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유럽 예술의 심장’ 음악도시 오스트리아 빈의 상징

전남일보 2025. 10. 30.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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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국립오페라극장
세계 3대 오페라극장…‘꿈의 무대’
영화 ‘미션 임파서블’ 촬영지 유명
1869년 개관…웅장한 외관 자랑
카라얀 등 세계 최고 지휘자 배출
파바로티 등 세계적 성악가 공연
오스트리아 빈의 랜드마크로 세계 3대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인 '빈 국립 오페라 극장' 전경.  출처 위키피디아

유럽의 오스트리아 빈을 음악의 도시, 커피의 도시라 이야기한다. 도시 곳곳에 역사를 머금은 카페에는 도시의 낭만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항상 가득차 있다. 그윽한 커피 향과 더불어 도시를 감싸는 음악은 현대 유럽 문화의 중심지로 도시와 역사, 문화가 융합하여 어떻게 지속 성장해 가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많은 문화정책 연구가들의 관심 대상이기도 하다.

빈은 1804년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그리고 20세기까지 세기의 음악가 모차르트와 베토벤, 슈트라우스, 말러 등이 활동하며 예술, 커피하우스 문화 등으로 유럽 문화의 중심지로 번영했다. 1955년 오스트리아 국가 조약 이후 중립국이 되어 현재까지 유럽의 대표적 문화도시로 남아 있다. 
빈 오페라 극장의 야경.  출처 위키피디아

오스트리아 빈의 도시 중심가에는 도시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세계 3대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인 빈 국립 오페라 극장(WIENER STAATSOPER)이 있다. 특히, 톰 크루즈가 주연한 세계 최고의 첩보 영화 시리즈로 우리에게도 너무 친숙한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2015년 개봉한 '미션 임파서블-로그 네이션'이 이곳에서 2014년 촬영되었다. 필자에게도 꽤 흥미진진하고 긴박한 장면으로 기억되는데 스펙타클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관람하는 중 벌어지는 총격과 격투 장면이 포함된 추격 장면은 보수적이며 아름다운 오페라 극장의 내외에서 벌어진다는 것은 보기 드문 장면으로 기억된다. 아마 필자와 같이 그 영화를 본 독자라면 무릎을 '탁' 치며 기억할 것이다. 오페라 극장의 무대 세트와 장치를 이용한 티키타카 추격 장면, 그리고 총성이 울리려는 순간의 장면에 등장하는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가 연주되면서 운명을 건 싸움과 운명을 노래하는 목소리가 함께 울리는 모습은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훌륭한 자태와 어우러져 영화의 더욱 장대한 스케일을 탄생시킨 것이다.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은 1861년부터 1869년까지 8년간에 걸쳐 완공된 오페라 하우스로 오스트리아 제국의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와 엘리자베스 황후가 참석한 가운데 빈 궁정 오페라(WIENER HOFOPER)로 개관하였다. 1921년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이 수립된 후 현재의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지만, 이 극장은 완공 이후 대중에게 비난을 받았다. 오스트리아의 황금기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규모와 웅장함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 특히 오페라 하우스 앞의 '링슈트라세' 층이 공사가 시작된 후 1m 높아진 후 오페라 하우스는 '가라앉은 상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은 세계 2차대전이 끝날 무렵 미군의 폭격으로 일부가 소실되어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패전국이 된 오스트리아는 4대 전승국에 의해 분할 점령되어 1955년 다시 영세 중립국으로 통일되는 혼란을 겪지만, 음악의 도시답게 1946년 소실된 오페라 극장을 재건할 것을 결정하고 1955년 보수를 마치고 재개관하게 된다. 1709석 규모로 유럽의 3대 야경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답고 웅장한 외관을 자랑하며 개관한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은 복원할 때 당시의 효율적인 디자인 공법을 극장 내부에 적용했으며 음향의 고도화를 위한 작업을 수행했다. 극장 부근에 있는 슈테판 대성당이 빈의 종교적 상징이라면 이 극장은 유럽 예술의 심장이라 불린다.
빈 국립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리는 무도회의 만남의 계단.  출처 위키피디아

