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호랑이…영화 속 환상 비주얼 무대서 재현
다음달 2일부터 GS아트센터
천장·벽면·바닥 3면 스크린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 구현
퍼핏 연기로 동물 실감 묘사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

환상적인 비주얼로 매혹적인 이야기를 담아낸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가 공연으로 재탄생했다. 2021년 웨스트엔드 초연에서 올리비에상 5관왕, 2023년 브로드웨이 초연에서 토니상 3관왕을 석권한 '라이프 오브 파이'가 다음달 2일부터 내년 3월 2일까지 GS아트센터에서 국내 초연된다.
원작은 얀 마텔의 동명 소설이다. 태평양 한가운데서 구명보트에 고립된 소년 파이와 벵골호랑이 리처드 파커의 227일간의 생존 기록을 그린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의 가족은 폐업 후 동물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던 중 난파된다. 살아남은 것은 파이와 얼룩말·오랑우탄·점박이하이에나 그리고 리처드 파커뿐이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이야기가 이어지고, 파이는 이야기 말미에 기억 속 숨겨진 또 다른 진실을 드러낸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견디기 위한 '픽션의 역할'을 다룬 원작은 맨부커상을 받으며 현대 문학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했고, 리안 감독의 영화 역시 아카데미 4관왕을 기록했다.
무대 버전 '라이프 오브 파이'는 퍼핏·조명·음향·영상 디자인이 결합된 첨단 무대예술로 평가된다. 천장·벽면·바닥을 잇는 3면 스크린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수평선의 빛,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파이의 내면 세계를 다층적으로 표현한다. 제작사 에스앤코 관계자는 "일부 해외 관객들은 바닥 스크린을 더 잘 보기 위해 일부러 2층석을 예매하곤 한다"며 "국내에서도 2층 앞 좌석을 '파노라마석'으로 배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연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벵골호랑이 리처드 파커를 비롯한 동물 퍼핏은 퍼피티어의 정교한 조작을 통해 실제 생명체 같은 움직임을 구현한다. 머리·심장·다리를 각각 맡은 세 퍼피티어가 마치 하나의 신체처럼 호흡을 맞춰 동물들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퍼핏 디자인에는 실물 크기 말 퍼핏으로 전 세계적 주목을 받은 영국 내셔널 시어터 연극 '워 호스' 제작진이 참여했다.
한국 초연은 오리지널 팀이 직접 참여한다. 초연부터 작품을 이끌어온 리 토니가 연출을 맡고, 박소영 연출가가 국내 협력 연출로 함께한다. 정명필 퍼피티어가 퍼핏·무브먼트 디렉션을 맡고, 조민형 작가가 번역·윤색을 맡아 원작의 정서를 한국어 무대 언어로 정교하게 재해석한다. 파이 역은 박정민과 박강현이 더블 캐스팅됐다. 오리지널 프로듀서 사이먼 프렌드는 "무대의 마법이 삶의 본질적 질문과 만나는 경이로운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라이프 오브 파이'와 같은 형식의 공연은 해외에서 '라이브 온 스테이지'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배우 중심의 전통적 연극 문법에서 벗어나 퍼핏·스크린·특수효과·로봇 등을 결합한 종합 엔터테인먼트 쇼로, 해외에서는 기존 연극·뮤지컬과 차별화되는 별도 장르로 인정받고 있다. 내년 국내 공연을 앞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역시 노래와 군무가 있지만, 제작사는 대형 퍼핏과 시각효과가 중심이 된다는 점을 들어 연극이나 뮤지컬 등 특정 장르에 속하지 않는 작품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에 참여한 영화를 무대화한 호러 쇼 '파라노말 액티비티 온 스테이지', 북미 투어 중인 '해리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도 이러한 경향과 맞닿아 있다.
국내 공연 예매 플랫폼은 여전히 연극·뮤지컬 두 카테고리만 운영되고 있어 새로운 형식의 공연들이 일괄적으로 '뮤지컬'로 분류되고 있다. 한 공연예술 전문가는 "기술 발전과 관객 소비 방식 변화 속에서 공연 장르 재편 논의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라며 "'라이브 온 스테이지'가 독립 장르로 자리 잡을지, 혹은 기존 체계의 일부로 재흡수될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구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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