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금속 사냥꾼’에 무방비 박물관…국제조직 연루됐나 [특파원 리포트]

안다영 2025. 10. 2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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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는 명화만 있는 게 아니죠. 역사적 가치가 있는 왕실 보석류도 있고, 자연사적으로 보존 가치가 높은 광물도 있습니다. 세속적으로 바꿔 말하면 금, 은,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사파이어 같은 값나가는 것들이 널려 있습니다. 여기에 혹해 대담한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도 있습니다. 최근 루브르박물관을 턴 절도범들처럼 금은보화를 노린 '귀금속 사냥꾼'입니다.

■ 치솟는 금값에 표적 된 박물관

최근 몇 년 사이 이런 '귀금속 사냥꾼'들이 활개 치고 있습니다. 루브르박물관에서 1,400억 원 상당의 왕실 보석 8점이 털린 지난 19일, 프랑스 소도시 랑그르에 있는 '메종 데 뤼미에르 드니 디드로' 박물관에도 도둑이 들었습니다.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 드니 디드로를 기리기 위해 지은 이 박물관에서 절도범들은 1억 4천만 원 상당의 금·은화 2천 개 이상을 훔쳐 갔습니다.

9월 16일에는 프랑스 국립 자연사박물관에서 20대 중국 여성이 총 6kg 상당의 금덩이를 훔쳐 달아났다가 보름 만에 잡혔지만, 도난 금덩이 대부분은 이미 사라진 상태입니다. 도난품은 자연산 금덩이로, 일반 금괴보다 가치가 더 높아 피해 규모는 약 24억 원으로 추산됩니다.

최근 몇 년간 금값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박물관 내 금 관련 유물을 훔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또 이집트 카이로의 박물관에서는 3천 년 된 파라오의 금팔찌가 사라졌습니다. 범인은 박물관 복원 전문가로 밝혀졌습니다. 영국 웨일스 카디프에 있는 세인트 페이건스 국립 역사박물관에서도 청동기 시대 황금 장신구 등이 도난당했고, 네덜란드 드렌츠 박물관에서는 루마니아 국립 박물관에서 대여한 국보급 고대 황금 투구와 팔찌 등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보석상들은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금값 상승과 연관 짓는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보도했습니다. 미국의 한 온라인 보석상은 금값이 지난 1년 동안만 60% 상승해 온스당 4,000달러 이상으로 거래될 수 있게 되면서 박물관에서 금이나 반짝이는 모든 것을 훔치려는 도둑들의 유혹이 커졌다고 말합니다.

■ 그림보다 보석…새로운 범죄 트렌드

금값이 오른 영향도 있지만, 절도범들이 미술품보다 귀금속을 더 노리는 이유는 유통이 더 쉽다는 점도 있습니다. 훼손되는 순간 가치가 떨어지는 만큼, 원 상태 그대로 판매해야 하는 미술품은 유통 과정에서 덜미가 잡힐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금이나 보석류는 조각으로 분해하거나 녹여 팔 수 있습니다. 완제품으로서 역사적 가치는 떨어지겠지만 귀금속 자체로서의 가치는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실제 2022년 독일 뮌헨 인근에서 발생한 고대 금화 절도 사건에서 도난품 일부가 녹여진 상태로 압수돼 귀금속을 녹여서 유통하려는 시도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또 지난 9월 카이로 박물관에서 빼돌려진 금팔찌는 한 상인에게 팔린 뒤 금세공업자를 거쳐 금 제련업체에 넘겨졌는데, 제련 업자가 다른 물품들과 함께 녹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카이로 박물관에서 도난당한 파라오 금팔찌


루브르 절도 사건 이후 전문가들은 도난당한 왕실 보석들이 해체되거나 녹은 형태로 시장에 나올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습니다. 이럴 경우 유통 경로가 복잡하고 흔적이 지워질 가능성이 커 회수 가능성이 낮고, 범인을 잡는다 하더라도 원래 상태 그대로 돌려받기는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문화유산보다는 금속으로서의 가치에 집중해, 재활용할 수 있는 문화유산을 노리는 새로운 범죄 트렌드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 두바이·앤트워프 등 암시장으로 흘러갔나

월스트리트저널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암시장에서 박물관과 개인 소장품에서 훔친 금과 다이아몬드, 보석이 거래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FBI에 따르면 도난당한 보석을 포함한 불법 미술품을 거래하는 비밀스러운 글로벌 네트워크는 매년 수십억 달러 규모의 거래를 한다고 이 매체는 전했습니다. 주로 두바이와 인도 델리의 다이아몬드 상점부터 미국 뉴욕과 벨기에 앤트워프 보석상 등이 밀거래 장소로 거론됩니다. 수사관들은 절도범들이 큰 보석들을 작고 추적 불가능한 보석으로 다시 커팅하고 새로운 형태로 만들 용의가 있는 암시장 보석상들에게 훔친 보석을 판매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합니다.

글로벌 미술품 회수 회사인 아트 리커버리 인터내셔널의 설립자는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에서, 이번에 루브르에서 도난당한 보석이 1800년대 보석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도 표적이 된 이유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최신 보석이나 실험실에서 만든 보석은 종종 미세한 일련번호가 새겨져 있지만, 오래된 보석에는 그러한 표시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또 루브르 보석에 박힌 수많은 작은 다이아몬드들은 재판매를 위해 깎거나 새로 형태를 만들 필요가 없어 절도범들에게 더 매력적인 목표가 됐을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보석이 클수록 처분하기가 더 어렵다는 게 이 설립자의 설명입니다.

■ 글로벌 조직범죄냐, 아마추어 범죄냐

최근 발생한 파리 자연사 박물관 금덩이 도난 사건이나 이집트 카이로 팔찌 도난 사건 등은 공통적으로 절도범이 해외로 도피해서 도난품을 처분했고, 도난품이 녹여서 재가공된 형태로 유통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수사 당국은 절도범들이 국가 간 공조가 느리다는 점을 알고, 이런 방식으로 추적을 어렵게 한 점에 비춰 조직적 범죄로 보고 있습니다. 중국이나 동유럽, 남미 등 글로벌 조직이 개입됐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다만 루브르 절도 사건이 조직범죄의 소행인지는 아직 불분명합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발칸 반도와 연관된 가장 악명 높은 보석 절도단으로, '핑크 팬더'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조직은 수십 년 동안 수억 달러에 달하는 수많은 보석 절도에 연루됐지만 증거를 거의 남기지 않았다고 보도했습니다.

반면, 루브르 절도범들은 증거품을 현장에 그대로 버려두고 달아났고, 특히 다이아몬드 1,400개와 에메랄드 56개가 박힌, 외제니 황후의 왕관을 떨어뜨리는 등 실수가 많았다는 점을 볼 때 "대담하긴 하지만 아마추어적"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FBI의 한 수사관은 보석의 역사적 가치와 시장 가치를 고려할 때 "도둑들이 왕관을 떨어뜨릴 정도라면 프로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유럽 박물관들이 절도범들의 신종 수법에 무방비로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전반적인 보안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특히 각국이 문화유산 절도를 문화 테러리즘으로 규정해 처벌을 강화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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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영 기자 (browneye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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