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하락 미리 알리는 채권시장…美 셧다운發 조정에서 얻은 교훈 [홍길용의 화식열전]
달러 강세로 원/달러환율 급등
外人 주식·채권·원화 동반매도
美정부 정상화 조짐, 반등 가능
‘왜 채권쟁이들이 주식으로 돈을 잘 벌까?’라는 책이 있었다. 서준식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가 채권매니저로 활동할 때 쓴 책이다. 채권 투자에서 쓰는 원리를 주식에 적용하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주식을 마치 10년 만기 채권처럼 생각하고 가치투자를 해볼만하다는 내용이다.
채권 투자자들은 금리나 경기 사이클에 민감하다. 금리가 오르거나 내릴 때 어떤 업종이나 기업이 유리해지는지를 파악하는 데 유능하다. 기업 실적은 경기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우리나라처럼 무역 비중이 높은 나라에서는 채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톱 다운’(Top-down) 접근이 주식투자에도 도움이 된다.
돈의 흐름과 투자심리를 파악하는 데에도 채권이 중요하다. 주식과 달리 채권은 전문가들의 시장이다. 변동성은 낮지만 각종 재료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무엇보다 채권 가치는 금리를 통해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주식 투자를 하지 않더라도 금리로부터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10일 증시가 크게 반등했다. 미국 연방정부의 지출이 중단(Shutdown) 사태로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이어진 글로벌 증시의 조정 국면이 끝나가는 듯 하다. 채권시장은 이번 조정에 앞서 주식시장에 위험 신호를 보냈다. 대부분의 개인투자자들은 코스피 4000 돌파에만 열광하며 그 신호를 놓쳤다.

10월 1일부터 미국 연방정부의 지출은 중단됐지만 국채 발행과 세금 징수는 계속됐다. 지출 없이 수입만 늘면서 재무부 일반계정(TGA, Treasury General Account) 잔액이 급증했다. TGA는 정부의 주거래 통장으로, 이 통장에 돈이 쌓이면 시중의 돈이 정부로 흡수된다는 의미다. 10월 30일까지 TGA 잔액은 1조 달러까지 불어났다. 20일 새 7000억 달러 이상 늘어난 것이다. 시장에 유동성 부족 우려가 커졌다.
설상가상으로 메타(Meta)는 버는 돈으로 모자라 돈을 빌려서 인공지능(AI)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신용도 높은 초대형 빅테크가 시장의 유동성을 가져가면 일반 기업들의 돈 빌리는 값(이자율)은 더 오르게 된다. 증시에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유동성이 줄고 금리가 높아지면 주가는 오르기 어렵다. 셧다운으로 정부 통계 발표도 지연되면서 투자 정보 ‘깜깜이’ 상황도 계속됐다. 많이 오른 자산을 가진 입장에서는 이를 처분해 차익을 실현할 욕구가 커질 만하다. 기관투자자들은 연말을 앞두고 수익률도 관리해야 한다.
유럽에서는 재정난이 계속되고 있다. 선진국 가운데 나라 빚이 가장 많은 일본은 재정을 더 풀어 경기를 부양하기로 했다. 유로와 엔이 약세이면 달러는 강세다. 미국 자금시장의 위축 우려까지 겹치면서 달러 강세가 가파르게 진행됐다. 원화 약세다. 특히 한국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위해 상당기간 많은 달러가 필요하다. 원화가치 하락을 우려한 기업들은 이미 수출로 번 달러를 원화로 바꾸는 데 주저하고 있다.
미국 셧다운 이후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채권금리도 치솟았다. 채권 가격은 금리와 반대다. 10월 15일 2.856%까지 하락했던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10월 30일 3%를 돌파했다. 11월 6일에는 3.2%도 돌파했다. 금리와 환율의 동시 상승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는 치명적 환경이다. 외국인들이 10월 하순부터 주식, 채권선물, 원화의 3중 매물 폭탄을 쏟아냈다. 금리시장과 외환시장이 동시에 폭락했다. 주식 시장에서는 개인이 외국인과 기관의 매물을 받아내며 10월 27일 코스피 4000 돌파를 이뤄냈다. 채권시장을 유심히 봤다면 조정장이 다가오는 것을 짐작할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10일 반등 역시 마찬가지다. 주식과 함께 채권 가격도 상승(금리 하락)했다.

미국 의회에서 여야가 협상을 재개하면서 연방정부의 셧다운이 곧 풀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연방준비제도(Fed)의 양적긴축(Quantitative Tightening)도 이달이면 끝난다. 이번 조정의 진앙인 유동성 우려는 잦아질 가능성이 크다. 반등이 올까? 현재 증시의 건강 상태를 살필 필요가 있다. 4가지를 보자.
