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푸치니의 아픈 손가락…비운의 명작 오페라

전남일보 2025. 10. 16.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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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제비’
푸치니의 원숙기 작품 불구
완성도·구성 등 미흡 실패작
명곡 ‘도레타의 아리아’ 남겨
영화 ‘전망 좋은 방’ 배경음악
푸치니의 오페라 '제비' 공연 모습(2023~2024년).  출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1980년대 후반 거장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영화 <전망 좋은 방-A room with a view, 1989>은 아카데미상을 비롯하여 세계 영화계를 휩쓴 명작 중 하나이다. 세계적인 명배우들이 함께한 이 영화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히는 이탈리아 피렌체를 배경으로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피렌체를 생각하면 떠 오르는 푸치니의 <잔니 스끼끼>의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O mio babbino caro)'가 영화 시작과 함께 흘러나오는 이 영화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과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등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빛나게 하고 있다. 이 영화 포스터에는 '인생을 영원히 바꿀 가슴 뛰는 첫 키스'라는 문구가 선명히 적혀 있는데 이 문구는 당시 온 세상 젊은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였다. 그래서 첫 키스 장면에 등장하는 푸치니의 오페라 <제비-La Rondine, 1917>에 아리아 '도레타의 꿈(Chi il bel sogno di Doretta)'은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력히 관객들 기억에 남는 영화음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아리아가 흐르며 아름다운 정경 아래 주인공 조시와 루시가 첫 키스를 하는 장면은 아름다운 음성과 흐드러져 이 영화의 가장 극적인 장면을 선사한다.
푸치니의 오페라 '제비'의 마그다의 아리아 도레타의 꿈이 흘러나오는 영화 '전망이 좋은 방' 중 가장 하일라이트인 첫 키스 장면.
영화 '전망 좋은 방' 포스터.

영화 <전망 좋은 방>에서 각인된 푸치니의 오페라 <제비>는 1차 세계대전 중인 1916년 작곡되어 1917년 어렵게 무대에 올려지게 된다. 당시 국제 정세의 미묘한 변화로 원래 상연하기로 한 오스트리아에서 공연되지 못하고 이탈리아어로 각색되어 중립국인 모나코 몬테카를로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이 작품이 완성될 시기에는 죽음이 난무하는 혼란의 시대로 이러한 영향 때문에, 푸치니의 원숙기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죽기 살기로 사랑하거나 가슴을 찢는 듯한 비애나 분노 등의 강렬함과 애절함이 없어서 그런지 죽는 사람도 없고 극적인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잔잔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중심이지만 이 오페라가 낭만적인 요소로만 채워졌다고도 볼 수 없다. 

1910년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서부 아가씨>가 초연된 이후 6년이 지나 오페라 <제비>가 완성되었다. <제비>는 푸치니의 음악세계를 펼쳐 보이는 원숙기의 작품으로 오페레타적인 분위기를 갖춘 산뜻하고 세련된 음악극을 시도하였으나 이러한 시도와는 달리 그의 오페라 중 가장 실패한 작품이 되었다. 가장 주된 이유로 이야기 내용의 구성이 시대에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특별히 대본의 완성도와 그 구성에 특별한 신경을 썼던 푸치니가 당시 전쟁의 혼란스러운 유럽의 상황 때문이라는 후문이 있다. 
푸치니의 오페라 '제비'에서 루제로 역의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  출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3막으로 구성된 이 오페라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무대는 프랑스 제2 제국 시기의 파리이며, 여주인공 마그다는 부유한 은행가 람발도가 후원하는 고급 호스티스로 매일 화려한 파티와 함께 향락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녀는 후원자 람발도가 그녀의 요구를 뭐든 다 들어 주어서 화려하고 부족함이 없는 생활을 하지만 마그다는 자기 주위에는 허구와 가식으로 가득 찬 사람들만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진실한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이 생긴다. 이 때문에 그녀는 옛날 순박했던 첫사랑은 가난한 고학생으로 불현듯 그를 떠올리며 그리움에 사무친다. 마그다는 평소와 다르게 평범하게 차려입고 간 한 파티장에서 자신의 첫사랑을 연상하게 하는 청년 루제로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둘은 도피하여 프랑스 남부 니스에 행복한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하지만 세상과 등지며 사는 그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부닥쳐 있다. 마그다의 과거에 관하여 모르는 루제로는 그녀와의 결혼을 결심하고 자신의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 마그다와의 결혼을 허락을 구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결혼할 사람이 순결하며 명예로운 여인이라면 환영한다는 뜻을 전달받지만, 마그다는 자신이 사랑하는 루제로에게 어울리는 순결한 여인이 아니라며, 자신을 찾아온 람발도와 제비처럼 다시 예전의 마그다로 돌아가겠다는 노래를 부르며 이오페 <제비>는 막을 내린다.

오페라의 내용은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와 많은 부분이 오마주가 된다. 하지만 <제비>는 <라 트라비아타>의 죽음으로 결말을 맞이하는 비련의 여주인공과 달리 여주인공의 잠시 일탈을 보는 듯한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는 결말로 상이하다. 상당히 비슷한 배경과 스토리 전개가 이루어지지만, 구조적 측면에서 <제비>는 부족함을 내보이고 있다. 
1917년 이탈리아 볼로냐 공연 포스터.

평소 품행이 단정치 못한 마그다에게 사랑하는 남자 루제로가 생기지만 그의 보수적인 집안은 마그다와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고 결혼이 성사되지 못하도록 방해하지만, 후에 둘의 혼인을 승낙하나 마그다는 떠난다는 내용의 스토리는 지금까지 봐왔던 푸치니의 다른 오페라와는 이질감이 있는 참신성 없는 구시대적 소재였다. 또한 등장인물이 나비부인이라든지 토스카처럼 보여줄 주요 등장인물이 없다는 점도 이 작품의 실패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인지 세계 1차 대전 중 무대에 올려진 이오페라는 그의 작품 중 가장 조잡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본과 구성의 약점은 푸치니의 음악과는 별개였다. <제비>는 이중 조성 패시지까지 포함된 세련된 화성의 사용 방법과 섬세한 오케스트레이션은 푸치니의 음악이 멈추지 않고 끝없이 발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했다. 또한 푸치니 특유의 아름답고 매혹적인 선율도 건재하며, 제1막에서 마그다의 두 개의 아리아와 제2막의 댄스음악은 걸작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이전 작품인 <서부의 아가씨>나 <나비부인>처럼 폭발적인 에너지는 없지만, 웅변과 매력이 넘치는 대목은 점점 발전해 가는 푸치니 내면의 음악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극으로서는 흥미와 감동 그리고 줄거리의 전체적인 짜임새가 없는 실패작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푸치니 오페라의 성공 공식이던 강렬한 서사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여주인공을 <제비>에게서는 볼 수 없다. 사랑을 위해 자신의 일탈 이후 새로운 사랑과 삶을 위한 투쟁 역시 이 작품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화려한 삶에 지루함을 느끼는 여주인공이 잠시 일탈을 하다가 그 삶이 자신하고 어울리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환락의 삶으로 돌아간다는 한 여인의 체념이 주를 이룬다. 아무리 수려한 음악으로 작품을 감싸 안아도 종합예술인 오페라는 시각적인 강렬함과 서사 없이는 관객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 그럼에도불구하고 푸치니의 <제비>의 마그다의 아리아 '도레타의 꿈'은 그의 명곡으로 수많은 소프라노에 의해 무대에서 불리고 세계인의 가슴을 뛰게 하는 영화의 한 장면 속 모두의 꿈 같은 키스를 소환하고 있다.  

광주시립오페라단 예술감독·문화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