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2000년前 성경은 당신의 성경과 순서가 달랐다"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5. 10. 3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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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초여름, 베두인족 소년이 건조한 사해 북서쪽 절벽의 동굴에 별생각 없이 돌멩이를 던졌다.

세계적 성서학자 존 바턴의 책 '성서의 역사'는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책인 성경을 거대한 흐름 속에서 되짚는 역작으로, 쿰란 사본에 관한 비화와 함께 성서의 의미를 고민하게 한다.

흔히 성서는 첫째, 책이 기록되고 둘째, 그 책들이 모여 성서를 이뤘다가 셋째, 히브리 성서라는 정경(正經)으로 굳어졌다고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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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성서학자가 되짚는 성경 이면의 성경들

1947년 초여름, 베두인족 소년이 건조한 사해 북서쪽 절벽의 동굴에 별생각 없이 돌멩이를 던졌다. 뭔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동굴 속 길쭉한 항아리의 뚜껑을 열자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항아리 안에선 아마포와 역청으로 감싼 문서 900개가 무더기로 나왔다. 빛바래고 부서진 문서는 쓸모없는 문헌이 아니었다.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 무렵 기록된, 무려 2000년이 넘는 히브리 성서 원형이었다. 훗날 이 문서는 '쿰란 사본'으로 불린다.

세계적 성서학자 존 바턴의 책 '성서의 역사'는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책인 성경을 거대한 흐름 속에서 되짚는 역작으로, 쿰란 사본에 관한 비화와 함께 성서의 의미를 고민하게 한다.

흔히 성서는 첫째, 책이 기록되고 둘째, 그 책들이 모여 성서를 이뤘다가 셋째, 히브리 성서라는 정경(正經)으로 굳어졌다고 이해된다.

하지만 이 책에 따르면 성서의 정경화는 그렇지 않았다. 세 과정은 시간적으로 겹쳤다. 어떤 책은 기록과 성서화가 완료됐고, 어떤 책은 아직 쓰이기도 전이었다. 특별한 지위를 얻는 시점은 책마다 달랐다.

거룩한 이야기를 다룬다고 해서 다 거룩하게 여겨지지도 않았다. 신약성서보다 먼저 나왔으나 성서로 인정받지 못한 책들이 있으니, 이른바 위경(僞經)이었다.

가령 창세기의 에녹을 화자로 삼은 '에녹1서'는 에녹이 쓴 게 아니라 유대 작가들이 에녹 이름을 빌려 쓴 것이었다. 위경 중에는 아담과 하와를 '저자'로 내세운 위경까지 존재했다.

쿰란 사본의 발견 이전까지 히브리 성서의 표준 원문은 9세기 발견된 '마소라 본문'이었다. '히브리 성서는 6~10세기 집필된 이 한 가지 체계, 마소라 본문만 있다'고 사람들은 믿었다.

그러나 쿰란 사본의 발견 이후 이 믿음은 깨졌고 수많은 질문을 우리에게 다시 건넸다. 쿰란 사본 중 하나인 구약성서의 '시편'은 우리가 아는 순서와 달랐다.

'시편'의 순서가 '101, 102, 109, 105, 146, 121-132, 119…' 이런 식으로 배열됐기 때문이었다. 연구자들은 쿰란 공동체가 시편을 자기 식대로 낭송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성서는 '책'이 아니라 호흡을 가진 '리듬'이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신자든 비신자든, 유대교든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모두가 성서에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진 않는다. 성서는 믿는 자에겐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인 거룩한 텍스트이지만 비신자에겐 서구문화의 중심이었던 문서에 불과하니 말이다. 책 '성서의 역사'는 고정된 실체로서의 성서란 없었으며, 성서란 오직 믿음이란 '다시 쓰이는' 역사 위에 건립된 신념임을 말해준다.

신학자 카를 바르트는 "신은 사건을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낸다"고 했다. 이 말을 곱씹는다면 신은 고정된 질서를 넘어선 인간의 언어 안에 잠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정경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신을 인간의 질서에 가두려는 욕심은 아니었을까.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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