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번잡한 마음을 달래려고 갔었지…경주 남산으로 떠나는 가을 여행

2025. 10. 2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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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여행을 가야 할 이유는 가지 말아야 할 이유보다 백 배는 더 많다. 쉬기 위해, 새로운 활력을 얻기 위해,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외로워서, 누군가를 잊기 위해 여행을 간다. 마음이 심란하고 어지럽다면 경주 남산으로 가보자. 초가을, 지금 딱 남산에 가기 좋을 때다.
경주 서출지
구불거리고 휘어진 귀기 어린 소나무 숲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여행을 하며 삶에 관해 깨달은 몇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 인생은 대결이 아니라는 것. 인생은 나만의 산책길을 따라가며 아름다움을 만나고 그것들을 즐기는 일이다. 둘째, 지금껏 살아오며 내가 화를 낸 많은 일들이 웃어넘길 수도 있었던 일이라는 것. 바닷가에 서서 간략하게 그어진 수평선을 바라보며 나는 자주 나의 옹졸함을 탓하곤 했다. 셋째, 때론 설득시키는 것보다는 도망치는 게 낫다는 것.

사람은 변하지 않고, 한 번 실망시킨 사람은 같은 이유로 두 번, 세 번 실망시킨다. 그런 사람을 설득하고 이해시킨다고 내 에너지를 쓰는 것보다 도망치는 것이 현명하다. 내가 비행기 티켓을 검색하는 가장 큰 이유기도 하다. 오늘은 이 세 가지 이유를 핑계로 경주에 여행을 왔고, 지금 삼릉 소나무 숲속에 서 있다.

경주 삼릉 소나무숲
삼릉은 위쪽부터 8대 아달라왕(阿達羅王), 중간이 53대 신덕왕(神德王), 맨 아래가 54대 경명왕(景明王)의 능으로 전한다. 세 왕 모두 박 씨 성을 가진 왕이다. 각 왕릉의 둘레는 아달라왕릉 42미터, 신덕왕릉 63미터, 경명왕릉 53미터에 이른다. 삼릉을 찾은 이유는 능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삼릉을 둘러싼 솔숲이 궁금해서다. 이리 휘고 저리 굽은 소나무들이 능 주변으로 빼곡하다. 굵은 소나무들이 있고 가는 소나무도 있다. 홀로 떨어져 푸른 소나무들이 있고 주변 풀들과 어우러져 함께 소나무들도 있다. 소나무 껍질은 거북이 등껍질처럼 딱딱하고 투박하다. 울창한 소나무 숲에 서린 기운은 서늘하기만 하다.

삼릉의 소나무가 이렇게 구불거리는 모양을 가지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신라시대 경주는 17만 호(戶, 가구수)가 살던 대도시였다. 도시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목재가 필요했는데 주된 재료는 소나무였다. 곧고 바른 소나무는 죄다 베어져 나갔다. 그렇게 남은 것이 이렇게 구불거리고 이리저리 휘어진 소나무다. 삼릉의 구부러진 소나무를 보고 있으니 곧고 바르게 사는 것도 좋지만, 때에 따라 구불거리고 휘어지며 사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무엇이 그토록 간절했을까, 경주 남산
삼릉에 온 김에 남산에 간다. 삼릉은 경주 남산을 오르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남산은 북쪽의 금오봉(468미터), 남쪽의 고위봉(494미터)을 축으로 동서가 4킬로미터, 남북이 10킬로미터에 달하는 타원형의 산으로 왕이 살았던 서라벌 궁성인 월성의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고 해서 남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높이가 500미터도 채 되지 않는 낮은 산이지만 깊이는 헤아릴 수 없이 깊다.
(위)삼릉, (아래)삼릉 소나무숲
남산에는 불상과 탑이 많다. 석불 80체, 석탑 61기가 남산 전역에 흩어져 있다. 절터도 무려 122곳이나 된다. 남산에 와서 불상 앞에 서고 텅 빈 절터를 거닐 때마다 지금까지 내가 낸 화와 내가 부린 짜증들이 정말 정말 별것 아니고, 그냥 웃으며 넘길 수도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곤 한다. 삼릉골을 따라가며 불상들을 만나고, 그 불상들이 입가에 맴도는 희미한 미소 앞에 서 보시길. 당신도 그런 생각이 들 테니까 말이다.

삼릉골에는 모두 10기가 넘는 부처가 있는데, 가장 먼저 석조여래좌상과 만난다. 그런데 머리가 없다. 1964년 8월 동국대학교 학생들에 의해 발견했을 때부터 머리가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보아 신라 전성기인 8세기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 어깨에서 매듭지어 무릎 아래로 드리운 두 줄의 영총(纓總) 장식이 매우 사실적이고 섬세하게 조각돼 있다.

