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드컵 전국 열기…e스포츠 도시 광주는 ‘무관심’

정성현 기자 2025. 11. 11. 14:4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T1 우승에 李대통령·총리 축전
광주 출신 선수 2명 결승 진출
市 ‘핵심콘텐츠 육성’ 지지부진
대전시 내년 MSI 유치와 비교
“미래 산업 전략으로 삼아야”
월드 챔피언 T1이 사상 처음으로 LoL 월드 챔피언십(월즈·롤드컵)에서 쓰리핏(3-peat·3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썼다. 왼쪽부터 김정균 감독, '도란' 최현준, '오너' 문현준, '페이커' 이상혁, '구마유시' 이민형, '케리아' 류민석. 라이엇게임즈 제공

전 세계 4억명이 지켜본 e스포츠 최대 축제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결승전이 지난 9일 중국 청두에서 열렸다. 한국 대표팀 T1이 KT 롤스터를 꺾고 사상 첫 3연패를 달성하자 대통령과 국무총리까지 축전을 보내며 국가적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e스포츠 도시를 자처한 광주는 이 세계적 열기 속에서도 조용했다. 강기정 시장이 내세운 '꿀잼도시 광주 e스포츠 비전'은 아직 헛구호에 그친다는 지적이다.

광주 출신 선수, 세계 무대에 섰지만
이번 결승은 '통신사 대전'으로 불릴 만큼 팬들의 기대가 컸다. 청두 동안호 스포츠파크에는 1만5000명의 관중이 몰렸고, 전 세계 팬들이 생중계로 경기를 지켜봤다. T1의 '페이커' 이상혁은 통산 여섯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구마유시' 이민형은 결승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이 무대에는 광주 출신 선수 두 명도 함께 섰다. T1의 '오너' 문현준(광주동신고)과 KT의 '덕담' 서대길(광주동신중)은 같은 동강학원 계열에서 성장했다. 문현준은 세계 정상급 정글러로, 서대길은 KT의 첫 결승 진출을 이끈 주역으로 주목받았다.

한국팀의 우승 소식에 대통령과 국무총리까지 축하 메시지를 보낼 만큼 K-e스포츠의 위상이 확인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SNS를 통해 "T1의 우승은 한국 e스포츠의 위상을 세계에 다시 한 번 알린 쾌거"라며 "청년 세대의 도전이 세계 산업을 이끌고 있다"고 밝혔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한국 e스포츠의 저력을 보여준 감동의 순간"이라고 밝혔다.

광주·전남에서도 응원 열기는 뜨거웠다. CGV 충장점과 첨단점에서는 시민들이 단체로 결승전을 관람하며 함성을 터뜨렸다. 그러나 전국적 열기와 달리 'e스포츠 도시'를 자처한 광주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지난 10일 문인 북구청장이 "북구 출신 선수들이 세계대회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이끌었다"며 "직접 만나 격려하고 싶다"고 밝힌 것이 유일한 공식 반응이었다. 광주시와 구청장, 지역 국회의원·광역의원 등 누구도 이들의 성취를 언급하지 않았다.
KT롤스터 '덕담' 서대길. 라이엇게임즈 제공

약속의 도시, 현실은 제자리
강기정 시장은 지난 2023년 "e스포츠를 광주 꿀잼도시의 핵심 콘텐츠로 육성하겠다"고 천명했다. 조선대 해오름관 내에는 전국 최대 규모의 e스포츠 경기장이 들어섰고, 광주공고와 광주자연과학고에는 전국 최초 e스포츠 운동부가 창단됐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지난 5월 대선 후보 시절 광주를 찾아 "게임은 중독이 아니라 산업이며, 청년의 꿈과 일자리로 키워야 한다"고 e스포츠 저변 확대를 약속했다.

하지만 공약의 출발점이었던 광주는 여전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다. 대형 국제대회는 물론 전국 규모 행사도 사실상 중단됐다. 2년 전 한국에서 열린 롤드컵에서도 교통·숙박 인프라 등 한계로 예선전 조차 유치하지 못했다.

반면 서울과 부산은 민관 협력으로 응원전과 뷰잉파티를 열었고, 대전은 내년 'MSI(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 개최지로 선정돼 약 8만명의 방문객과 1000억원의 경제 효과가 기대된다.

전문가들은 광주가 전국 최고 수준의 시설을 갖추고도 대회를 유치하지 못한 이유로 '행정 실행력과 전략 부재'를 지적한다.

정연철 호남대 e스포츠산업학과장은 "광주 출신 선수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지만 이를 청년 문화나 관광 산업으로 발전시키지 못하는 건 큰 손실"이라며 "이제는 e스포츠를 단순한 문화나 시설이 아닌 도시의 미래 산업 전략으로 삼아야 할 때"라고 제언했다.
광주공업고등학교 e스포츠부 학생들이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정성현 기자

e스포츠 꿈나무 '미래도 불투명'
광주공고와 광주자연과학고 e스포츠부 학생들은 방과 후 훈련을 이어가며 광주e스포츠교육원을 통해 전술·데이터 교육을 받고 있다. 교육과 e스포츠를 결합한 선도적 시도로 제2의 문현준·서대길 선수를 키워내고 있지만, 제도는 아직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e스포츠는 대한체육회 정식 종목으로 인정받지 못해 지도자 배정이나 체육특기자 제도에서 제외되고, 학생들은 전문선수로 등록되지 않아 진로 설계에 제약이 많다. '오너' 문현준과 한화e스포츠의 '딜라이트' 유환중(목포중앙고)도 고교 시절 프로 입단을 위해 자퇴를 선택했다. 전국 최초로 e스포츠 운동부를 창단한 광주에서조차 학업과 선수 활동을 병행할 제도적 장치는 없는 상태다.

오명훈 광주공고 e스포츠부 교사는 "학생들은 전문선수로 인정받지 못해 진로 설계에 제약이 많다"며 "국가와 교육청이 제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시교육청 체육예술인성교육과 관계자는 "이제 e스포츠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체육의 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며 "교육청도 미래 인재 양성 차원에서 지원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세계 e스포츠 시장 규모는 30억 달러(약 4조3000억원)에 달한다. 한국은 그 중심에 있고, 광주 역시 인프라와 인재를 갖춘 도시다. 그러나 지역 산업화와 정책 연계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김용태 전 노무현재단 광주지역위 시민학교장은 "롤드컵 우승은 단순한 스포츠 승리가 아니라 대한민국 e스포츠의 저력을 세계에 각인시킨 순간"이라며 "광주 출신 선수들의 활약은 지역 청소년들에게 큰 자부심이 됐다. e스포츠는 교실 밖 또 하나의 배움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8년 광주여대 유니버시아드 체육관서 진행된 롤드컵 4강전 전경. 라이엇게임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