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통해 삶을 묻다] 이름은 존재를 가두기도 하죠

하영란 기자 2025. 11. 19.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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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시인의 '너는 이름 없이 오면 좋겠다'
너의 이름 없음과 나의 이름 없음이 만나
세상의 모든 이름이 너이고 나였으면 한다
류시화 시인

이름은 힘이 세다.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것은 존재 없음의 영역이었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세상에 없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름은 존재를 가두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불려지는 이름으로 산다. 새로운 존재 규정을 하고 싶을 때 이름을 바꾼다.

이름은 한계를, 즉 틀을 규정짓는다. 이름은 영역을 쓰임을 단계를 규정한다. 틀 안에 넣는 것이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다르게 생각하면 자유로운 것이다. 규정짓지 않고 자유롭게 만나는 것이다. 어쩌면 모든 것을 다 품을 수 있고, 내려놓을 수도 있고, 새롭게 이름을 지어 나갈 수도 있다. 예전에 내려온 그대로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류시화 시인의 시 '너는 이름 없이 오면 좋겠다'를 통해 이름이라는 것의 역할이나, 이름이 규정짓는 것을 생각해 본다. 이름을 통해 우리는 거기에 갇혀서 세상을 본다. 수많은 사물의 이름, 직급의 이름, 가문의 이름, 직업의 이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름, 주의의 이름, 노동의 이름, 시장의 이름, 상인의 이름 등등 이름은 분류한다. 이름은 그것이 어떤 존재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또 그 이름 안에 다 들어오지 않는 존재가 있다. 있기는 한데 이름으로 불려지지 않는 것들도 있다. 뭐라고 명명해야 할지 몰라서 부르지 못하는 이름도 있다. 불려진다는 것은 이름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러나 이름을 가짐으로써 상상력의 한계와 그 존재를 제대로 보지 못할 가능성을 포함하는 것이다. 온전한 너와 나로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나는 너의 존재를 숨 쉬고/너는 나의 존재를 숨 쉬고'를 하지 못할 수 있다.

가끔 이름은 변환을 거치기도 한다. 우리말로 바꾸는 과정에서 이름의 뜻이 조금은 변색된 것들도 있다.

주어는 주체를 말한다. 모든 주체는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한다. 주체는 내면성 안에서 존재를 규정한다. 우리의 주체가 규정한 것을 객관적인 것이라고 한다. 사실 객관은 없고 상호주관성이 있을 뿐이다. '너를, 너에게, 나를, 나에게'도 모두 목적어다. '나는 너에게 사과를 준다'는 문장에도 목적어가 있다. 인간은 소유와 유목적성 안에서 살아온 것 같다.

이 모든 것을 다 배제하고 순수한 존재와 존재로 만나자고 하는 것이다. 아직 규정되지 않은 규정하지 않은 존재로 만나자고 한다. '이름 없이' 왔으면 한다. 온몸으로 내게 오는 존재를 만나고 싶다. 류시화의 '너는 이름 없이 오면 좋겠다' 이 시는 존재의 문을 새롭게 연다.

너는 이름 없이 오면 좋겠다

너는 이름 없이 
나에게 오면 좋겠다

나도 이름 없이 
너에게 가면 좋겠다

주어 없이
목적어도 없이

너의 이름 없음과 
나의 이름 없음이 만나

나는 너의 존재를 숨 쉬고
너는 나의 존재를 숨 쉬고

그래서 세상의 모든 이름이
너이고 나였으면 좋겠다

-류시화 시집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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