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를 연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

이각범 한국과학기술원 명예교수 2025. 10. 18.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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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前 대통령 서거 10주기 세미나 발제문
이각범 한국과학기술원 명예교수

1. 이승만 대통령은 해방후 혼란 속에서 우리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였다. 당대 최고의 지성이었던 그는 전후 전개될 세계 정치지형의 변화를 정확하게 예지하였다. 당시 지식인들의 대다수가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에 경도되었던 분위기를 뚫고 이승만대통령은 ‘자유 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

자유민주국가는 자유와 평등을 같이 추구하며 인권과 진보를 지키는 정치체제를 갖춘다. 그에 반해 좌파는 자유와 평등의 양분법을 채택하여 불평등이 없는 사회주의 체제를 선전하였다. 지식인들 대부분도 그 선전 뒤에 숨겨진 폭력적 독재의 진실을 간파하지 못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 없는 평등’과 ‘인권 없는 진보’의 허구성을 설파하였다. 해방군으로서 붉은 군대가 진주할 나라는 주권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낭만적 자유주의와 국민주권에 대한 신념을 가진 이상주의자였으면서도 이를 실현하기 위한 물적 기반 (material basis)이 필수 불가결하다는 것을 통찰한 현실주의자였다.

봉건사회로부터 근대사회로의 이행은 ‘신분에서 계약으로’ 요약된다. 이승만대통령은 농지개혁을 단행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근대혁명을 이룩하였다. 경제적 자유를 세우고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토대를 세웠다.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전쟁에서 연합군과 함께 공산침략을 격퇴하였다. 커다란 민족적 시련을 겪고도 이승만대통령의 외교능력은 세계적 천재라는 칭송을 받았다. 전후 한반도의 안전과 지속적 평화를 담보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기 위하여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가난한 약소국의 한계를 초월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결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전후부흥을 위한 대규모 경제원조와 군사원조를 받아내었다. 이로써 신생독립국 대한민국은 2차대전 이후 세계의 주류국가들이 만든 동맹의 당당한 일원이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의 와중에도 독도를 포함한 평화선 선포로 대한민국의 해양주권을 바로 세운 탁월한 정세분석가였다. 당시 신설된 해무청에 해안경비대의 임무를 맡겨 평화선을 월경하여 조업하던 일본 어선들을 다수 나포하였다. 이 조치는 이승만대통령의 해양중시 전략의 일환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교육과 과학입국을 통하여 후진국 대한민국이 미래의 선진국이 될 수 있는 기틀을 닦았다.

2.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목표는 조국근대화였다. 근대화사업은 시장경제의 바탕 위에서 계획경제의 효율성을 가미하여 이루어졌다. 제1차경제개발5개년 계획의 기준연도인 1960년에 1인당 국민소득 68불의 자본빈국, 자원빈국, 기술후진국 대한민국에서 국가주도 산업화는 필연이었다. 정부가 산업화 전략을 수립하고, 필요한 자금을 해외에서 차입하여 실력 있는 기업에 분배하는 방식으로 본격적 산업화는 시작되었다. 노동집약적인 단순 가공조립제품으로 시작하여 고부가가치 제품생산으로 진전되었다. 이렇게 산업구조가 고도화되었다. 열악한 경제수준의 출발선에거 정부가 가용한 국내외 자원을 총동원하여 성장동력이 큰 부문에 집중 투입(big-push)함으로써 성장의 족쇄를 끊는 (hit the ceiling) 전형적 불균형 성장전략이 불가피하였다. 이에 균형성장, 안정성장의 기틀을 다짐으로써 10% 안팎의 고도성장이 1970년대 후반까지 계속되었다. 대한민국은 중진국 반열에 오르고 중산층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경제가 성숙되면서 사회개발에 시동이 걸렸다. 의료보험공단이 설립되고, 전 국민이 의료보험혜택을 받게 되었다.

미국 카터 대통령 취임 후의 주한미군철수 움직임은 동북아시아 안보질서의 리셋을 가져왔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싸우면서 건설하자”는 구호 아래” ‘일면 건설, 일면 국방’의 국가명운을 건 싸움을 전개하였다.

박정희 정부의 경제성장을 권위주의적 통치하의 위계적 계획에 의한 압축성장이라고 한다. 박정희 정부의 공로는 거의 무정부상태로 치닫던 혼란을 극복하고, 강고한 리더십으로 동원할 수 있는 국가적 에너지를 집중하여 한강의 기적을 이룬데 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3. 권위주의적 통치의 마지막 단락인 5공체제는 6월항쟁과 ’87, ’88, ’89 노사대분규를 겪으며 무력화되었다. 김영삼대통령은 나라를 위한 단심(丹心)으로 민주화투쟁을 전개한 끝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닫힌 압축성장시대를 종료하고, 개방과 개혁의 민주화시대를 열었다. 국민의 조용한 다수가 바라던 민주화는 건국정신으로의 복귀였다. 이에 김영삼대통령은 유신헌법을 철폐하고 대통령직선제를 명시한 헌법개정의 주역이 되었다. 군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차단함으로써 민주화로의 전진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확실히 통과하도록 하였다. 우리사회 전반의 불합리하고, 낙후된 관행과 규범을 개혁하였다. 부정부패를 척결하였고,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정경유착의 고리를 과감하게 단절하였다.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를 실시하여 우리사회를 투명하게 바꿨다.

