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권력에 균열 낸 엡스틴 파일…핵심 지지층 ‘마가’서도 반기
그린, 트럼프에 도전하고 정치적으로 성장

취임 이후 무소불위로 질주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드디어 권력 누수를 겪고 있다.
18일 미국 상하원에서 미성년자 성착취로 복역 중 자살한 제프리 엡스틴 사건 자료 공개법안이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됨으로써,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장악력은 의회를 시작으로 약화하는 모양새다. 특히, 마저리 테일러 그린 등 의회에서 마가 진영을 대표하는 의원들이 트럼프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이번 엡스틴 파일 공개를 주도해, 트럼프는 지지층인 마가 진영에서도 균열과 도전을 받고 있다.
트럼프는 이번 엡스틴 파일 공개법 통과 때까지 이를 주도한 쪽에 시종 끌려다니다가 결국 공개 찬성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는 곤궁한 처지에 몰렸다. 트럼프는 지난 7월7일 법무부가 엡스틴 파일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이후 공화당 내부 및 마가 진영에서도 반발에 직면했다. 트럼프는 당시 마가 청년 모임인 터닝포인트유에스에이 모임에 참가해 ‘엡스틴 파일에서 관심을 돌리자’고 발언했다가 청중으로부터 야유와 질타를 받았다.
트럼프는 10월 초 시작된 연방정부 폐쇄사태를 종료시키려고, 공화당 상원의원들에게 민주당의 필리버스터를 막는 조처를 취하라고 재촉했으나 무시당했다. 10월 말부터는 지지율이 40%대 초반으로 떨어졌고, 11월4일 실시된 뉴욕시장 등 일부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에 완패당했다. 이 선거에서 공화당은 지난 대선 때 트럼프가 중남미계에서 확장했던 지지율을 모두 상실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2일에는 민주당이 트럼프를 언급하는 엡스틴의 이메일을 공개했다. 트럼프는 연방 법무 사건 파일을 공개하라는 압박을 전방위적으로 받았다. 당일에 그린 의원 등 공화당 의원 4명이 공개법안을 투표에 회부하는 민주당 주도 청원에 가담해 가결시켰다. 트럼프는 14일부터 주말 내내 소셜미디어에서 5차례에 걸쳐 그린 의원을 맹비난하며 그에 대한 지지 철회를 선언했다.
그랬던 트럼프는 16일 “아무것도 감출 것이 없다”며 공화당 의원에게 찬성하라고 돌연 입장을 바꾸어야만 했다. 공화당 하원에서 이 법안에 대한 찬성 의원이 100여명에 가까울 것으로 예상되는 등 통과가 확실시됐기 때문이다. 여론과 반발에 밀린 트럼프의 이런 입장 선회는 취임 이후 처음이다. 트럼프로서는 공개 찬성으로 자신이 무관하다는 것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던 한편 상원에서 통과가 힘들 것이란 계산도 있었다.
법안은 상원에서 만장일치, 하원에서는 1표만 반대가 나와 통과했다. 의회가 트럼프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신호다. 특히, 이번 공개법안 가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그린, 로렌 보버트, 낸시 메이스 여성 의원 3인방은 의회 내 대표적인 마가 진영 의원이어서, 마가 진영이 트럼프에 도전하는 형국이 됐다.
무엇보다 그린 의원은 연방정부 폐쇄 사태의 주요 원인이던 ‘트럼프 행정부의 오바마케어 보조금 지급 거부’에 대해 반대하며 민주당과 입장을 같이했다. 그는 트럼프가 미국우선주의를 저버렸다며 트럼프에 공공연히 도전했다. 트럼프가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그의 선거구에서 다른 경쟁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나, 그린 의원을 위협하지 못하고 있다. 낸시 메이스 의원도 케빈 매카시 전 하원의장의 퇴진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인물로, 트럼프로부터 독립성을 거듭 보여줬다.
그린 의원의 지역구인 조지아 14선거구의 공화당 의장 짐 털리는 그린 의원이 “우리 지역구와 나라를 규정하는 원칙에 비타협적인 헌신”을 하고 있다며 치하하며 “완전하고 변함없는 지지”를 약속했다. 그린 의원의 선거구는 공화당 초강세 지역인데, 그는 2024년 예비선거에서 경쟁 없이 공천됐다. 2022년에는 5명의 도전자에 맞서 69.5%로 압승했다. 그린 의원은 트럼프와의 불화에도 공화당 지구당의 전폭적 지지를 업고 주가를 올리고 있다. 그는 오히려 “나는 오직 미국우선주의, 미국유일주의”라며 “이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자신이 마가에 충실하고 트럼프가 이탈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 트럼프가 내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의석을 더 확보하려고 선거구를 조정하려는 시도도 인디애나, 네브래스카, 뉴햄프셔, 캔자스주에서는 공화당이 수용하지 않아 막혀 있다.
그린 등 마가의 대표 의원들이 트럼프와 충돌하면서도 정치적으로 생존하고, 공화당이 트럼프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모습은 트럼프가 이제 더는 마가와 공화당의 절대적 지배자가 아님을 보여준다. 그동안 트럼프의 독주에 불만이었으나 숨을 죽였던 의원들이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고, 공화당에서는 권력 재편에 시동이 걸렸다고 뉴욕타임스 등은 평가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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