 도로법에 따라 고속국도, 일반국도, 특별시 광역시도, 지방도, 시도, 군도, 구도 등으로 매겨지는 급수를 갖고 있다. 일반국도는 대통령령으로 정해진 국가 기간도로망으로 홀수 번호는 남북을, 짝수 번호는 동서를 관통한다. 울산을 지나는 일반국도는 총 5개로, 전국민이 한번쯤 달려보고 싶어 하는 7번 국도는 부산을 기점으로 울산과 강릉을 지나 함경북도 온성까지 연결된다. 울산이 좀점인 24호 국도와 거제~포항을 잇는 14번 국도, 부산 기장~ 울산~강원 신고산을 잇는 31번 국도, 부산 기장~울산~강릉 간 35번 국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