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절도'로 돌아본 박물관 수난史… '보안'과 '개방'의 딜레마

최동순 2025. 11. 1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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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루브르, 1911년에도 '모나리자' 도둑맞아
'10억 유로' 최대 피해는 獨드레스덴 박물관
뭉크 '절규'·반 고흐 초기작 등도 '도난 피해'
"보안 강화 필요하나 개방성 위축돼선 안돼"
지난달 27일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경찰관들이 순찰 근무를 하고 있다. 파리=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 19일 오전 9시 30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남쪽 센강 거리. '4인조'는 이곳에 사다리차를 세운 뒤, 박물관 2층 외벽으로 향했다. 창문을 깨고 내부로 들어갔지만, 공개 장소였던 만큼 행인들에겐 그저 평범한 일꾼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들은 프랑스 왕실 보물을 전시해 둔 '아폴론 갤러리'에서 나폴레옹 1세의 두 번째 부인 마리 루이즈 황후의 에메랄드 목걸이와 귀걸이, 외제니 황후의 브로치, 18세기 마리 아멜리 왕비·오르탕스 왕비의 사파이어 목걸이 등 8점을 훔쳤다. 총 8,800만 유로(약 1,488억 원) 가치를 지닌 보물들이었다. 다시 사다리차를 타고 유유히 내려와 스쿠터를 타고 현장을 벗어날 때까지, 범행에 걸린 전체 시간은 단 7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래서 가장 철저한 보안 체계를 갖춘 것으로 여겨지던 루브르 박물관은 이렇게 털렸다. 충격과 황당함은 약 한 달이 흐른 지금도 여전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물론 절도범들에게 예술품을 도난당한 박물관이 루브르만 있는 건 아니다. 과거에도 유사 사건은 종종 일어났다. 세계 유수 박물관들의 '수난사'를 정리해 봤다.

인터폴이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도난 보물들. 인터폴 제공

"왕관 흘리고, DNA 남겨… '오션스 일레븐' 아니다"

"그들은 분명 오션스 일레븐은 아니었다. 오션스 일레븐에서는 잡히지도 않고, 왕관도 떨어뜨리지 않고, DNA나 도구도 남기지 않는다."
도난 미술품 회수 전문 업체 '아트 리커버리 인터내셔널' 크리스 마리넬로 대표(영국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 중 일부)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절도범들이 도주하다가 흘린 외제니 황후의 왕관. 루브르 박물관 제공

우선 현재까지의 이 사건 수사 상황부터 살펴보자. 당초 프랑스 수사 당국은 '전문 절도 조직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관광객이 북적이는 일요일 아침, 너무나 과감하고 대범한 수법으로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범인들의 허술한 행적이 하나둘 드러나면서 평가는 180도 바뀌는 분위기다.

절도범들은 다급히 도주하느라 박물관 바깥에 하필 외제니 황후의 왕관을 떨어뜨렸다. 다이아몬드 1,354개와 에메랄드 56개로 장식된 이 왕관은 훔친 보물 중 가장 값진 물건이었다. 게다가 사다리차는 물론, 스쿠터도 불로 태워 버리지 않았다. 장갑 등 범행 도구도 그대로였다. 사다리차 등에는 그들의 DNA가 남아 있었다. 그 덕분에 수사 당국은 사건 엿새 만에 용의자 두 명을 체포했다.

지난달 19일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외벽에 절도범들이 범행 도구로 사용했던 사다리차가 현장 보존돼 있다. 파리=뉴스1

절도범들은 파리 북쪽 센생드니주(州) 교외에 거주하는 저소득층 전과자들이었다. 아폴론 갤러리에 직접 칩입했던 A(34·프랑스-알제리 이중국적)와 B(39)는 센생드니주 오베르빌리에 지역의 주민이었다. A는 쓰레기 수거, B는 불법 택시 영업으로 생계를 이어 갔다. 사다리차를 운전한 C(37)는 전과 11범으로, 2015년 B와 함께 별도의 절도 사건으로 유죄를 확정받은 적이 있었다.

로르 베퀴오 파리검찰청장은 지난 2일 프랑스앵포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은 흔한 절도 사건은 아니지만,상층 조직범죄와 연관된 전문적 범행은 아니다"라며 "피의자들은 범죄 조직의 거물이라기보다는 소규모 절도 전과자들"이라고 밝혔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그들은 영화 '오션스 일레븐'과 같은 전문 범죄 집단이 아니라, 가난한 지역의 범죄자들이었다"고 보도했다. '아마추어 같았던' 범행을 막지 못한 루브르 박물관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이유다.


루브르 박물관, 110여 년 전엔 '내부자'에 털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모나리자' 도난 사실을 알리는 프랑스 일간 르쁘띠파리지앵 1면. 프랑스 국립도서관 제공

루브르 박물관이 대형 절도 사건에 휘말린 게 처음은 아니다. 1911년 8월에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작 '모나리자'가 도난을 당했다. 당시 모든 언론에 대서특필된 건 당연했다.