김영삼 대통령은 문명사적 분기점에서 국가혁신에 적극적이었다. ‘산업화에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장서자’는 각오로 지식정보혁명시대에 당당히 진군하였다. 취임 첫해부터 초고속인터넷통신망 기획과 건설에 착수하였고, 우리의 기술로 디지털 이동통신시대에 진입하였다. 재임 마지막해의 ‘벤처산업 특별법’ 제정에 이르기까지 문민정부 5년간 디지털 생태계를 완성하였다.

세계를 양대 블록으로 갈랐던 구소련⦁동구권의 해체로 세계무역에는 전면적 개방을 제어하던 걸림돌이 없어졌다.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가 온 것이다. 이에 김영삼대통령은 세계일류국가로의 부상을 목표로 우리나라의 제도와 관행을 구조적으로 개혁하는 세계화전략을 펼쳐나갔다.

지금 세계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 전개되어 온 추세를 유턴하는 새로운 질서재편기에 들어섰다. 동맹과 자유무역에 기반한 ‘팍스 아메리카나’의 맹주 미국이 ‘자국중심주의’로 선회하였기 때문이다.

세계적 흐름을 정확하게 읽고 나라를 세운 이승만 건국대통령, 근대화로 나라를 업그레이드한 박정희 산업화대통령, 개혁⦁개방으로 새로운 시대를 연 김영삼 민주화대통령 세분의 리더십과 천하위공(天下爲公) 정신이 절실해지는 오늘이다.

◇논평1: 이승만을 둘러싼 왜곡과 진실/신철식 우호문화재단 이사장

신철식 우호문화재단 이사장

이승만 대통령에 대하여는 공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과오에 대하여만 왜곡되고 과장되게 알려져 있다. 첫째, 이승만 대통령은 두 번의 개헌과 3.15부정선거때문에 독재자로 알려져 있다. 물론 초대대통령의 임기 제한을 해제하여 장기집권의 길을 열어 주었다는 과오가 있지만, 두 번의 개헌은 자유민주정치체제(대통령직선제)와 자유시장경제체제를 확립하기 위하 것이었고, 3.15부정선거는 대통령선거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고 부통령선거에서 일어난 일이다. 4.19시위에 대한 탄압으로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태를 뒤늦게 알게 된 대통령은 병원으로 달려가 부상당한 학생들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불의를 보고도 일어나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지. 젊은이들이 장하다.”라고 말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이 원한다면 하야한다.”라는 성명서를 내고 스스로 사임했다. 이는 민주주의 완성을 위한 결단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이승만은 시민을 버리고 혼자 피신하였는가?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임시수도를 대전, 부산 등지로 옮기면서 전시 국정에 몰입하고 대한민국의 저력으로는 대적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전시외교를 펼쳐 미군과 유엔군의 참전을 이끌어냈다. 결국 자유 진영 16개국의 참전과 44개국의 후원에 힘입어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냈다.

셋째, 이승만의 정읍선언이 한반도 분단을 야기했다는 주장이 있다. 1946년 6월 3일의 정읍선언은, 미·소공동위원회도 실패하였고 북한은 이미 공산정권을 수립하였으니 남한만이라도 자유 조직체를 만들어 국제여론화를 통해 북한에 의한 공산화를 막아 한반도에 자유통일독립정부를 세우는 노력을 경주하자는 것이었다. 이승만의 정읍 선언이 없었다면 한반도는 일찌기 공산화되고 말았을 것이다.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공과는 그야말로 객관적인 사실에 의거하여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논평2: 실패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구하는 길/좌승희 아주대 초빙교수

좌승희 아주대 초빙교수

2차대전이후 자본주의진영은 평등한 경제를 추구하는 공산·사회주의체제와의 경쟁 속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내걸고 재분배복지국가를 지향해왔다. 그러나 60년대이후부터 복지국가의 이상과는 정반대되는 저성장·양극화에 직면하고 있다. 공산권은 극도의 실패에 직면한 북한을 남기고 90년대에 모두 몰락하였다. 한국의 경우는 1960~80년대까지의 개발연대는 연평균 8~9%의 동반성장을 실현했지만, 정치민주화이후에는 30여년간 10년마다 평균 2%포인트씩의 성장둔화와 소득분배의 악화를 경험해 왔다.

그동안 국내외 좌파세력은 양극화정체가 기업때문이라 주장해 왔지만, 필자는 작금의 세계와 한국의 양극화정체는 오히려 반기업적 재분배정책을 강화해 온 복지국가정책이 기업의 성장동기와 국민의 일할 동기를 차단하여 태업을 조장했기 때문임을 밝힌 바가 있다.

