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시청사에 동상으로 선 프로이센의 사기꾼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철혈 재상'이란 별명처럼 군사력이 곧 국력이라 여겼다.
외교에도 힘을 앞세웠고 군사적 가치관을 독일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확산시켰다.
그의 실각 후 즉위한 빌헬름 2세 역시 그 군사력으로 해외 식민지 경쟁에 박차를 가했고, 학교와 관료조직을 군대의 위계와 규율로 재편했다.
1차대전 이전 독일(프로이센) 제2제국 군국주의가 그러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철혈 재상’이란 별명처럼 군사력이 곧 국력이라 여겼다. 외교에도 힘을 앞세웠고 군사적 가치관을 독일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확산시켰다. 그의 실각 후 즉위한 빌헬름 2세 역시 그 군사력으로 해외 식민지 경쟁에 박차를 가했고, 학교와 관료조직을 군대의 위계와 규율로 재편했다. 군복은 출세의 상징이었고, ‘융커’ 즉 군벌 귀족은 황족에 이은 제2계급이었다. 1차대전 이전 독일(프로이센) 제2제국 군국주의가 그러했다.
프로이센 틸싯(Tilsit, 현 칼리닌그라드 소베츠크) 출신 50대 제화공 빌헬름 포이크트(Wilhelm Voigt, 1849~1922)가 1906년 10월 16일, 프로이센 근위대 장교복을 입고, 분대 병력까지 대동한 채 기차로 베를린 남동쪽 쾨페니크(Köpenick) 시장실에 들이닥쳤다. 부하들에게 시 청사를 점거하고 출입구를 봉쇄하게 한 그는 시장과 재무관을 부패혐의로 체포한 뒤 금고에 있던 현금 4,000여 마르크를 압수하고 압수품 영수증에 서명까지 한 뒤 시장 등을 베를린 경찰서로 압송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사복으로 갈아입고 종적을 감췄고, 군은 두어 시간 뒤에야 그가 가짜란 걸 알게 됐다.
포이크트는 14세 무렵부터 절도를 시작해 위조 등 각종 범죄로 총 25년을 감옥에서 보낸 인물이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지만 전과자여서 취업이 힘들었고, 어렵사리 한 구두 수선소 직원으로 고용됐지만 잘 적응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에게 군국주의는 범죄의 좋은 배경이 됐다. 그는 중고 시장에서 군복을 구한 뒤 베를린 북서부 테겔(Tegel)의 한 병영에서 휴식 중이던 병사들을 끌어 모아 저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4년형을 선고받았지만, 그의 대담함을 유쾌하게 여긴 빌헬름 2세에 의해 2년도 채 안 돼 가석방됐다. 유명해진 그는 출옥 후 자서전과 연극 등으로 꽤 많은 돈을 벌었고, 영국 런던의 마담 투소 박물관에 대위 복장을 한 그의 밀랍 동상이 세워지기도 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쇠창살 빽빽한 건물·도주 막을 유리조각까지… “전체가 사실상 감옥 도시” | 한국일보
- 국감에서 눈물 쏟은 '현직 부장검사'…쿠팡CFS 수사 외압 폭로 | 한국일보
- 테이저건 한 방은 버티지만...'육체가 정신을 지배'한 남성의 결말 | 한국일보
- 카카오톡 "카톡 업데이트 이전으로 못 돌아가" | 한국일보
- "계약서 쓰고 바로 갈게요"…초강력 대책에 '막차 대출' 몰렸다 | 한국일보
- [단독] 칼부림에도, 폭발물 협박에도 대피 못한 매장 직원들…"숨죽이며 탈의실에 숨었다" | 한국
- [단독] "중국인이 산 채로 배 갈라?" 10대들 허위정보에 휘둘리는데…'미디어 리터러시' 예산 줄인
- "한국 생활은 지옥, 죽고 싶기도"…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고백, 왜? | 한국일보
- 캄보디아 선교사의 호소… "제발 오지 말라, 한국인 몸값 가장 비싸" | 한국일보
- '모친상은 오른팔 완장?'…상주를 대역죄인 만드는 왜곡이다 | 한국일보