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와 캐리어 닮은 이어폰 케이스…법원 “디자인 무효” [허란의 판례 읽기]

한경비즈니스외고 2025. 11. 23.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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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법원 “이종 물품 간 유사 디자인 인정”
디자인 보호 범위 확대

[법알못 판례 읽기]

리모와 캐리어. 사진=리모와

독일 명품 여행용 캐리어 브랜드 ‘리모와’의 상징적인 그루브(groove) 디자인을 모방한 이어폰 케이스에 대해 법원이 디자인 등록 무효 판결을 내렸다.

물품의 종류가 다르더라도 독창적인 디자인 아이덴티티는 보호받을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 판결로 디자인 보호 범위를 둘러싼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핵심 쟁점은 이종 물품 간 창작 용이성

특허법원 제2민사부(재판장 이혜진 부장판사)는 지난 11월 12일 이어폰용 케이스 디자인권자 A씨가 독일 리모와 법인을 상대로 제기한 ‘디자인 등록 무효 심결 취소 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이번 소송은 리모와가 2023년 8월 특허심판원에 A씨의 이어폰 케이스 디자인에 대한 등록무효심판을 청구하면서 시작됐다. 리모와는 A씨가 2020년 6월 출원해 2021년 3월 등록받은 이어폰 케이스 디자인이 자사의 여행용 캐리어 디자인과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특허심판원은 2024년 7월 “통상의 디자이너가 선행디자인인 리모와의 캐리어를 참고해 이어폰 케이스 디자인을 쉽게 창작할 수 있다”며 리모와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불복한 A씨가 특허법원에 심결 취소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에서도 패소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여행용 캐리어와 이어폰 케이스처럼 용도가 다른 물품 간에도 디자인 창작의 용이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였다.

A씨 측은 “이어폰 케이스와 여행용 캐리어는 기본적인 구조가 다르고 용도와 기능에 관련성이 없다”며 “선행디자인을 근거로 창작비용이성(창작이 쉽지 않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양 디자인은 줄무늬 형태, 손잡이, 바퀴 위치, 체결구, 경첩 형상 등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어 새로운 심미감을 불러일으킨다”고 강조했다.

반면 리모와 측은 “두 제품 모두 물건을 보호하고 휴대한다는 용도와 기능에서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며 “리모와의 그루브 디자인은 ‘리모와 스타일’로 널리 알려져 다양한 모바일 액세서리에 활용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법원, 창작 용이성 인정

특허법원은 리모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먼저 디자인 창작 용이성 판단의 법리를 제시했다.

재판부는 “디자인보호법 제33조 제2항의 무효 사유 판단에서는 공지디자인으로부터 통상의 디자이너가 쉽게 해당 디자인을 창작할 수 있는지가 문제 될 뿐 해당 디자인이 표현된 물품이 공지디자인의 물품과 반드시 동일·유사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 “동일·유사하지 않은 물품에 표현된 선행디자인이라도 물품 간 용도·기능의 관련성, 기본적인 구조 및 대비되는 형상의 유사 정도, 해당 디자인 분야에서 다른 물품의 디자인을 전용하는 경향 등을 고려해 통상의 디자이너가 쉽게 참고할 수 있다면 창작비용이성을 부정하는 근거로 삼을 수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구체적으로 이어폰 케이스와 여행용 캐리어의 공통점을 지적했다. 먼저 용도와 기능 측면에서 “이어폰 케이스는 에어팟을 외부 충격이나 오염으로부터 보호하고 휴대성을 높이기 위한 물품이고 여행용 캐리어는 의류나 소지품을 정돈해 수납하고 외부 충격으로부터 보호하면서 손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물품”이라며 “두 물품 모두 다른 물건을 보호하고 손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용도·기능의 관련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구조적 측면에서도 “에어팟 충전 본체는 모서리 및 단부가 둥근 육면체에 가까운 형상으로 덮개를 여닫을 수 있는 구조이고 여행용 캐리어도 통상적으로 육면체에 가까운 형상으로 덮개를 여닫을 수 있는 구조”라며 “양 물품의 기본적인 구조가 유사하다”고 판단했다.