석조여래좌상에서 10분쯤 더 오르면 계곡 건너 왼편에 자리한 ‘삼릉골 마애선각 육존불’을 만날 수 있다. 바위 면에 붓으로 그린 듯이 자연스럽게 여섯 부처가 선각되어 있다. 바위 우측은 석가삼존불이고, 좌측엔 아미타삼존불이다. 마애선각 육존불을 지나 20여 미터를 더 내려가면, 결가부좌를 하고 의젓하게 앉아 있는 석조불이 보인다. ‘삼릉골 석불좌상’이다. 시멘트로 대충 발라 흉측하던 불상을 보수하고 본래 자리를 발견하여 제 자리에 안치했다. 석불 아래에는 삼층석탑이 있었는데, 석탑은 1930년 일제강점기에 경주국립박물관으로 옮겼고 그 자리에는 표식만 있다.

의젓하게 앉아 있는 삼릉골 석불좌상
걸어서 만나는 불상
꼭 산을 오르지 않아도 남산 자락에는 걸어서 만날 수 있는 불상들이 많다. 대표적인 곳이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이다. 7세기 중반 대략 600년대 중반 조성된 불상이다. 우리나라 불상 중 바위에 조성되는 ‘불상의 시초’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부처님과 보살님의 얼굴 표정이 근엄함과는 거리가 멀다. 입가에는 여유로운 웃음이 묻어 있는데 꼭 마음씨 좋은 옆집 청년을 보는 것만 같다. 삼배를 하고 소원을 빌면 다 들어주실 것 같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남산의 불상들이 몸에 비해 머리가 큰 것을 알 수 있다. 이유가 뭘까? 남산의 부처님은 높은 곳에 조성됐기 때문에 참배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밑에서 위를 보게 된다. 그렇기에 머리가 커야 균형감이 맞다. 신자의 시선에 맞춰서 불상을 만든 것이다.

불곡 마애여래좌상과 남산 탑곡마애불상군도 접근하기가 쉽다. 골짜기를 따라 난 오솔길을 오르다 보면 바위 속 숨은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 커다란 바위에 깊이가 1미터나 되는 석굴을 파고 그 속에 여래좌상을 조각했다. 은은하게 미소 짓고 있는 불곡 마애여래좌상은 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조형미가 특징이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는 모습이 꼭 할머니 같다고 해서 ‘할매 부처’로도 불린다. 남산에 있는 불상 중 가장 오래된 부처님이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삼릉골 마애선각 육존불, 인자한 미소의 불곡 마애여래좌상, 몸에 비해 머리가 큰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탑골마애불상군은 높이 10미터, 둘레 40미터의 바위 면에 불상과 비천, 보살, 승려, 탑 등 다양한 모습이 새겨 놓았다. 조각한 사람이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불교의 세계를 구현하려고 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남산에 있는 불교 유적 중 가장 많은 조각이 새겨져 있다.

남산의 부처님들은 조금은 못나고 조금은 투박하다. 그래서 더 정겹고 반갑다. 그 앞에서 뭔가 간절한 기도를 드리기보다는 마주 보고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부처님, 요즘 좀 힘드네요. 미운 사람의 얼굴이 자꾸만 떠오르네요.” 이렇게 투정이라도 부리다 보면 답답한 마음 한구석이 뚫리고, 어지러운 삶의 타래가 조금은 풀릴 것 같기도 하다.

남산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곳
(위)서출지, (아래)남산동 동서삼층석탑
남산을 찾았다면 남산동 동서삼층석탑과 서출지도 함께 돌아보자. 동서삼층석탑은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서로 다른 양식의 두 탑이 쌍탑을 이루고 있는데 그 조화와 균형미가 예사롭지 않다. 쌍둥이 탑을 지나면 남산동 입구인데 여기에 서출지가 있다. 영화 ‘신라의 달밤’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다. 서출지(書出池)는 ‘편지가 나온 연못’이라는 뜻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21대 소지왕이 까마귀를 따라 이곳에 왔다가 연못에서 나온 노인으로부터 쪽지를 받고 죽음을 면했다고 한다. 연못 서북쪽에 정자 이요당(二樂堂)이 들어서 있다.

남산 여행의 마지막은 포석정지다. 통일신라 헌강왕 때는 태평성대로 꼽힌다. 포석정은 이때 만들어진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하던 왕의 연회 장소였다. 유상곡수연은 흐르는 물길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오는 동안 시(詩)를 지어 읊고, 시를 제대로 짓지 못하면 벌주를 마시는 유희다. 지금 정자는 사라졌고 물길만 남아 있다. 물길 모양이 전복을 닮아 ‘전복 포’(鮑) 자를 쓴다. 물길은 약 22미터다.

