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시청사에 동상으로 선 프로이센의 사기꾼

최윤필 2025. 10. 16.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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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철혈 재상'이란 별명처럼 군사력이 곧 국력이라 여겼다.

외교에도 힘을 앞세웠고 군사적 가치관을 독일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확산시켰다.

그의 실각 후 즉위한 빌헬름 2세 역시 그 군사력으로 해외 식민지 경쟁에 박차를 가했고, 학교와 관료조직을 군대의 위계와 규율로 재편했다.

1차대전 이전 독일(프로이센) 제2제국 군국주의가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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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빌헬름 포이크트
독일 쾨페니크 시청사 계단 모퉁이에 아마도 자계(自戒)의 의미로 세워졌을 프로이센 근위대 대위 복장의 사기꾼 빌헬름 포이크트 동상. 위키피디아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철혈 재상’이란 별명처럼 군사력이 곧 국력이라 여겼다. 외교에도 힘을 앞세웠고 군사적 가치관을 독일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확산시켰다. 그의 실각 후 즉위한 빌헬름 2세 역시 그 군사력으로 해외 식민지 경쟁에 박차를 가했고, 학교와 관료조직을 군대의 위계와 규율로 재편했다. 군복은 출세의 상징이었고, ‘융커’ 즉 군벌 귀족은 황족에 이은 제2계급이었다. 1차대전 이전 독일(프로이센) 제2제국 군국주의가 그러했다.

프로이센 틸싯(Tilsit, 현 칼리닌그라드 소베츠크) 출신 50대 제화공 빌헬름 포이크트(Wilhelm Voigt, 1849~1922)가 1906년 10월 16일, 프로이센 근위대 장교복을 입고, 분대 병력까지 대동한 채 기차로 베를린 남동쪽 쾨페니크(Köpenick) 시장실에 들이닥쳤다. 부하들에게 시 청사를 점거하고 출입구를 봉쇄하게 한 그는 시장과 재무관을 부패혐의로 체포한 뒤 금고에 있던 현금 4,000여 마르크를 압수하고 압수품 영수증에 서명까지 한 뒤 시장 등을 베를린 경찰서로 압송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사복으로 갈아입고 종적을 감췄고, 군은 두어 시간 뒤에야 그가 가짜란 걸 알게 됐다.

포이크트는 14세 무렵부터 절도를 시작해 위조 등 각종 범죄로 총 25년을 감옥에서 보낸 인물이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지만 전과자여서 취업이 힘들었고, 어렵사리 한 구두 수선소 직원으로 고용됐지만 잘 적응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에게 군국주의는 범죄의 좋은 배경이 됐다. 그는 중고 시장에서 군복을 구한 뒤 베를린 북서부 테겔(Tegel)의 한 병영에서 휴식 중이던 병사들을 끌어 모아 저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4년형을 선고받았지만, 그의 대담함을 유쾌하게 여긴 빌헬름 2세에 의해 2년도 채 안 돼 가석방됐다. 유명해진 그는 출옥 후 자서전과 연극 등으로 꽤 많은 돈을 벌었고, 영국 런던의 마담 투소 박물관에 대위 복장을 한 그의 밀랍 동상이 세워지기도 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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