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현장이 꿈에도 나와" 버스에 치일 듯 아찔한 근무, '이 직업'이 산재 못 받는 이유는
인건비 아끼려 정규직→특고노동자로 전환
업무 현장 동행 취재, 2차 사고위험 아찔해
하루 10시간 일하지만 근로자 인정 못 받아
일하다 사망한 조사원조차 산재·보상 없어
4200명 조사원, 2차 사고·외상 홀로 감당
노동계 "산재 적용하고 현장 안전 강화해야"

'빠아아앙-'
지난달 24일 저녁 6시 10분 무렵. 퇴근하는 차들로 가득찬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왕복 12차선 도로 위에 서 있던 김인식(56)씨 귓가를 성난 경적음이 때렸다. 김씨 옆에서 잠시 속도를 줄인 차량 운전자는 따가운 시선과 함께 욕설을 하는 듯한 입모양을 보인 뒤 속도를 높여 떠났다. 김씨는 애써 그 시선과 입모양을 외면했다.
도로 위에 서 있던 김씨의 직업은 보험사 교통사고조사원.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보험사 콜센터의 연락을 받고 현장에 출동해 사고 현장을 조사한다. 블랙박스와 각종 사진, 영상을 확보하고 도로 위에 방치된 사고 차량을 갓길로 유도한다. 2차 사고와 교통혼잡을 막기 위해서다. 사고자가 위급한 상황일 경우 직접 구호조치를 하고 119신고까지 한다.
이날도 퇴근 시간 영동대로 위 1차선에서 추돌 사고가 발생해 출동한 상황이었다. 김씨와 현장에 도착해보니 사고가 난 차량은 도로 위에 그대로 방치된 채, 운전자들은 그 옆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김씨가 다급히 경광봉을 들고 차에서 내려 사고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현장 사진 등 증거자료를 확보한 뒤 곧장 사고 차량이 갓길로 빠질 수 있도록 경광봉을 흔들면 도로를 뛰어다녔다.
사고를 수습하는 사람이 도로 위에 있으면 속도를 줄여줄 법도 하건만, 야속한 차량들은 경적을 울리거나 오히려 속도를 더욱 높여 김씨 옆을 스쳐 지나갔다. 몸집이 큰 버스가 그 옆을 지나갈 때면 김씨의 몸이 흔들렸다.지켜보는 내내 '저러다 사고 나면 큰 일인데'라는 걱정이 앞설 정도. 현장 조사를 마친 김씨는 긴장이 남아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매일 이렇게 2차 교통사고 위험이 도사리는 길 위에서 살고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동료들이 사고를 당했고, 극심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요. 그런데 산업재해 보험 가입은 꿈도 못 꾸는 상황입니다. 이런 불합리한 세상이 어디에 있나요."
보험사가 업무 통제하는데, '개인사업자'

누가 봐도 위험천만한 일터에서 일하는 교통사고조사원 김씨는 왜 산재 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걸까.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봤다.
교통사고조사원은 각 보험사에 속해 교통사고 현장을 조사하는 노동자다. 김씨는 삼성화재애니카에서 일하고 있다. 2009년 삼성화재애니카 '사고조사 에이전트' 제도가 처음 도입될 때 1기로 입사했다.
하지만 그의 법적 신분은 회사에 속한 근로자가 아닌 특수고용노동자다. 삼성화재가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에 교통사고 조사 업무를 위임하면 삼성화재애니카와 김씨가 서비스 제공 계약을 맺는 '3자 계약' 구조다. 김씨는 삼성화재 고객의 사고 현장에 출동하고 삼성화재애니카명함과 회사 조끼를 착용하고 다니지만 서류상 신분은 특고노동자, 즉 개인사업자다. 국내 주요 보험사들은 모두 비슷한 방식으로 교통사고조사원을 운용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특고노동자는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산재 보험 가입이 안된다. 택배기사, 방과후 강사 등 18개 직종 특고노동자는 예외적으로 산재에 가입할 수 있지만, 교통사고조사원은 적용 대상이 아니다.
보험사들은 교통사고조사원들이 보험사가 요청한 사고 현장에 출동하지 않는 시간에 개별 업무를 볼 수 있는 만큼, 근로자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김씨는 억울함을 토로했다. 교통사고조사원 대부분은 사실상 회사에 속한 근로자와 똑같이 일하고 있는 '가짜 3.3(사업소득세 3.3%) 노동자'라는 주장이다. 김씨는 "보험사 요청 출동을 반복적으로 거부하거나 출동 시간이 늦어 업무 평가 하위권으로 분류되면 계약 해지를 당한다"며 "하루 10시간 이상 보험사 일을 하기 때문에 남는 시간에 개별사업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실제 김씨의 '출동서비스 대행계약서' 내용 중 '계약의 해지' 항목을 보면 계약해지 조건으로 '정당한 사유 없이 반복적으로 서비스를 거부하는 경우', '서비스 수준점검에서 최하위 5%에 해당하는 경우' 등이 명시됐다. 서비스 수준점검에는 고객만족도가 포함되는데, 고객만족도 평가 항목에는 '30분 이내 출동' 등 사실상 업무 가이드라인으로 볼 수 있는 내용도 있었다.
건당 출동수수료 2만5000원 불과
김씨의 하루 근무표를 보면 통상 오전 8시부터 일을 시작해 저녁 7시 무렵 퇴근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주 주 6일을 출근했고, 월 3회 정도 일요일 당번 출근까지 하고 있었다. 오직 보험사 출동 서비스를 수행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처우는 철저히 개인사업자 기준으로 책정된다. 정해진 고정급 대신 출동 건당 수수료를 받는다. 그의 '사고출동서비스 대행 수수료' 계약서를 보면 평일 낮 시간(오전 7시~오후 9시) 기본 출동 수수료는 2만6,200원. 자동차 전용도로나 고속도로, 터널 등 위험구간에 출동하면 4,000원이 추가되고 격오지에 나가면 5,000원을 더 준다.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하면 1,000원이 추가되고 통행료와 주차비는 각각 최대 3,000원씩 지급된다.
이날 오전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김씨가 출동한 현장은 총 4건. 10만 원 남짓 수수료를 얻었지만 유류비와 식대, 차량유지비 등을 모두 자비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실 수령액은 8만 원 남짓이라고 했다. 김씨는 "과거에는 교통사고조사원 업무를 정규직이 담당했지만 최근에는 대형 보험사 대부분이 인건비를 아끼려 특고노동자로 바꿔 버렸다"며 "하는 업무는 정규직과 특고노동자가 똑같은데 법의 보호나 처우는 더 열악해졌다"고 지적했다.
차량에 경광등 설치 못해, 위험천만 상황

