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그곳에서] 섬을 캔버스 삼은 ‘지붕 없는 미술관’ | 전원생활
이 기사는 전원의 꿈 일구는 생활정보지 월간 ‘전원생활’ 11월호 기사입니다.

연홍도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된 건, 이 섬이 우리나라의 ‘나오시마’라 불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섬 중에서 유일하게 미술관이 있는 섬이다(제주도를 제외한 다리가 놓이지 않은 섬 기준). 주민들이 쓰다 버린 생활 폐품들을 재료 삼은 정크아트, 마을의 생활상이 담긴 벽화들… 해안과 마을 골목길을 따라 그림 60여 점과 조형물이 줄지어 전시돼 있다.
2015년 전라남도로부터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된 후 2017년부터 ‘지붕 없는 미술관’ 프로젝트가 진행되며 섬 곳곳에 예술 작품이 설치됐다. 고독한 섬에서 만난 예술 작품은 마음에 어떤 흔적을 남길까. 이런 궁금증을 해결하러 일본까지 갈 필요가 없다니. 매서운 바람이 내려오기 전에 연홍도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본다.
부둣가에 덩그러니 세워진 작은 간판만이 이곳이 신양선착장이라는 걸 알려줄 뿐이다. 이 선착장의 주요 고객인 연홍도 주민은 60여 명에 불과하다. 인구가 적다 보니 운영비 등을 충당하기 어려워, 따로 매표소나 대합실을 마련해놓고 있진 않단다. 현실적인 이유로 소박한 선착장이 된 셈이다. 하지만 그게 더 정겹다.
9시 45분. 연홍도로 가는 배 ‘연홍호’ 출발까지 5분이 남았다. 어디선가 나타난 차들이 부둣가에 들어서더니 한 명씩 내린다. 연홍도 주민들이다. 인구수가 적은 연홍도엔 슈퍼나 편의점 같은 시설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 음식점도 ‘연홍마을식당’이 유일하다.

마을 주민들은 필요한 생활용품이나 먹거리가 있을 땐 배를 타고 육지로 나가 도양읍 봉암리의 전통시장에서 장을 봐 온다. 열 개 묶음의 김 세트를 한 손에 들고 오는 할머니, 늙은 호박을 겉옷으로 꼭꼭 싸매 애지중지하며 안고 오는 할아버지. 다들 마치 마을버스를 기다리듯 작은 간판 앞에 옹기종기 모여 배를 기다린다. 그 줄에 합류한다.
출발 시간이 되자 연홍호가 선착장에 들어선다. 과거에 주민들은 작은 나룻배에 의지해 노를 저어가며 거금도와 연홍도를 오갔단다. 그러다 20년 전 고흥군의 지원을 받아 처음으로 마련한 동력선이 이 배다. 12인승짜리 작고 오래된 도선이지만, 신양선착장에서 연홍도까지 500m만 가면 되기 때문에 운항에 큰 무리가 없다고. 연홍호는 현재 선장 진성용 씨(65)가 운항한다. 선원 역할을 하는 진씨의 부인 신미경 씨(61)가 표를 끊어준다. 매표소가 아닌 배에서 표를 끊는 것도 보기 드문 모습이다.
연홍도에서 도슨트(안내인) 역할을 한다는 방울이(10세 추정)다. 지나가던 연홍도 이장 박동훈 씨(78)가 방울이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그 누구도 교육한 적 없는데 몇 년 전부터 방울이는 섬의 안내견처럼 행동한단다. 반갑다며 달려드는 보통의 개와 달리 방울이는 여행객을 어딘가로 계속 이끈다.