포석정지
헌강왕 시절의 짧은 태평성대가 끝나고 37대 선덕왕부터 56대 마지막 경순왕까지의 신라는 격변이었다. 한순간도 왕권이 안정된 적이 없었다. 신라는 점점 기울고 있었다. 그 사이 지방 호족이 득세하고 궁예의 태봉과 견훤의 후백제, 고려 등을 잇달아 건국했다. 그렇게 경순왕 때에 이르러 신라는 결국 멸망했는데, 그때 경순왕은 포석정에서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역사는 조금 다르게 포석정을 조명하고 있기도 하다. 포석정 인근에서 제사용품이 대거 발굴되었는데, 왕이 포석정에 행차한 것은 연회가 아니라 왕실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였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고 나름 설득력도 얻고 있다. 그러나 어쨌든 포석정은 신라의 마지막을 상징하는 장소임에는 분명하다.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만나다, 최부잣집
남산 여행은 계림 뒤편 교동에서 끝난다. 신라 때 학교 시설인 국학이 있었던 마을이다. 이 마을 한가운데에 최부잣집이 있는데 들러볼 만하다. 흔히 ‘9대 진사, 12대 만석꾼’으로 회자되는 집이다. 부자는 3대를 넘기기 힘들다고 하지만 최부잣집은 3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부를 유지했고, 마지막에는 기부와 독립군 자금으로 모든 재산을 기부함으로써 영원한 부자로 남았다.

최부잣집에서는 면암 최익현, 구한말 의병장 신돌석, 의친왕 이강 공 등이 묵었다. 스웨덴의 구스타브 국왕도 최부잣집과 인연이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스웨덴의 황태자였던 구스타브 6세는 신혼여행차 한국을 방문했고 당시 조선의 명가인 최부잣집에서 묵었다. 최준 선생의 인품에 반했던 그는 훗날 여성 전용공간이라 둘러보지 못했던 안채의 모습이 궁금해 한국 전쟁에 파견한 간호장교들에게 사진을 찍어 오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최부잣집 목재곳간, 최부잣집의 가을 풍경
최부잣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은 바로 곳간이다. 정면 5칸, 측면 2칸 크기로 지어졌는데, 현존하는 목재 곳간 가운데 가장 크다. 쌀 800석을 보관할 수 있는 규모라고. 최부자는 흉년 때 이 곳간을 열어 쌀을 나눠줌으로써 사방 100리(약 40킬로미터)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해 자칫 부자로서 사기 쉬운 원성을 듣지 않았다고 한다.

최부잣집이 실천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배경에는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육훈이 자리 잡고 있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말라’,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등 가훈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가르침이다. 실제로 최부잣집의 1년 쌀 생산량이 대략 3,000석쯤이었다고 하는데 1,000석은 집안에서 사용하고, 1,000석은 과객에게 베풀었고, 나머지 1,000석은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 줘 농민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

월정교
최부잣집을 나오면 지난 2018년 복원된 월정교가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760년 경덕왕 때에 궁궐 남쪽 문천 위에 일정교와 월정교 두 다리를 놓았다”는 기록이 있다. 원효대사가 월정교를 건너다 자신을 찾고 있는 신하를 보고는 다리에서 떨어져 옷을 입은 채로 물에 빠졌는데, 신하가 원효대사를 요석궁으로 데리고 가 옷을 말리게 했다가 아들 설총을 가지게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도 유유히 흐르고 있는 문전 위로 복원된 월정교는 경주를 들른 젊은 연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월정교 주차장을 나와 집으로 가는 고속도로에 올라섰다. 도로 끝에 노을이 번져 오고 있다. 오늘은 불상의 아름다움을 만났고, 그 앞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몇 가지 후회와 미련이 별것 아니었음을 깨닫게 됐다. 경주에서 보낸 시간 동안 나는 번잡한 삶과 일상에서 조금은 도망칠 수 있었다. 문득 얼마 전 보았던 어떤 드라마 제목이 떠오른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Tip 경주 여행 정보
쌈밥
경부고속도로 경주나들목으로 나와 오릉사거리를 지나 35번 국도를 따르면 삼릉 앞이다. 표지판이 잘 되어 있다. 삼릉 가까이 나정과 양산재가 있다. 신라 탄생 신화가 깃든 곳이다. 나정은 박혁거세 탄생 신화에 얽힌 장소, 양산재는 신라 건국 이전의 6촌을 모시는 사당이다. 남산 이정표는 두 가지 종류로 세워져 있다. 노란색 글씨는 문화재 탐방 코스, 흰색은 단순 산행 코스다. 경주의 먹을거리로는 쌈밥과 해장국이 유명하다. 쌈밥집은 대능원 동편 골목 후문 쪽에 많이 있는데, 구로쌈밥, 삼포쌈밥이 유명하다. 상추와 배추, 호박 등과 다양한 양념장이 나온다. 경주역 부근 팔우정 로터리에는 해장국집 골목이 있다. 해초와 콩나물, 메밀묵을 넣고 시원하게 끓여낸다.

[글과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0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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