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521> 전북 정읍에 있는 우암 송시열 유허비
아! 이곳은 우암 송 선생께서 명(命)을 받으신 곳이다. 기사년(1689년·숙종 15)에 흉악한 무리(남인을 지칭)가 장차 큰일(기사환국)을 저지르려고 하였는데, 선생께서 도덕(道德)으로써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는 것을 보고, 먼저 선생에게 독이 묻은 손(毒手)을 뻗쳤다. … 선생께서 이 현(정읍현)에 도착하였을 때 성상(임금)의 명이 이르렀으니, 6월 8일이다. …
嗚呼! 是爲尤庵宋先生受命之地也. 歲己巳羣兇將行大事以, 先生道德爲世宗師, 先逞毒手. … 至是縣, 而後命至, 六月八日也.(오호! 시위우암송선생수명지지야. 세기사군흉장행대사이, 선생도덕위세종사, 선령독수. … 지시현, 이후명지, 유월팔일야.)
위 문장은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1607~1689)을 기리기 위하여 전북 정읍시 수성동에 세운 ‘송우암수명유허비(宋尤庵受命遺墟痺)’에 적혀있다. 그는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제주도에 유배 가 있던 중 숙종의 명을 받고 서울로 가다가 정읍현에 도착했을 때 사약을 받고 사망했다. 그때 82세였다. 송시열은 조선왕조실록에 3000번이나 이름이 올라와 있다.
‘먼저 독이 묻은 손을 뻗쳤다’(先逞毒手·선령독수)라는 말은 남인 세력이 송시열을 증오해 선수를 쳐 죽음으로 몰았다는 뜻이다. 그는 어떤 일로 제주도로 유배를 갔을까? 1689년(숙종 15) 후궁 소의 장씨(昭儀張氏·장희빈) 소생을 원자로 정호(定號)하는 문제를 계기로 서인이 축출되고 남인이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이 사건으로 1683년 경신환국(庚申換局) 이래 집권해 온 서인이 대거 축출되고 남인이 크게 진출했다.
숙종은 22세의 인현왕후가 후사를 볼 수 있음에도 후궁의 자식으로 왕위를 잇는 것이 부당하다는 노론계의 반대에도 총애하던 장희빈(이름 장옥정)이 낳은 아들을 원자로 정하였다. 이에 노론 영수 송시열이 다시 반대론을 제기하자 숙종은 그를 유배 보냈다. 인현왕후를 폐비하고, 장희빈을 왕비로 삼았다. 장희빈은 역관 집안의 중인 출신이었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필자의 고교 동창이 정읍에서 이 유허비를 보고 연락이 와 송시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하여 독자들께도 이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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