먼저 실적(earning)이다. 최근 모건스탠리는 올 들어 9월까지 미국 상장사 전체의 벤치마크인 러셀(Russell)3000의 전년 동기 대비 이익증가율이 11%로 상반기의 6%보다 훨씬 높아진 점을 주목했다. 11%는 2021년 3분기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다음은 유동성(liquidity)이다. 곧 셧다운이 해제되고 QT도 중단된다. 하지만 낙관은 어렵다. 다만 최근 미국의 물가는 꽤 높은 수준인데, 고용은 약화되고 있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린다 하더라도 얼마나 깊이, 빨리 내릴 지 가늠이 쉽지 않다. 기준금리 인하를 강하게 주장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가 내년 새롭게 연준 의장될 듯 하다. 내년 하반기부터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내릴 가능성이 크다. 빅테크가 거액의 AI 투자 자금을 시장에서 계속 조달할 지도 두고 봐야 한다.
다음은 차입(leverage)이다. 미국은 정부 부채가 많지만 기업과 가계 부채는 선진국 중에 가장 적다. 사적 대출(Private lending)과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 우려가 있지만 아직 금융시스템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 미국 증시가 빚 부담 때문에 흔들릴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유럽과 일본은 정부 부채 문제가 미국 보다 심각하다. 빚이 문제가 된다면 미국 보다는 유럽이나 일본의 가능성이 더 높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업 부채도 심각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기업 10곳 중 4곳(42.8%)은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금리가 오르면 이자 부담이 급증한다. 집값이 급락하면 위험해질 수 있지만, 현재 주택 시장은 공급부족이다. 내년에도 집값이 오를 것이란 전망이 더 많다. 한국도 당장 빚 때문에 증시가 흔들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봐야 한다.
끝으로 혈압에 해당하는 광기(Lunacy)다. 주가수익비율(PER)이나 주가매출액비율(PSR) 등 기업가치 표시 방식은 다양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가 적정한 지에 대한 기준이 명확치 않다. 보통 경쟁사나 업종 평균과 비교하지만 비슷한 경쟁사가 없거나 새로운 사업 형태라면 비교가 어려울 수 있다.
광기는 밸류에이션 자체보다는 수급의 형태로 읽는 게 낫다. 올 9월까지 미국 증시의 옵션거래량은 지난해 보다 22% 급증하며 6년 연속 신기록 행진 중이다. 개인들이 주도하고 있는데 상승에 베팅하는 콜(call) 옵션과 하락을 예상하는 풋(put) 옵션의 격차가 4년 만에 최대다. 한국의 신용잔고는 지난 6일 25조8782억원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연초 대비 60%나 증가한 수치다. 높은 수익을 노리는 레버리지ETF 순자산도 올 들어 1조원 늘었는데 10월 증가분만 5000억원에 육박한다.
한·미 모두 투자심리가 상당히 뜨거운 것은 분명해 보인다. ETF 같은 인덱스 자금이 크게 늘었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한 알고리즘 매매도 활발해졌다. 투자 열기가 높고 대규모 주문이 단기간에 이뤄지면서 초대형주도 주가가 하루에 5~10% 씩 움직이는 현상이 낯설지 않게 됐다.
종합하면 실적과 유동성, 차입 모두 아직은 거품을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문제는 광기다. 투자심리가 상당히 뜨거운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유동성의 온도가 높아 시장이 돌발 변수를 만날 경우 단기간에 큰 규모의 거래가 쏟아지며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이 크다.
밸류에이션이 크게 높아진 종목은 일부 차익실현을 할 만하다. 다만 장기적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종목에 대한 투자는 유지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기업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새로운 시장이 얼마나 커지고, 그에 따라관련 기업의 실적이 얼마나 개선될 지를 꼼꼼히 따질 때다.
미국 보다는 코스피가 가격 부담은 적어 보인다. 반도체는 앞으로 계속 많이 필요한 물품이다. 물리적 AI 생태계가 구축되는 과정에서 한국 제조업이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도 높다.
수급에 영향을 줄 정부 재정정책과 중앙은행 통화 정책도 살펴야 한다. 한국도 미국도 재정은 늘리고 금리는 낮출 것이란 예상이 일반적이다. 재정이 어떤 산업에 투입될 지, 완화적 통화정책이 얼마나 빨리 그리고 깊이 펼쳐질 지 살펴야 한다.
한국과 미국 모두 이미 지수가 많이 오른만큼 연말로 갈수록 난이도가 높은 시장이 될 듯하다.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울 때에는 채권시장이 보내는 신호를 주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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