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카의 나라 러시아, 알코올 소비량 ‘26년 만에 최저’ 왜?

‘보드카는 우리의 적이다. 그렇기에 완전히 섬멸할 것이다!’
러시아인들의 보드카 사랑을 재치있게 표현한 러시아의 한 속담이다. 러시아는 추운 날씨를 독주로 이겨내는 사람들이란 이미지가 강하다. 러시아는 알코올 소비가 많은 편이긴 하지만 가장 많은 나라는 아니다.
세계보건기구 자료를 보면 2022년 기준 ‘1인당 연간 평균 알코올 소비량’(15살 이상, 3년 평균)이 러시아는 10.5리터로 180개국 중 27위였다. 가장 많은 나라는 루마니아(17.1리터), 조지아(15.5), 라트비아(14.7)다. 참고로 한국은 8.4리터로 세계에선 43번째지만, 아시아 국가 중에선 베트남(10.7)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최근 러시아에서 알코올 소비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러시아 국영 타스 통신과 이즈베스티야 등 러시아 매체들의 23일(현지시각) 보도를 보면, 러시아 통합부처정보시스템(EMISS) 자료 기준 지난 9월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이 7.84리터를 기록했는데 이는 1999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러시아인의 알코올 소비량은 올해 들어 꾸준히 줄었다. 1인당 소비량은 3월 8.41리터, 4월 8.32리터, 5월 8.22리터, 6월 8.12리터, 7월 8.01리터, 8월 7.93리터로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였다. 올해 1∼9월 1인당 월평균 알코올 소비량은 8.18리터다.
러시아 연방에서 알코올 소비량이 가장 적은 곳은 체첸(9월 1인당 0.13리터), 잉구세티아(0.62리터) 등 북캅카스 지역이다. 이 지역 주민은 대부분 무슬림이기 때문에 술은 거의 관광객이 소비한다.
알코올 섭취가 가장 많은 지역은 스베르들롭스크주로 1인당 10.49리터를 마셨다. 모스크바의 1인당 평균 음주량은 4.91리터를 기록했다. 러시아의 북부지역은 추운 날씨에 독한 술을 마셔야 한다는 믿음 탓에 술 소비량이 많고, 모스크바는 업무 중심적인 지역이어서 일에 방해가 되는 것을 통제하는 특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최근 알코올 소비량이 감소한 것은 러시아인의 생활 방식이 변화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신체와 정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지적이다.
루딩그룹 프리미엄 와인포트폴리오 책임자인 블라디미르 코센코는 통계 방식의 변화를 따져보면 실제 러시아인의 술 섭취량은 더 크게 줄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 통계에는 저알코올 음료 소비량이 제외됐기 때문이다.
중독 전문의인 안드레이 이바노프는 1990년대에는 불법 보드카를 파는 거대한 술 암시장이 존재했고, 암시장에서 거래된 술은 통계에 집계되지 않아 통계상 차이는 더욱 클 것이라고 밝혔다.

음주를 많이 즐기지 않는 것은 제트(Z)세대의 특징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영양사 마리아 니체곱스카야는 “건강한 생활방식, 금주, 정신건강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이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더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알코올 소비량 감소는 젊은 세대, 도시 거주자, 부유층에서 더욱 두드러지지만, 노년층과 사회 취약 계층의 음주 습관은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알코올 맥주나 와인 시장이 커진 것도 주목할 만한 트렌드다. 코센코는 무알코올 음료에 대해 “익숙한 맛과 향을 즐기면서 운전도 할 수 있는 기회로 많은 선택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생활 방식 변화보다 세금, 가격 인상의 영향이 더 크다는 분석도 있다. 러시아 국민경제공공행정 아카데미 부교수이자 주류시장 전문가인 막심 체르니곱스키는 지난해 5월과 올해 1월 소비세가 인상됐다며 “보드카 소매 최저가는 299루블에서 349루블로 인상됐다”고 말했다.
그는 수입 제품에 대한 관세도 많이 증가해 ‘합법적' 알코올 생산이 감소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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