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음악 품격 지킨 작곡가”···김희갑의 60년 음악 인생, 다큐로 보다

가수 조용필, 양희은, 혜은이, 김국환, 임희숙, 임주리···. 시대를 빛낸 가수들이 카메라 앞에 앉아 따스한 눈으로 존경을 말한다. “존경하는 분이니까 믿음이 있어요.”(조용필) “선생님 곡은 진짜 너무 좋아요.”(임희숙). 강헌 음악평론가는 그를 “한국 대중음악의 품격을 수호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찬사는 ‘킬리만자로의 표범’(1985), ‘향수’(1989), ‘하얀 목련’(1999) 등 한국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명곡을 만든 김희갑 작곡가(89)를 향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바람이 전하는 말>은 이 위대한 음악가의 음악 인생 60여 년을 돌아본다.
1936년 평양에서 태어나 1·4 후퇴 때 대구로 내려왔다. 전홧줄을 벗기면 나오는 쇠줄로 기타 연습을 하던 고등학생 때부터 주한 미8군 사령부에서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김희갑을 비롯해 가수 신중현, 작곡가 길옥윤·이봉조 등 1950년대 ‘미8군’에서 활약한 이들은 1960년대 대중음악의 대표주자가 됐다.
영화는 김희갑이 작곡한 3000여 곡 중 35곡을 엄선한다. 1960년대 록과 1970년대 포크와 발라드 등 ‘시대에 맞는 음악’을 두루 해내던 그는 1980년대부터 그 역량을 폭발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했다.
키보이스 ‘바닷가의 추억’(1969), 송창식 ‘상아의 노래’(1983), 조용필 ‘그 겨울의 찻집’(1985), 김국환 ‘타타타’(1992) 등 시대를 타지 않는 음악의 뒷이야기가 무대 영상, 김희갑의 기타 연주 등과 교차한다.

영원한 파트너, 배우자이자 작사가인 양인자(80)를 만나게 된 건 80년대의 일이다. 두 사람은 TV 드라마 작가였던 양인자에게 김희갑이 드라마 삽입곡 작사를 의뢰하며 처음 만났다. 양인자는 서울 정동 MBC 앞 다방에서 소년처럼 앉아있던 김희갑을 떠올린다. 혜은이 ‘열정’(1985)에 이어 이선희 ‘알고 싶어요’(1986) 작업을 할 때, 김희갑은 “뭔가 소통하는 느낌”을 느꼈다고 했다. 둘은 1987년 7월 결혼했다.
가수와 평론가들은 ‘김희갑 작곡, 양인자 작사’ 곡의 탁월함을 말한다.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400여 곡 중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형식적 독창성과 대중적 인기를 모두 잡은 수작이다. “(곡 안에) 충분히 이야기할 장소를 달라”는 양인자의 요청에 김희갑은 “하고 싶은 얘기 다 해보라”며 내레이션 파트를 고안했다. 200자 원고지 5장이 넘는 가사를 전 국민이 모두 따라부를 수 있을 정도로 곡은 흥행했다.

도전은 또 다른 도전을 낳기도 한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를 가곡으로 재해석한 박인수·이동원의 ‘향수’도 김희갑의 작품이다. 시를 자르고 싶지 않아 10개월을 고민해 만든 노래다. 이 곡은 윤호진 예술감독이 1995년 초연한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의 노래 작곡을 그에게 맡긴 이유가 됐다. “이 정도 멜로디를 만들 수 있다면, (뮤지컬도) 충분히 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5년의 공부 끝에 김희갑은 아내 양인자와 함께 50여 곡의 뮤지컬 넘버를 만들어 낸다.
셀 수 없는 명곡 속에 빛나는 것은 김희갑의 사람됨이다. 2006년 김희갑을 위한 헌정 음악회의 작가로 참여했던 양희 감독은 그의 따뜻한 인품에 감동하여 2014년부터 다큐멘터리 제작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촬영을 이어온 양 감독은 “조용하고 섬세하며 친절함을 잃지 않았다. 연장자라 하여 가르치려 하지도, 대가라 하여 다른 이를 낮추어보지도 않는다”고 김희갑을 표현했다.

인터뷰 속 중절모와 깔끔한 정장 차림의 노신사는 소탈하게 웃는다. 주변인들은 그를 “점잖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뇌경색 후유증이 찾아온 2022년 아내와의 꽃놀이에서도 그는 차분하고 다정하다. 그리고 2025년, 지난 10년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세상에 나왔다. 지난달 28일 아내 양인자와 함께 시사회를 찾은 김희갑은 역시나 환하게 웃었다.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길게 말하지 못했으나, “가슴이 벅차고 감사하다”는 한 마디 진심을 전했다. 5일 개봉.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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