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하게 표현한 꽃·넝쿨·봉황… 눈으로 즐기는 화려한 향연

김혜원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 2025. 11. 15.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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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혜원의 박물관 산책] (6)
표주박 모양 병
국립중앙박물관 금속공예실에 전시된 표주박 모양 병. 고려시대, 12세기, 높이 11cm. /e뮤지엄

흔히 ‘장식’이라고 하면 장식의 대상이 된 물건의 본질이나 기능에 영향을 주지 않는 무언가가 추가로 더해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식의 가치를 폄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장식은 미술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어느 곳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많은 이가 장식을 사랑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은으로 만들고 금을 입힌 이 화려한 병은 ‘장식’이 펼치는 시각적 향연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고려 시대에는 이러한 표주박 모양 용기가 유행하여 금속기·도자기로 많이 만들어졌다. 같은 표주박 모양 병이라도 조금씩 다른 모습을 띠는데, 이 병의 경우 가운데 잘록하게 들어간 부분을 마디처럼 곧게 표현하고 아랫부분을 공처럼 둥글게 만들어 기하학적 형태를 강조했다. 잘록한 부분 위아래로 같은 꽃잎 모티프를 거울에 반사된 이미지처럼 배치했다. 아랫부분에는 날개를 활짝 펼친 채 하강하는 봉황과 풍성한 꽃잎으로 이루어진 꽃을 넝쿨 줄기와 함께 표현했다. 병의 윗부분에도 유사한 꽃과 넝쿨 줄기를 크기를 조정하여 배치했다.

이 병에서는 장식 문양이 입체적으로 도드라진 점이 큰 특징이다. 돋을새김 기법(또는 타출 기법)으로 표현한 것인데, 이는 금이나 은처럼 연성이 좋은 금속판 안팎을 두드려 문양을 부조처럼 돌출시키는 방식이다. 문양과 문양 사이 배경이 되는 부분은 ‘어자문(魚子文)’이라고 부르는 작은 동그라미 무늬로 촘촘하게 채워 넣었다. 어자문이 만들어낸 얕은 요철은 표면을 어두워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어 이를 배경으로 할 때 주된 문양이 한층 돋보이게 된다. 도드라진 꽃, 봉황, 잎사귀 표면에는 섬세한 선각을 더해 세부를 표현했다. 고려 시대는 이러한 돋을새김 기법이 정점에 오른 시기로, 이 병 이외에 경갑(經匣·경전을 넣어두는 작은 상자), 거울걸이 등 다양한 공예품에서 그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표주박 모양 병의 장식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지만, 이러한 공예품을 항상 이렇게 분석하며 봐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술사학자 E H 곰브리치는 장식 미술의 가치를 상기시켜 주는 그의 저서 ‘질서 감각(The Sense of Order)’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알람브라 궁전의 모든 장식 모티프를 책을 읽듯이 하나하나 읽는다는 것은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장식이 추구하는 바에 반하는 것이다. 장식이 추구하는 바는 모든 요리를 맛볼 것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눈을 위한 향연을 제공하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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