범인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전시물 유리 케이스 설치 업무를 담당하던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 빈첸초 페루자였다. 내부 구조를 잘 알고 있었던 그는 1911년 8월 20일 루브르 박물관에 숨어들어 밤을 보냈고, 다른 직원들의 출근 전인 이튿날 오전 7시쯤 전시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모나리자를 흰 천으로 싸서 박물관을 유유히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체포된 페루자는 "나폴레옹 시대에 약탈당한 모나리자를 이탈리아로 되돌려 놔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프랑스는 그를 비난했으나, 고국은 영웅으로 추앙했다. 실제로 이탈리아 법원은 페루자에게 징역 1년형만을 선고했는데, 그는 형기를 다 채우지도 않고 약 7개월 만에 출소했다.


獨드레스덴, 미리 전기 끊고 철창 잘라 침입

독일 드레스덴 박물관 그린볼트에서 도난당한 보물들. 독일 작센 경찰 제공

지난달 루브르 박물관이 털리기 전까지, '세계 최대의 박물관 절도 사건'이라는 오명은 독일 드레스덴 박물관의 몫이었다. 6년 전 드레스덴 박물관은 작센 지역의 통치자였던 아우구스트 1세가 수집한 보물들을 도둑맞았다. 당시 사라진 보물들에 포함된 다이아몬드 개수만 무려 4,300개에 달했다. 독일 언론들은 "훔쳐진 보물의 가치는 10억 유로(약 1조6,916억 원) 이상으로 평가된다"고 전했다.

2019년 11월 25일 짙은 어둠으로 덮여 있는 독일 드레스덴주 그뤠네스 게뵐베 전시실에서 절도범이 손전등에 의존해 보물 진열장을 부수고 있다. 독일 작센 경찰 제공

독일 드레스덴주의 '그뤠네스 게뵐베'(영문명 '그린 볼트') 전시실이 털린 것은 2019년 11월 25일 새벽이었다. 절도범들은 전력 배분기에 불을 질러 일대의 전력 공급을 끊었고, 어둠을 틈타 박물관에 잠입했다. 당연히 박물관 경보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1층 창문에는 철창이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범인들이 '사전 답사'를 통해 미리 절단해 둔 탓이다.

이 범행은 베를린을 근거지로 하는 가족 기반 범죄 조직 '레모 클란'의 소행이었다. 범인들은 형량 협상을 통해 일부 도난품을 반환했고, 징역 4년 4개월~6년 3개월형을 선고받았다. 다만 '드레스덴 화이트'로 불리는 49캐럿 다이아몬드는 아직도 행방불명 상태다.

2019년 11월 독일 드레스덴주 그뤠네스 게뵐베 전시실에서 훔쳐진 뒤 되찾지 못한 '드레스덴 화이트'. 49캐럿 다이아몬드다. 인터볼 제공

무장 강도들, 권총 들고 뭉크 '절규' 강탈

2004년 8월 22일 노르웨이 오슬로 뭉크 미술관에서 강도 2명이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 과 '마돈나'를 훔치고 있다. 노르웨이 경찰 제공

노르웨이의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를 기념하는 '뭉크 미술관'도 털린 사례가 있다. 무장 강도에 의한 절도였다. 2004년 8월 22일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의 뭉크 미술관에 복면을 쓴 괴한 2명이 들이닥친 것이다. 일요일이어서 관람객으로 북적였던 그날 오전, 두 사람은 357매그넘 권총으로 사람들을 위협한 뒤 전시실에 걸려 있던 뭉크의 걸작 1893년 작 '절규'와 '마돈나'를 떼어내 아우디 A6 승용차에 싣고 도주했다. 두 그림의 가치는 총 8,300만 유로(약 1,404억 원)인 것으로 평가된다.

범인들은 수개월 만에 검거됐으나, 그림은 2년여의 수사를 거쳐 2006년 8월에야 회수됐다. 현지 언론들은 당시 별개의 강도 사건으로 수감된 다비드 토스카와의 사면 거래로 정보를 얻어 냈을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경찰은 구체적인 회수 과정을 밝히지 않았다.

2004년 8월 22일 도난당한 뒤 회수에 성공한 에드바르트 뭉크의 작품 '절규'(왼쪽 사진)와 '마돈나'. 로이터 연합뉴스

사실 뭉크의 '절규' 시리즈 4점 중 또 다른 한 점도 그에 앞서 도난을 당한 적이 있다. 표적은 오슬로 시내의 '국립미술관'이었다.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개막식 당일인 1994년 2월 12일 오전 6시 30분, 절도범 2명은 그곳에서 1910년작 '절규'를 훔쳤다. 미술관 침입부터 도주까지 걸린 시간은 딱 50초에 불과했다. 경찰력은 올림픽 치안에만 집중돼 있었다. 범인들은 "느슨한 보안에 감사한다"는 조롱 메시지를 남겼다.

노르웨이의 대표 미술품이 10년 사이 두 차례나 '절도 수모'를 겪자, 노르웨이에선 박물관 보안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오슬로시는 2020년 최첨단 보안 시스템을 갖춘 새 뭉크 미술관을 건립했다.


