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에 이름 붙이는 게 과학이냐" 제인 구달이 바꾼 세상 [인류세의 독서법]
편집자주
인류의 활동이 지구환경을 좌지우지하는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로 들어섰다는 주장이 나온 지 오래입니다. 이제라도 자연과 공존할 방법을 찾으려면 기후, 환경, 동물에 대해 알아야겠죠. 남종영 환경논픽션 작가가 4주마다 연재하는 ‘인류세의 독서법’이 길잡이가 돼 드립니다.

지난달 세계는 '침팬지의 어머니'를 잃었다. 이념과 진영을 넘어 세계적인 영장류학자 제인 구달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구촌 전역에서 추모 물결이 일었다.
사이 몽고메리의 '유인원과의 산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침팬지의 제인 구달, 고릴라의 다이앤 포시, 오랑우탄의 비루테 갈디카스 등 세 명의 여성 유인원 연구자에 관해 쓴 책이다. 1960년대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가 발탁한 이들은 전문적인 교육조차 받지 않았지만, 동물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구달은 탄자니아 곰베국립공원 침팬지 무리에 들어가 일종의 '참여 관찰'을 수행했다.
침팬지의 도구 사용뿐만 아니라 동족 살해, 무리 간 전쟁을 밝혀냈지만, 연구방법론을 개척한 구달은 조롱과 냉소를 받아야 했다. 동물에 이름을 붙이고 감정 이입하는 것은 과학이 될 수 없다는 게 당시 학자들의 입장이었다. 침팬지 가모장 '플로'를 훌륭한 엄마라고 평가한 대목에서는 페미니스트에게 비판받았다. 심지어, 한 삽화가는 동료의 털을 골라주는 침팬지를 그린 뒤 이렇게 비아냥거렸다. "흠, 또 금발이군, 제인 구달이라는 그 여자랑 또 연구했나보지?"
구달은 되레 "내가 드디어 유명해졌구나!"라며 즐거워했다. 그는 당장의 정의 실현에 개의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야 할 먼 길이었다. 굳건한 자기 확신이 없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으리라.

세계를 바꾸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 지배 체제의 모순과 그의 손발이 된 사람들과 맞서 싸우는 길이다. 포시가 그랬다. 그를 움직인 것은 불의에 대한 분노이자 들끓는 에너지였다. 고릴라 밀렵에 맞서 싸우면서 그는 지역 주민들과 끊임없이 불화했고, 1985년 르완다의 연구 캠프에서 살해된 채 발견됐다. 둘째는 모두에게 인정받는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구달이 그러했다. 몇 년 전, 미국 디즈니월드의 동물원 '애니멀킹덤'에 갔을 때, 구달과 함께 프로젝트를 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이 이야기를 전하니 몇몇 동물권 운동가들은 적잖이 불편해했다. '동물을 가두는 동물원과 함께 일한다니 믿을 수 없어!'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구달의 강력한 힘의 원천이었다. 그의 장점은 운동의 형식을 '체제 내'에 두면서도, 메시지는 '체제 밖'을 향한 데 있었다. 애초 그의 명성을 빌리고자 했던 동물 운동에 뜨뜻미지근했던 구달은 1986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종교를 갖게 된 것처럼" 운동에 뛰어들었다. 1990년대에는 대형유인원 프로젝트에 참여해 대형유인원에 생명권, 자유권, 고문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구달은 자신의 명성이 가진 영향력을 잘 알고 있었으며, 영리하게도 그것으로 줄 수 있는 최대치의 영향력을 사회에 끼치고 떠났다. 자신이 쌓은 과학적 권위와 대중적 명성을 사회 개혁의 동력으로 삼은 과학자는 그 이전에 없었다. 그 뒤에 제2의, 제3의 구달이 나타났을 뿐.
이제 세 명의 연구자 중 갈디카스만 남았다. 몽고메리는 말한다. "다이앤 포시는 자신의 고릴라를 보호하려고 마체테 칼을 들었다. 제인 구달은 침팬지를 보호하려고 마이크를 잡았다. 반면, 갈디카스는 의자를 당겨 앉아 (주민과) 차를 마시는 방법을 택했다."
갈디카스는 팜유 농장으로 파헤쳐진 보르네오 숲에서 길 잃은 오랑우탄을 구조하고 국립자카르타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누군가 포시와 구달의 과학과 환경주의가 '부자 나라의 무대에서만 이뤄졌다'고 비판한다면, 갈디카스는 '나는 안 그랬다'고 떳떳하게 대답할 것이다. 그는 서구 중심의 환경주의에 대한 다른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남종영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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