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유럽 예술의 심장’ 음악도시 오스트리아 빈의 상징
세계 3대 오페라극장…‘꿈의 무대’
영화 ‘미션 임파서블’ 촬영지 유명
1869년 개관…웅장한 외관 자랑
카라얀 등 세계 최고 지휘자 배출
파바로티 등 세계적 성악가 공연

유럽의 오스트리아 빈을 음악의 도시, 커피의 도시라 이야기한다. 도시 곳곳에 역사를 머금은 카페에는 도시의 낭만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항상 가득차 있다. 그윽한 커피 향과 더불어 도시를 감싸는 음악은 현대 유럽 문화의 중심지로 도시와 역사, 문화가 융합하여 어떻게 지속 성장해 가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많은 문화정책 연구가들의 관심 대상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 빈의 도시 중심가에는 도시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세계 3대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인 빈 국립 오페라 극장(WIENER STAATSOPER)이 있다. 특히, 톰 크루즈가 주연한 세계 최고의 첩보 영화 시리즈로 우리에게도 너무 친숙한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2015년 개봉한 '미션 임파서블-로그 네이션'이 이곳에서 2014년 촬영되었다. 필자에게도 꽤 흥미진진하고 긴박한 장면으로 기억되는데 스펙타클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관람하는 중 벌어지는 총격과 격투 장면이 포함된 추격 장면은 보수적이며 아름다운 오페라 극장의 내외에서 벌어진다는 것은 보기 드문 장면으로 기억된다. 아마 필자와 같이 그 영화를 본 독자라면 무릎을 '탁' 치며 기억할 것이다. 오페라 극장의 무대 세트와 장치를 이용한 티키타카 추격 장면, 그리고 총성이 울리려는 순간의 장면에 등장하는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가 연주되면서 운명을 건 싸움과 운명을 노래하는 목소리가 함께 울리는 모습은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훌륭한 자태와 어우러져 영화의 더욱 장대한 스케일을 탄생시킨 것이다.

1869년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전신인 빈 궁정 오페라의 개막작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였다. 초대 감독은 프란츠 폰 딩겔슈테트(Franz von Dingelstedt, 1814~1881)로, 당시 그의 웅장한 무대 디자인은 관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이름이 바뀌고 2차 대전 전쟁 기간과 극장이 소실되고 재건하는 당시에도 계속해서 현재까지 오페라와 발레 콘서트 등 200~300회 이상의 공연이 올려졌으며,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서는 꿈의 무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 극장은 바그너의 오페라가 바이로이트 이외에 처음으로 올려진 무대이기도 하다.

빈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는 마리아 칼라스, 에디타 그루에바, 제시 노먼, 크리스타 루드비히, 레나타 테발디, 안나 네트렙코, 안젤라 게오르규 등 세계적인 소프라노와 주세페 디 스테파노의 가수, 자코모 아라갈, 루치아노 파바로티,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 등의 세계적인 테너들이 공연하였다. 또한, 바리톤과 베이스로는 에토레 바스티아니니와 브린 터펠, 토마스 햄슨, 테오 아담, 체사레 시에피, 루제로 라이몬디 등이 자주 무대를 빛내며, 매 공연 세계 최고의 출연진을 볼 수 있는 최고의 극장이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다. 성악가뿐만 아니라,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기사 파스만, 1892> 쥘 마스네의 <베르테르, 1892>,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발레곡과 오페라 등 세계적인 작곡가들의 오페라와 발레 작품이 지금까지 창작되어 초연되고 있다.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은 자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다. 내부는 화려함과 더불어 극장을 거쳐간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음악가들의 흉상이 즐비하다. 화려하고 웅장한 내부와 마찬가지로 1700여 석의 좌석과 568개의 입석을 가진 거대한 관객석의 3배의 크기를 가진 무대와 이 큰 공간에서 작업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자동화 시스템은 오페라 제작자인 필자로선 환상처럼 보여질 뿐이다. 그뿐인가, 초록색 지붕과 웅장함에 빛이 더해져 오스트리아의 3대 야경으로 불리는 아름다운 외관, 그리고 주변에 즐비한 빈의 커피 맛집과 슈테판 성당, 그리고 전설적인 고전 음악가들의 동상들은 오페라 극장을 도시의 보물로 만들고 있다.
오스트리아가 가장 어려울 때, 국민과 정치인, 기업인 등이 힘을 모아 재건한 빈 국립 오페라 극장, 모든 것을 제쳐 두고 무엇 때문에 재정과 모든 동력을 극장 재건에 쏟았을까? 그들은 역사를 통해 문화예술의 힘과 역량을 알게 되었고 도시, 나아가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속 가능한 도시로 살아남기 위해 절대적인 것이 그들이 가진 음악 유산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광주시립오페라단 예술감독·문화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