1869년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전신인 빈 궁정 오페라의 개막작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였다. 초대 감독은 프란츠 폰 딩겔슈테트(Franz von Dingelstedt, 1814~1881)로, 당시 그의 웅장한 무대 디자인은 관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이름이 바뀌고 2차 대전 전쟁 기간과 극장이 소실되고 재건하는 당시에도 계속해서 현재까지 오페라와 발레 콘서트 등 200~300회 이상의 공연이 올려졌으며,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서는 꿈의 무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 극장은 바그너의 오페라가 바이로이트 이외에 처음으로 올려진 무대이기도 하다.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황금기는 오페라 연출가와 지휘자의 역량을 갖춘 구스타프 말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1897년에 오페라 극장의 후임자로 임명된 후 그의 뛰어난 연출로 10년 동안 오페라는 황금기를 누렸으며 말러의 지휘 아래 오페라 극장은 세계 최고의 오페라 하우스 중 하나로 발전했다. 말러는 신작 오페라보다는 오페라 황금기의 고전 작품들을 선호했고 획기적인 연출과 음악해석으로 오페라를 개혁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후 1955년 재개관 이후 칼 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로린 마젤을 비롯한 세계 최고의 지휘자들이 예술 감독을 역임하며, 세계 3대 오페라 극장으로 계속해서 자리매김 하였다. 특히 세기의 지휘자로 일컫는 카라얀은 1956년부터 1964년까지 예술감독으로 일하며 다수 오페라의 원곡의 언어를 번안하여 부르던 것을 원어로만 공연을 할 수 있게 원칙을 세웠다. 또한,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 등과의 협업을 통한 다양한 인력과 작품 교류를 통해 이탈리아에서도 모차르트나 슈트라우스 같은 독일 작곡가의 작품이 올려지게 되었으며, 빈이 오페라로 가장 화려한 시기를 구가할 수 있게 했다. 
1900년경 빈 국립오페라극장 전경.

빈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는 마리아 칼라스, 에디타 그루에바, 제시 노먼, 크리스타 루드비히, 레나타 테발디, 안나 네트렙코, 안젤라 게오르규 등 세계적인 소프라노와 주세페 디 스테파노의 가수, 자코모 아라갈, 루치아노 파바로티,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 등의 세계적인 테너들이 공연하였다. 또한, 바리톤과 베이스로는 에토레 바스티아니니와 브린 터펠, 토마스 햄슨, 테오 아담, 체사레 시에피, 루제로 라이몬디 등이 자주 무대를 빛내며, 매 공연 세계 최고의 출연진을 볼 수 있는 최고의 극장이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다. 성악가뿐만 아니라,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기사 파스만, 1892> 쥘 마스네의 <베르테르, 1892>,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발레곡과 오페라 등 세계적인 작곡가들의 오페라와 발레 작품이 지금까지 창작되어 초연되고 있다.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은 자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다. 내부는 화려함과 더불어 극장을 거쳐간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음악가들의 흉상이 즐비하다. 화려하고 웅장한 내부와 마찬가지로 1700여 석의 좌석과 568개의 입석을 가진 거대한 관객석의 3배의 크기를 가진 무대와 이 큰 공간에서 작업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자동화 시스템은 오페라 제작자인 필자로선 환상처럼 보여질 뿐이다. 그뿐인가, 초록색 지붕과 웅장함에 빛이 더해져 오스트리아의 3대 야경으로 불리는 아름다운 외관, 그리고 주변에 즐비한 빈의 커피 맛집과 슈테판 성당, 그리고 전설적인 고전 음악가들의 동상들은 오페라 극장을 도시의 보물로 만들고 있다.

오스트리아가 가장 어려울 때, 국민과 정치인, 기업인 등이 힘을 모아 재건한 빈 국립 오페라 극장, 모든 것을 제쳐 두고 무엇 때문에 재정과 모든 동력을 극장 재건에 쏟았을까? 그들은 역사를 통해 문화예술의 힘과 역량을 알게 되었고 도시, 나아가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속 가능한 도시로 살아남기 위해 절대적인 것이 그들이 가진 음악 유산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년 TV 화면을 통해 시청하는 '빈 신년 음악회'로 유명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빈 국립 오페라 극장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이뤄졌으며, 이들의 한국 방문 연주는 항상 매진으로 국내외에서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빈 관광의 핵심으로 빈 국립 오페라 극장 투어와 특히 저녁 늦게까지 이루어지는 공연 관람은 가볍게 지나는 도시가 아닌 정주하며 문화를 즐기는 도시로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필자.
음악의 도시, 커피의 도시 오스트리아 빈, 걷기만 해도 가독성이 넘치는 이 도시의 생명을 불어넣는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 이 선율로 도시를 감싸는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은 유럽 예술의 심장이자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오스트리아 민족의 자존심이자 도시 그 자체이다. 광주를 문화로 춤추게 하는 세계인이 읽을 수 있는 가독성 넘치는 도시 '컬쳐 레저블시티 광주(Culture Legible City Gwangju)'를 위해 오페라 전용그장 건립을 통해 꿈꿔본다.

광주시립오페라단 예술감독·문화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