 ‘리모와 스타일’의 전용 경향

재판부는 리모와의 그루브 디자인이 다양한 제품으로 전용되고 있다는 점을 중요하게 고려했다.

재판부는 “리모와는 1950년경부터 표면에 같은 간격의 주름과 홈으로 입체적인 줄무늬를 형성한 디자인을 모든 여행용 캐리어에 채택해 왔다”며 “이러한 디자인은 ‘리모와 스타일’이라고 불리면서 이어폰 케이스 출원 전 액세서리 파우치, 휴대전화 케이스 등에 활용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두 디자인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통상의 디자이너가 쉽게 극복할 수 있다”고 봤다. A씨 측이 주장한 가로세로 비율의 차이에 대해서는 “수납 대상인 에어팟 충전 본체의 종횡비를 반영해 통상의 디자이너가 적절히 선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름과 홈의 개수 및 간격 차이에 대해서는 “비교적 대형인 물품의 디자인을 소형화하기 위해 일부 요소를 생략하거나 단순화하는 것은 흔한 창작수법이나 표현 방법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바퀴와 손잡이 위치의 차이에 대해서도 “소형 액세서리 분야에서 부피를 줄이기 위해 일부 구성요소를 단부 내로 재배치하는 것은 큰 창작적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의 디자인 설명에 주목했다. A씨의 등록디자인 설명에는 “본 디자인은 여행용 캐리어의 형상을 모티브로 한 이어폰용 수납 케이스”라고 기재돼 있었다.

재판부는 “두 디자인은 덮개가 배면 쪽으로 개폐 가능하고 하단에 4개의 바퀴가 달린 육면체 여행용 캐리어 형상을 하고 있고 정면·배면·상면은 모두 여러 개의 평행한 주름과 홈으로 형성돼 있다”며 “이는 일정한 간격으로 입체적 요철이 형성돼 있는 공간감 있는 줄무늬 패턴을 갖게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A씨의 디자인 모티브가 된 여행용 캐리어의 구체적 형상이 선행디자인에 그대로 구현돼 있다”며 “소비자들도 유사한 형태의 이어폰 케이스를 ‘리모와 스타일’이라고 지칭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A씨 측의 여러 반박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 측이 “바퀴와 손잡이 위치를 변경하면 여행용 캐리어 본연의 기능이 훼손돼 통상의 디자이너가 쉽게 극복할 수 없다”고 주장한데 대해서는 “이어폰 케이스에 관한 통상의 디자이너가 여행용 캐리어의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려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돋보기]

 김앤장, 시그니처 디자인 영향력 집중 입증

리모와 특허소송 판결은 이종 물품 간 디자인 전용의 용이성 판단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재판부는 물품이 동일·유사하지 않더라도 ▲용도·기능의 관련성 ▲기본적 구조의 유사성 ▲해당 분야에서의 전용 경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창작 용이성을 판단할 수 있다는 법리를 명확히 했다.

리모와 측 소송대리인인 박민정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양 물품 모두 보호하고 휴대한다는 공통된 용도가 있어 디자이너가 캐리어에서 영감을 받아 이어폰 케이스로 전용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점을 강조했다”며 “리모와의 그루브 디자인이 ‘리모와 스타일’로 불리며 다양한 소형 액세서리로 전용되는 사례를 풍부하게 제시한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이승희 변리사는 “이번 판결은 제품 종류가 다르더라도 강력한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구축한 브랜드에 긍정적인 선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은 특허법원 최초로 화상 재판 방식으로 진행된 국제재판이었다. 독일에 소재한 리모와의 법률상 대리인이 독일 현지에서 줌으로 직접 재판에 참여하고 최후진술까지 했다. 특허법원은 동시 또는 순차 통역을 제공해 외국 당사자의 재판 절차 참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했다.

허란 한국경제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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