방울이와 함께 마을 골목길에 들어서니 낮은 담벼락이 죽 이어진다. 나무 상자, 고무신 등 버려진 폐품들과 흔하게 볼 수 있는 자연물이 어우러진 작품이 담벼락에 걸려 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많이 낡은 느낌이고 작가의 이름이나 설명도 따로 붙어 있지는 않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해안 길로 나가본다. 그제야 이곳이 ‘지붕 없는 미술관’의 메인 전시실이구나 싶다.
섬 건너편에 보이는 완도 금당도의 병풍바위와 잔잔한 바다를 배경 삼아 설치미술이 줄지어 설치돼 있다. 그 끝에는 ‘은빛 물고기’라는 작품이 있다. 이는 프랑스 설치미술가 ‘실뱅 페리에’가 연홍도에 한 달간 머물면서 만든 것이다. 썰물과 밀물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이는 작품으로 시간대마다 달라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다.
연홍미술관은 이 길의 끝에 자리한다. 1998년 폐교된 금산초등학교 연홍분교 터를 섬 출신의 김정만 화백이 임차하여 전시실과 숙박 시설 등을 갖추고 사용하다 고흥 출신의 서양화과 선호남 관장이 귀어 후 인수해 미술관으로 꾸몄다. 전체 부지는 2644㎡(800평)이며 그중 전시 공간은 165㎡(50평)이다. 야외 공간에는 갤러리 카페, 숙소, 정원이 마련돼 있다.

전시실에서는 기획전을 1년에 10차례가량 진행하는데 주로 지역 작가들이 참여한다. 전시 공간에 들어가 작품을 감상한다. 현재는 고흥에서 활동하고 있는, 천경자를 사랑하는 화가 22명이 그린 그림 40여 점을 전시 중이다. 유명 작가의 그림은 아니지만, 소박한 섬과 닮은 수수한 작품에 눈길이 머문다.
기획 전시도 좋지만 선 관장이 아내와 20년간 공들여 꾸민 야외 정원을 둘러보기도 권한다. 연홍미술관은 폐교된 초등학교를 활용한 공간인 만큼 곳곳에 이순신 장군 동상처럼 학교임을 알려주는 상징물이 있는데, 이들이 화분, 설치 작품과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게 이곳만의 매력이다. 선 관장이 기자에게 말했다.
“선착장에서 이어지는 마을 담벼락에 ‘연홍사진박물관’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저는 오시는 분들께 그 작품은 꼭 보고 가라고 말씀드려요.”
그 작품은 미처 보지 못했다. 서둘러 선착장으로 발걸음을 돌려본다.
“젊었을 때 서울에 있는 구(舊) 한일은행의 신입 직원으로 일했어. 어느 날 지점장이 날 부르더라고. 그러면서 대뜸 김일 선생님을 잘 아냐고 하시는 거야. 김 선생님이 연홍도 건너편 거금도가 고향이셨거든. 아버지가 김 선생님이랑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했어. 그래서 나한테 김 선생님이 은행에 왔으니 만나보라 하더라고.”

당시 김일은 정부로부터 꽤 큰 금액의 포상금을 받았는데, 지점장은 김일이 그 돈을 한일은행에 예치하길 바랐다고. 이에 백씨는 전략적으로 예치를 추진했다. 오전에는 은행원으로 일하고 퇴근 후 김일로부터 레슬링을 배우며 그와 공통분모를 만들어갔다. 결국 그 돈을 한일은행이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근데 한번 레슬링의 매력에 빠지니 관두기가 어려웠단다. 그 이후로 40년간 레슬링을 하며 111전 50승 56패라는 성적을 남겼다.
“노지심이랑 두 번이나 붙었는데 한 번도 이기지 못한 게 한이야. 그래도 내 이야기가 이곳저곳에 소문 나 영화의 소재로까지 쓰인 거지.”
몇 걸음 더 가니 선 관장이 언급한 ‘연홍사진박물관’ 작품이 나온다. 주민들이 결혼식·여행·졸업식 등을 기념해 찍은 사진으로 제작한 타일 200여 개가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타일을 보고 있으니, 할머니들이 “이거 나랑게~”라며 이제는 50년도 더 된 과거의 추억 한 조각을 낯선 기자에게 선뜻 공유해준다. 그러고 보니 이들의 모습 자체가 하나하나 다 예술 작품처럼 느껴진다. 연홍도가 우리나라의 ‘예술의 섬’이라 불릴 만하다.
글 윤혜준 기자 | 사진 임승수(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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