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있으면 고소득, 푸른 작업복 입는 2030…"쇠 뚫어 취업난 뚫어요"
AI도 두렵지 않다, 요즘 주목받는 ‘네오블루칼라’
![한국폴리텍대 울산캠퍼스에서 한 학생이 용접 실습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18/joongangsunday/20251018013940485rewt.jpg)
여기서 쇠를 자르고, 저 너머에선 쇠를 붙였다. 쇠에도 냄새가 있다. 그 쇠 냄새가 지난 2일 울산시 한국폴리텍대 에너지산업설비과 실습실에 퍼졌다. 10월의 선선함에도 뜨거움이 가득했다.
쇠, 그러니까 철강은 제조업에 필요한 밑재료다. 조선과 자동차·반도체는 ‘철공예’로 부른다. 손기술이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삼성이 베트남을 반도체 해외 생산기지로 낙점할 때 기준 중 하나가 ‘젓가락 문화’였다는 일화가 있다. 손기술 때문이다. 실습실에서 쇠 절단 작업 중이던 박모(24)씨는 “정교한 손기술로 취업난을 뚫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쇠를 뚫고 있다”며 땀을 닦았다. 경기도의 한 마이스터고에 다니는 이모(18)군도 “일자리를 위해선 기술 먼저, 대학은 나중에”라고 말했다.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하려는 2030세대가 실습에 집중하고 있다. [사진 진윤근]](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18/joongangsunday/20251018013941778zfrb.jpg)
이런 취업난 속 김씨와 이군처럼 푸른 작업복을 입은 20대 블루칼라가 늘고 있다. 이들은 고숙련 기술로 무장하고 고소득을 향해 뛰고 있다. 3D(Dirty·Dangerous·Difficult)를 도맡으며 저임금을 받는 기존의 블루칼라 이미지와 확연히 다르다. 새로운 블루칼라, 이른바 ‘네오블루칼라(Neo-Blue Collar)’다. 이들은 “땀 흘린 만큼 보상이 따른다”며 만족도도 높다. 실제로 진학사 캐치가 Z세대(1990년대 후반 이후 출생)에게 물어봤다. ‘연봉 7000만원 교대근무 블루칼라’와 ‘연봉 3000만원 야근 없는 화이트칼라’ 중 58%가 블루칼라를 택했다.

마침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일 열린 ‘제조 AI 전환(MAX) 얼라이언스 전략회의’에서 2030년까지 제조기업의 AI 도입률을 40%로 끌어올리기 위해 ‘AI 팩토리(공장)’ 선도사업장을 500개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앞서 HD현대미포는 “AI 로봇을 투입해 용접 검사와 조립 시간을 12.5% 단축했다”고 밝혔고, GS칼텍스는 “AI로 정유 공정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해 비용을 20% 절감했다”고 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이런 제조업 AI의 역할은 데이터 분석과 평가에 집중된다.
고윤열 울산과학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쇠를 잘라 붙이고(용접), 그 쇠로 정유관을 만들며(제관), 그 정유관을 설치(배관)하는 일은 결국 ‘사람’이 한다”며 “AI가 컴퓨터 속 데이터는 무한대로 학습할 수 있어도, 컴퓨터 밖 세상은 배울 길이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현장과 손기술, 이른바 ‘AI 시대의 역설’이다. 고 교수는 “20대 중심의 네오블루칼라는 오히려 AI를 이용하면서 고도로 진화하는 중”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한국폴리텍대에서는 챗GPT 등을 이용해 쇠를 절단하고 배관 설계도를 그린다.
명장의 증가는 우리 사회에서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동화 흐름에도 얼마나 필요한지 일깨우는 척도가 될 수 있다. 명장은 고도의 숙련된 기술자에게 부여하는 칭호다. 1986년부터 올해까지 명장은 719명. 이중 공예·서비스 직종을 제외한 제조업 분야 명장은 400명 남짓이다. 22개 분야 37개 직종으로 시작했다가 2018년부터는 37개 분야 97개 직종으로 선정 범위가 넓어졌다. 이우영 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명장 선정 분야가 전통 산업·공학 중심에서 금형·차량·소재 등으로 세분됐듯, 제조업은 AI 시대에도 도태되지 않고, 오히려 분야를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배사들이 한 구축 주택 현장에서 작업하고 있다. [중앙포토]](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18/joongangsunday/20251018013944443vctj.jpg)

3년 전 위험물 기능장을 취득한 이영재(31)씨는 현재 화장품 제조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씨는 “위험물 취급과 관리에 대한 안전성을 평가하는 자격증이기 때문에 화장품은 물론 고무·금·염료 등 다양한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다”며 “우리 공장에서 일부 제조는 자동화했지만, 위험물 취급은 기계보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더 높다”고 말했다. 이호준(29)씨는 지난해 한국폴리텍대를 졸업하고 가스 공급업체에 취업했다. 그는 ABS(미국선급협회) 국제 선급 용접 등 6개의 국가기술자격증을 보유했다. 이씨는 “현장에서 기술을 활용할수록 나 자신도 발전한다는 성취감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AI 시대의 네오블루칼라’는 우리만의 현상이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Z세대를 ‘공구 벨트(tool belt) 세대’로 정의하며 이들이 냉난방·배관·전기 등 자동화가 어려운 분야로 몰린다고 보도했다. 배관공만 해도 연평균 9만348달러(약 1억2800만원)를 버는 ‘고소득’이 이유 중 하나라는 분석이다.
최성용 서울여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취업난 속 만족감과 자기계발 가능성이 높은 네오블루칼라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이 높아졌다”며 “또 화이트칼라가 은퇴하는 연령에도 일을 계속할 수 있어 선호도는 계속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네오블루칼라의 시대’로 단정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블루칼라의 수요가 공급을 넘어선 이유도 그간의 저임금, 부정적 인식으로 인한 인력 이탈 때문. 11년 차 배관 기술자인 정승훈(39)씨의 “이제 막 일을 배우려는 신입은 많아도 10년 이상 일한 30~40대 숙련공은 드물다”는 발언에는 이런 현장의 어려움도 묻어난다. 30년 넘게 특고압 케이블 포설 작업을 했다는 김형수(59)씨는 “젊은 친구들이 자격증은 따도, 막상 현장에 오면 며칠 못 가 그만두는 게 부지기수”라며 “일감은 계속 밀려드는데 동료들은 은퇴가 머지않아 언제까지 일을 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도 했다.
이종선 교수는 “블루칼라 종사자의 80% 이상이 여전히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며 “대다수가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정규직의 절반도 안 되는 월급을 받고, 업황에 따라 일감이 꾸준히 보장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산재 신청도 어려운데 이를 보완할 정부의 제도 마련과 함께 기술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적 인식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고 제언했다.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