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516> 금강산 등을 유람하며 가사 ‘관동별곡’을 지은 정철

조해훈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 원장 2025. 11. 4.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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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문장은 정철(鄭澈)의 가사인 '관동별곡(關東別曲)' 중 금강산에 들어가 지은 내용으로, 한국문화정보원의 현대어 풀이에서 인용하였다.

정철이 45세 되는 해인 1580년 정월에 강원도 관찰사 직함을 받고 원주에 부임하여, 3월에 내금강·외금강·해금강과 관동팔경을 두루 유람하는 가운데 뛰어난 경치와 그에 따른 감흥을 표현한 작품이다.

엊그제 몇 분 인문학자들과 정철과 그의 가사 문학 이야기를 나눈 까닭에 그의 대표적 작품 중 하나인 '관동별곡'을 잠시 언급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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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의 참모습이 여기서야 다 보인다

“ … 백천동을 지나서 만폭동 계곡으로 들어가니, 은 같은 무지개 옥같이 희고, 고운 용의 꼬리 같은 폭포가 섞어 돌며 내뿜는 소리가 십 리 밖까지 퍼졌으니, 멀리서 들을 때에는 우렛소리 같더니, 가까이서 보니 눈이 날리는 것 같구나! 금강대 맨 꼭대기에 학이 새끼를 치니 … 소향로봉과 대향로봉을 눈 아래 굽어보고, 정양사 진헐대에 다시 올라앉으니, 여산같이 아름다운 금강산의 참모습이 여기서야 다 보인다. 아아, 조물주의 솜씨가 야단스럽고도 야단스럽구나. 저 수많은 봉우리는 나는 듯하면서도 뛰는 듯도 하고, 우뚝 섰으면서도 솟은 듯하니, 참으로 장관이로다. … ”

위 문장은 정철(鄭澈)의 가사인 ‘관동별곡(關東別曲)’ 중 금강산에 들어가 지은 내용으로, 한국문화정보원의 현대어 풀이에서 인용하였다.

정철이 45세 되는 해인 1580년 정월에 강원도 관찰사 직함을 받고 원주에 부임하여, 3월에 내금강·외금강·해금강과 관동팔경을 두루 유람하는 가운데 뛰어난 경치와 그에 따른 감흥을 표현한 작품이다. 원문은 ‘송강가사(松江歌辭)’와 ‘협률대성(協律大成)’에 수록되어 있다.

정철은 그의 부친이 유배를 당했다가 1551년에 풀려나자 부친을 따라 전라도 담양에 내려가 살았다. 이곳에서 과거에 급제할 때까지 10여 년을 보냈다. 정철은 정여립 사건 때는 우의정 겸 서인의 영수로서 동인(東人) 세력을 가혹하게 숙청해 원성을 샀다. 그는 관료·정치가의 삶을 살았지만 가사문학인 ‘사미인곡’ ‘속미인곡’ ‘관동별곡’ ‘성산별곡’ 및 시조 100여 수 등 뛰어난 국문 시가를 많이 남겼다.

‘관동별곡’ 내용은 시상 전개에 따라 4단으로 나뉜다. 1단에서는 강원도 관찰사에 제수되어 강원도 원주로 부임하는 과정을 노래했고, 2단에서는 만폭동·금강대·진헐대·개심대·화룡연·십이폭포 등 내금강의 절경을 읊고 있다. 3단에서는 총석정·삼일포·의상대 일출, 경포대·죽서루 및 망양정에서 보는 동해 경치 등 외금강·해금강과 동해안 유람을 노래했다. 4단에서는 꿈속에서 신선과 더불어 노니는 것에 비유하여 풍류를 읊었다.

엊그제 몇 분 인문학자들과 정철과 그의 가사 문학 이야기를 나눈 까닭에 그의 대표적 작품 중 하나인 ‘관동별곡’을 잠시 언급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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