한국의 민주화시대를 우파시대와 좌파시대로 나누어 분석해보면, 우파시대에는 기업의 성장이 경제성장과 분배개선의 효과를 보이지만 좌파시대에는 오히려 악화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복지재정지출은 모든 경우 성장둔화요인으로 작용하고 노조는 우파시대에는 성장과 분배에 영향이 없으나 좌파시대에는 오히려 악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문재인정부 이후 현재는 기업의 성장·분배 개선효과는 사라지고 정부의 복지재정지출 확대가 성장과 분배를 결정하는 사회주의체제와 흡사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현재 한국은 이미 양극화정체라는 선진국함정에 빠졌다. 이승만 건국과 박정희 기적, 전두환 수성과 김영삼 우파민주화이후, 본격화된 좌파민주화 시대가 저성장·양극화 추세를 고착화시켰다. 이를 타개하려면 박정희시대 세계 최고의 동반성장 기적을 가져온, “스스로 돕는 국민과 기업을 도와야 부자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새마을운동의 창발적 차별화전략으로 민주정치의 평등주의를 보완해야 한다. 가난을 벗어나려 노력하는 국민을 복지의 노예로 만드는 나라는 실패한다. 서구의 실패하는 복지국가가 반면교사이다.

◇논평3: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의 민주화의 보완적 관계/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대통령은 ’변혁적 리더십‘을 통해 대한민국의 건국, 산업화, 민주화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변혁적 리더십은 리더가 조직 구성원들에게 영감을 주고, 그들의 고차원적인 목표와 가치를 자극하여 기대 이상의 성과를 달성하도록 이끄는 방식이다.

변혁적 리더십의 개념을 대통령직에 적용했을 때의 구체적인 행동과 효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상적 영향력이다. 대통령 스스로가 확고한 신념을 보여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얻고,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리더의 가치관과 비전을 따르게 만드는 것이다. 둘째, 영감적 동기부여이다. 국가적 위기나 침체기에 희망적이고 명확한 장기 비전을 제시하여 국민들에게 ‘할 수 있다’는 신념과 낙관주의를 심어준다. 가령, ’하면 된다‘, ’한강의 기적“등을 통해 국민적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결집시킨다. 셋째, 지적 자극이다. 과거의 관습이나 해결책에 얽매이지 않고, 새롭고 혁신적인 정책이나 문제해결방식을 찾도록 정부 조직과 사회 전반에 자극을 준다. 예를 들어, 금융실명제 전격 실시, 획기적인 구조개혁 단행이 이에 해당된다. 결국, 변혁적 리더십을 펼치는 대통령은 단순히 법과 제도를 집행하는 관리자가 아니라, 국가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개혁가이자 선구자 역할을 수행한다.

모든 국가는 체제 발전을 위해 다섯 가지 유형의 도전을 겪게 된다. 첫째, 충성과 헌신의 ‘민족 만들기’, 둘째, 침투와 통합의 ‘나라 만들기’, 셋째, 국내경제의 생산능력을 증대시키는 ‘경제 만들기’, 넷째, 사회 각 집단이 정책 결정에 의견을 개진하는 ‘참여’, 다섯째, 소득과 부의 ‘분배’이다. 그런데, 정치 발전을 이룩한 선진국들은 이런 도전들이 순차적으로 나타나면서 문제가 해결된 반면, 후진국에서는 이런 도전들이 한꺼번에 나타나고 해결능력이 없기 때문에 발전하지 못한다. .

최대 빈곤국이었던 대한민국이 빠른 시일 내에 세계를 놀라게 하는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건국→산업화→민주화를 단계적으로 거치며 기적적으로 연 착륙했기 때문이다. ‘단계적 발전론’이 함축하고 있는 것은 매 발전단계마다 이를 이끌어가는 탁월한 국가 지도가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국은 이승만 대통령, 산업화는 박정희 대통령, 민주화는 김영삼 대통령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탁월한 대통령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없다는 뜻이다.

또한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의 민주화는 보완적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건국이 산업화의 밑거름이 되었고, 산업화는 민주화의 초석이 되었으며, 민주화는 산업화를 지속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 대통령들은 이념과 진영의 논리에서 벗어나 거시적인 관점에서 높이 평가받아야만 한다. 특히, 냉전과 분단의 냉엄한 현실 속에서 자유민주주의와 반공이라는 특유의 신념과 열정으로 ‘나라 만들기’의 토대를 만든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에 대해 독재자라는 주홍글씨로 폄훼·왜곡해서는 결코 안 되고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똑같은 논리로 박정희 대통령은 5.16이나 유신체제 같은 독재적 행위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있지만 최빈국에서 벗어나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하고, 전례 없는 경제기적을 달성한 업적은 매우 크다. 따라서 기승전결(起承轉結) 중 나쁜 일부 결과만 보고 나머지 전체를 모두 부정하는 것은 부당하다.

김영삼 대통령은 IMF의 과오로 그동안 저평가된 면이 있다. 하지만 한국 민주주의의 제도적 완성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업적을 남긴 것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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