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여행자] 당신은 왜 이 길을 걷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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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조개를 달고 지팡이를 짚은 채 800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을 걸었다. 왜일까. 그 유래는 예수의 열두 사도 중 한 명인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 지방으로 떠났다가 예루살렘에서 순교하고, 그의 유골이 스페인 산티아고에 안치된 데서 비롯됐다. 조개껍질 무늬처럼 사방으로 펼쳐진 수많은 길들. 그러나 노란 화살표와 조개 표식이 향하는 목적지는 단 하나, 바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다.
보통 여행지에서 만나는 여행자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를 묻는다.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이 지나온 길과 앞으로 펼쳐질 여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시작해 스페인을 가로지르는 일직선의 순례길에서는 질문이 단 하나뿐이다.
"당신은 왜 이 길을 걷고 있는가."
나는 여행과 인솔이 반복되는 긴 시간에 지쳐 있었다. 새로운 무언가에 목말라 있을 때, 남미 여행 중 만난 한 여행자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권했다.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를 읽으며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 삶이 바뀐다'는 문장을 만났고, 나도 이 길을 걸으면 내 삶도 변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나의 산티아고 순례가 시작됐다.
평소 여행을 할 때 특별한 정보를 준비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늘 메고 다니던 배낭 하나, 새로 산 운동화 한 켤레를 들고 프랑스 생장으로 향했다. 마을 꼭대기에 위치한 순례자 사무소에서 각 마을 간의 거리와 알베르게(순례자 숙소) 리스트가 적힌 종이 한 장을 받았다. 순례자 여권을 만들고 상징인 조개를 선물받은 후, 다음 날부터 무작정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첫날 피레네산맥을 넘는 길은 상상 이상으로 험난했다. 그 뒤로 이어지는 평지와 언덕, 대도시로 들어가는 길은 변화무쌍했지만, 나는 노란 화살표를 따라 묵묵히 걸었다. 목적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고, 표식은 우리를 안내하고 있었다. 더 이상의 준비는 필요 없었다.
걷다가 마을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오래된 성당이 나타났다. 성당 안에 들어가 조용히 앉아 몸과 마음을 쉬며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였다. 길은 오래된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었고, 걷다가 간단히 요기를 한 뒤 피곤한 몸을 알베르게 침대에 눕혀 수십 명의 순례자들과 함께 잠을 청했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산티아고를 향하고 있었다. 모두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있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혹은 따로 걷는 시간을 이어갔다.
걷다가 지치면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답답한 등산화를 벗으면 그만이었다. 스페인의 파란 하늘과 봄바람은 나에게 '조금만 더 가보라'며 속삭이는 듯했다.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걸으면, 어느새 그날의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봄의 순례길은 노란 유채꽃, 붉은 양귀비, 보랏빛 나팔꽃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느 날, 나이 든 인솔자가 중장년 순례자들에게 꽃을 설명하는 모습을 보았다. '언제까지 여행 인솔을 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내게 그 풍경은 답처럼 다가왔다. 나도 언젠가 이 길 위에서 사람들을 이끌며 살아갈 수 있겠다고.
걷기를 좋아하는 나는 누구보다 빠른 걸음으로 순례길을 걸었지만, 어느 순간 발이 비명을 질렀다. 함께 걷던 친구들은 모두 먼저 떠났고, 10일이 남은 시점부터는 한쪽 발을 밴드로 감싼 채 지팡이에 의지하며 천천히 걸었다. 매일 늦은 밤 숙소에 도착하는 날이 이어졌지만, 마침내 산티아고 대성당에 닿는 순간의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더 놀라운 건, 길 위에서 만났던 이들을 같은 날 대성당에서 다시 만났다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완주를 축하하며 포옹했다.

그렇다면, 그 길 이후 나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삶이 단 한 번에 바뀐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인솔자로 살아가고 있다. 산티아고를 떠나 있을 때에도 마음 한켠엔 언제나 그 길이 있다. 그 길을 걸으며 느꼈던 충만함은 여전히 나를 움직인다.
예전엔 유럽에 큰 흥미가 없었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유럽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됐다. 그들의 문화를 지루함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유럽에서 머무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걷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은 최상의 여행지이자 삶의 방식이 되었다. 지금 나는 여러 갈래로 이어진 순례길을 하나씩 걸어가며, 여전히 그 길 위에서 살고 있다.
글쓴이 최윤성 '망고 요가 트래블'의 1인 여행 기획자. 국내외 요가 여행을 진행하고, 틈틈이 산티아고 순례길 인솔을 한다. 겨울에는 인도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만들며 생활하는 여행자로 살고 있다.
하은정 기자 hah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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