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말 믿고 참여했는데”…가루쌀 가공시설 ‘애물단지’ 전락
수요 없어 가동 멈추다시피 해
내년 사업 폐지…지원 중단 예정
가루쌀 품종 재배농가도 불안 커
기업 연계 수요기반 확대 시급
정부·지자체 유통 지원 등 절실

정부가 추진하는 ‘쌀가루 지역자립형 소비 모델’의 가루쌀(분질미) 가공사업이 당초 기대와 달리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사업에 참여한 농업법인·제분업체들은 가루쌀을 대량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식품업체 등과의 연계가 원활하지 않아 수요 부족과 시설 유지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쌀가루 지역자립형 소비 모델’ 사업은 건식 쌀가루 제분시설을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빵·과자·떡·국수·주류·부침가루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 지역 내에서 소비까지 연결하는 선순환 구조 조성을 목표로 한다. 사업은 2023년 8개 지역을 시작으로 현재 총 20개 지역에서 추진 중이다. 한 지역당 9억원의 사업비가 지원되며 사업 대상은 가공시설 운영능력이 있는 농업법인이나 지역농협이다. 지원 범위는 제분시설뿐 아니라 건조·저장 시스템, 가공·유통 설비, 제품 개발, 브랜드화, 판매, 교육과 컨설팅 지원 등이다.
충북 충주 수안보농협(조합장 권오춘)은 2023년 전국 지역농협 가운데 유일하게 이 사업에 참여해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해썹·HACCP)을 충족하는 가루쌀 전용 가공시설을 건립했다. 연간 800t 생산이 가능한 최신 설비를 갖추고, 쌀가루 기반의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 지역 내 소비를 촉진하는 모범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사업을 시작한 지 2년이 다 돼가는 지금, 현실은 기대와 거리가 멀다. 실제 연간 생산량은 10t 남짓에 가동률은 1.3%에 불과하다. 김선자 가공공장 공장장은 “두달에 한번꼴로 2t 정도 제분하고 있다”며 “항온·항습 장치를 포함한 시설유지비 같은 고정비 부담은 큰데 수요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했다.
정부는 가루쌀 생산단지 조성과 함께 가공시설을 중심으로 제과·제빵 기업과의 연계를 통해 수요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권오춘 조합장은 “정부가 식품업체 등 기업과의 연계를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실질적으로 성사된 것은 거의 없다”면서 “기업들 입장에서도 정부 정책이 언제 바뀔지 모르니 제품 개발과 시설 투자에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문제는 수안보농협만의 일이 아니다. 사업에 참여한 충남의 한 가공업체 관계자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유통 지원을 기대했지만 아직까지 눈에 띄는 결과물은 없다”며 “결국 업체 스스로 판로를 개척해야 하는 구조”라고 토로했다.
충주시농업기술센터도 지역 내 디저트 전문점과 카페 등 8곳에 쌀가루 기반 제과·제빵 기술을 무상 이전하고 소비처 확대에 나섰지만, 지역의 소규모 업체의 수요만으로 생산 설비를 원활하게 가동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이같은 상황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문금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4년산 가루쌀 매입량은 2만704t에 달했지만, 올해 8월말 기준 실제 판매량은 2626t에 불과했다. 이는 매입량의 12.6% 수준이다. 정부는 현재 재고 1만8000t 중 1만5000t을 주정용으로 전환·판매할 계획이다.
이뿐만 아니라 ‘쌀가루 지역자립형 소비 모델’ 사업은 내년부터 폐지돼 관련 지원책도 중단될 예정이다. 이로 인해 현재 사업에 참여한 업체들은 가공시설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운영비용 부담만 떠안을 위기에 처했다.
권 조합장은 “정부가 나서서 쌀가루가 수입 밀가루보다 건강에 이롭고 활용 범위도 넓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전국적인 소비 기반 확대에도 힘써야 한다”며 “식품기업들이 쌀가루를 원료로 한 제품을 안정적으로 생산·유통하도록 제도적 기반과 인센티브 제공 같은 실질적 지원책도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루쌀 수요가 저조함에 따라 해당 품종을 재배하는 농가 불안도 커지고 있다. 김준경 충주수안보농협 쌀연합회장은 “현재 25농가가 ‘바로미2’ 품종을 재배하고 있는데 정부 수매가 줄어들 수 있다는 이야기에 농가들이 동요하고 있다”며 “‘바로미2’는 농가 자체적으로는 유통할 수 없어 정부가 외면하면 그동안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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