반 고흐 초기작 절도범 "원래는 '해바라기' 노려"

2002년 12월 7일 2인조 절도범이 훔친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누에넨 교회'(왼쪽 사진)와 '스헤베닝언 해변'. 반 고흐 미술관 제공

네덜란드의 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도 절도범들의 먹잇감이 됐다. 2002년 12월 7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반 고흐 미술관'의 창문으로 2인조가 사다리를 이용해 침입한 뒤, 반 고흐의 초기 작품인 '폭풍우 속 스헤베닝언 해변'과 '누에넨 교회를 떠나는 신도들'을 훔쳐 달아난 것이다. 범인 중 한 명인 옥타브 더럼은 훗날 언론 인터뷰에서 "사실은 '해바라기'를 훔치려고 했는데, 그건 힘들 것 같아서 창 근처에 있던 두 작품으로 대상을 바꿨다"고 말했다.

해당 작품들은 14년 뒤인 2016년 10월 이탈리아 마피아 두목의 은신처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코카인 밀매 사건을 수사하던 이탈리아 검찰이 카모라(나폴리에 근거지를 둔 범죄 조직) 일파의 두목 라파엘레 임페리얼레가 살았던 나폴리 외곽의 주택을 수색한 덕분이다. 검찰은 벽 구멍에 숨겨져 있던 그림들을 발견해 네덜란드에 반환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절도해 징역형을 선고받은 옥타브 더럼(왼쪽 사진). 더럼은 출소 이후 각종 매체와 인터뷰를 하며 사회관계망서비스 활동을 하고 있다. 옥타브 더럼 인스타그램 캡처

네덜란드는 '반 고흐 미술관 절도 사건'을 계기로 도난 방지에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지방의 소규모 미술관·박물관 등에선 유사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1월에도 네덜란드 드렌터주 아센에 위치한 드렌츠 미술관에서 100억 원 상당의 황금투구와 금팔찌가 사라진 바 있다.


'대중과 가까이' 유럽 박물관, 도난에 더 취약

"현대식 박물관을 지을 때는 구역 자체를 신경 쓴다. 골목이나 거리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시켜, 도둑이 침입하거나 도주하기 어려운 장벽을 형성한다. 하지만 루브르 박물관의 경우, 바깥 거리와 박물관 내부를 구분짓는 건 단지 벽 하나 뿐이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내 미술범죄팀 창립 멤버였던 전직 FBI 요원 데이브 배스(USA투데이 인터뷰 중 일부)

널리 알려진 박물관 절도 사건은 대개 유럽에서 발생한다. 이런 사실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인터폴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일어난 문화재 관련 범죄는 9,947건으로, 이 중 59%(5,861건)가 유럽에서 발생했다. 그해 유럽에서 도난당한 문화재는 희귀 동전, 그림, 조각품, 고고학 유물 등 약 5만8,000점에 달한다.

유럽의 박물관·미술관은 미국 등과 비교해 보안 취약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별도의 울타리 없이 시내 한가운데 위치해 있고, 고궁 등을 그대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애초 박물관으로 쓰도록 설계된 건물이 아닌 데다, 오래된 탓에 효율적인 보안 체계를 갖추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박물관학 전문가인 신상철 고려대 문화유산융합학부 교수는 "유럽의 박물관은 모든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개방성에 주안점을 두고 발달해 왔다" "본래 작품이 있던 곳, 혹은 작품과 역사성이 일치하는 건물에 전시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매우 값비싼 작품을 보유하면서도 시민들에게 열려 있어야 하는, 박물관의 이중적 성격 탓에 절도범들의 타깃이 되기 쉽다는 뜻이다.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이러한 '약점'을 엿볼 수 있다. 루브르 궁전을 개조한 이 건물에는 '울타리'가 따로 없다. 신 교수는 "프랑스는 대혁명 이후 왕실과 귀족의 '컬렉션'을 시민들에게 환원한다는 목적 아래 국립박물관을 만들었고, 개방성과 접근성을 지향하는 정책을 써 왔다" "이런 점들 때문에 상대적으로 보안상 취약점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고 짚었다. 6년 전 도난 피해를 겪은 독일의 그뤼네스 게뵐베 전시실도 드레스덴 중심가의 가장 오래된 건물, 드레스덴 성을 그대로 쓰고 있다.

전문가들은 문화재 보안을 강화할 필요성 자체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개방성'이라는 박물관의 존재 가치가 움츠러들어선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뉴욕 현대미술관, 대영박물관, 이탈리아 보르게세 갤러리,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 등 세계 57개 박물관·미술관의 관장은 프랑스 르몽드에 보낸 공동 기고문을 통해 '루브르 박물관 지지'를 표명하며 응원을 건넸다. "모든 예술 작품은 대중에 공개되는 순간부터 (루브르 박물관처럼 도난당할) 그 위험을 지니게 된다. 박물관은 요새도, 금고도 아니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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