교통사고조사원들이 무엇보다 산재 가입을 원하는 이유는 노동환경 자체가 위험천만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교통 사고를 수습하는 중에 뒤에서 달려오던 차가 때려 박는 사고도 많고 도로 위에서 미끄러져 다리가 골절되거나 도로 위에서 밟은 맨홀이 깨져 다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 지난 4월에는 한 교통사고조사원이 사고 차량을 견인차에 연결하다 그 사고 차량에 깔려 숨졌다.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 신분이다 보니 산재는커녕 제대로 된 보상조차 받지 못했다고 한다. 김씨는 특히 "야간이나 눈, 비가 오는 날에는 사고 위험이 두 배는 높아지는 것 같다"며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다 다쳐도 모든 비용이나 책임은 오직 노동자들이 짊어져야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가 일하는 회사에서 보내준 안전장비는 야광조끼와 경광봉, 휴대용 경광등이 전부. 현행법상 교통사고조사원 차량에 경광등을 설치하는 것이 불법이다보니 휴대용 경광등을 지급한 것이지만, 주먹보다 작은 휴대용 경광등은 무용지물이라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끔찍한 사고 현장 출동, 정신적 외상도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도 문제다. 사고 현장에 제일 먼저 출동해서 끔찍한 사고현장을 마주하는 일이 잦고, 정신적 질병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2023년 고용노동부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 의뢰한 '교통사고조사원 등 종사실태 연구' 결과를 보면, 4대 보험사의 교통사고조사원은 최소 4,200명 규모인데 모두 직고용이 아닌 특고노동자이다. 김씨와 같은 개인 교통사고조사원들은 일하는 기간 동안 평균 4.6회가량 추돌사고를 경험했다. 정신질환을 경험했다는 비율도 35.0%에 달했다.

지난해 8월 녹색병원이 교통사고조사원 13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통사고조사원 안전과 건강 실태조사'에는 열악한 노동환경이 더 자세히 드러났다. 조사 전 1년간 업무 중 여러 유형의 사고를 당한 교통사고조사원은 20.8%였다. 이들 중 39.0%는 사고를 당한 뒤에도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해 업무를 수행했다.
조사 당시 교통사고조사원들이 증언한 사고 내용은 '교통사고 현장 수습 중 지나던 차량이 잔해를 튕기면서 가격 당함', '출동하여 사고처리 중 주변 차량에 충돌', '사고 차량이 후진하면서 차량 뒤에 있던 사고조사원을 충돌', '현장 조사 중 반대 차선에서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옴. 이를 피하는 과정에서 부상' 등 다양했다.

이 외에도 교통사고조사원 94.8%는 언어적·신체적 폭력을 경험했고, 37.0%는 중증도 이상의 우울증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또 자살 의도 경험률은 10.0%에 달했고, 잦은 야간근무로 수면 장애를 겪는 비율도 12.0%로 나타났다.
김씨는 "꿈속에서 사고 장면이 반복되거나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떠올라 고통을 겪어 두통약을 한 달에 몇 통씩 끼고 산 적도 있었다"며 "동료들도 심각한 우울증과 사고현장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가장 위험한 직종인데 산재 적용 미루는 정부
노동계는 교통사고조사원에 대한 산재 적용을 최우선 과제로 요구하고 있다.
김경수 민주노총 사무금융노조 정책실장은 "정부는 교통사고조사원의 고용형태가 다양해 산재 가입이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교통사고조사원들 대부분은 특고노동자로 둔갑된 근로자"라며 "교통사고조사원들은 계속해서 길 위에서 다치거나 죽을 위기에 놓여 있다. 정부가 조속히 산재 적용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산재 적용 이전에 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교통사고조사원 출동 차량에 경광등을 설치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2차 사고를 예방해야 사고자와 시민, 교통사고조사원 모두 안전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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